겨울도 이별을 하려는 듯 차가움과 상쾌함이 공존하는 아침 공기를 마시며 진한 커피 향이 나는 로비를 지나 오늘도 좋은 하루를 생각하며 진료실로 들어간다. 그 순간 문득 대기실 의자에서 스치듯이 보이는 얼굴은 약간 상기된 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낯익은 얼굴에 누구일까 기억을 더듬으며 컴퓨터 창을 여는 순간 어제 진료한 부부임을 알고 여러 생각이 확 스쳐 지나간다. 평소 신경이 예민한 성격에 두통으로 진료받은 환자, 두 번째 치료는 며칠 뒤에 오라고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는 대개 전일 치료한 침으로 통증이 더하거나 증상이 심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심스레 환자에게 좀 어떤지 물어보니 부부는 동시에 말문이 트인 것처럼 쏟아낸다. “어제는 약을 안 먹고도 6시간이나 잠을 자고 아침까지 머리가 맑고 좋습니다.” 후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두통은 가장 흔하면서도 일상생활을 무기력하게 하는 통증 중의 하나이다. 전체인구의 90%가 두통을 경험하며 대한두통학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직장인의 30%가 일주일에 1~3회 두통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것은 결국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과다한 업무로 두통과 같이 살아간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두통은 유발상황에 따라 나누는데 특별한 원인질환 없이 발생하는 편두통, 긴장성 두통, 신경성 두통 등은 일차성 두통에 해당되고 이차성 두통은 뇌종양, 뇌중풍, 뇌수막염, 경추부 질환, 감기 등 다른 원인질환에 의해 동반되어 나타난다. 그 외 약물이나 음주 등으로도 나타난다.

특히 갑자기 극심한 두통이 있거나 의식장애, 시야장애, 수족마비, 구토, 고열, 청력장애 등의 증상이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는 위험한 증상일 수 있기에 급히 정밀검사를 통해 원인질환을 감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통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은 뇌는 실제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머리가 아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통증을 느끼는 부위는 머리 안과 밖의 피부, 근육, 혈관 주위 조직이나 신경 기관들의 압박이나 견인 그리고 염증이 생기거나 혈관이 확장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긴장성 두통은 두피의 근육이나 근막 등의 통증이고 편두통은 혈관이 확장되어 나타나는 두통이다. 그렇기에 쿵쿵 울리는 박동성으로 나타나고 눈이 아프거나 속이 불편한 증상을 동반한다. 최근에는 컴퓨터 사용과다로 인한 거북목 증후군의 증가로 경추성 두통도 빈발하는 추세이다.

치료는 원인 질환이 있는 경우는 반드시 원인 질환을 치료해야 두통을 해소할 수 있으며, 원인질환 없이 오는 편두통, 긴장형 두통, 경추성 두통 등은 진단에 따라서 치료한다.

서두에 언급된 환자는 70대 남성으로 2년 전에는 신장결석 수술, 얼마 후에는 담관이 좁아져 확장 시술을 했고, 1년 전에는 췌장염으로 수술을 하는 바람에 병상생활을 몇 주 동안 했다. 그런데 올 초 한 달 전부터 두통이 점점 심해져 대학병원에서 머리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등 여러 가지를 했는데 특별한 소견은 나타나지 않고 긴장성 두통이란 진단 하에 약을 복용했는데 통증이 멈추지 않고 2주 전부터는 밤에 두통으로 1~2시간밖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별 일 아닌데도 화를 낸다고 보호자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한방적인 변증을 해보니 수술 등으로 인체의 진액(에너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스트레스, 병에 대한 걱정 등으로 인한 신경과로로 심화(心火)가 상승해 머리 부위에 열이 울체되고 인체의 하부는 냉하고 혈액순환이 안 된 상태였다. 한방적으로 이런 경우 ‘상열하한증(上熱下寒證)이라고 진단한다. 생리적으로는 상부(가슴, 머리)는 약간 서늘한 것이 좋고 하부(복부, 하지)는 따뜻한 것이 좋은데 역전된 경우이다.

이런 경우 침 치료와 한약을 병행해 치료하는데 우선 상부에 정체된 불기운(火氣)을 순환시키고 화를 내리는 침 치료를 했다. 몰려 있던 열이 내려가면서 수면도 좋아지고 두통도 일시적으로 호전되었다. 그렇지만 인체의 부족한 진액은 한약 처방을 통해 보강해야 한다. 그 후에도 두 차례 더 내원했는데 두통이 미약하게 남아있지만 수면도 호전되고 생활하기에 힘들어 하지는 않았다. 아마 한 달 정도는 치료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방에서는 두통에 대한 진단 시에 몇 가지 변증으로 나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혈액이 부족한 혈허두통(血虛頭痛), 기운이 허약한 기허두통(氣虛頭痛), 스트레스와 체력저하로 인한 상열하한(上熱下寒), 몸이 냉해져서 나타나는 양허두통(陽虛頭痛), 과식을 한 것이 소화가 오래 안 되어 나타나는 식적두통(食積頭痛, 어혈로 인한 어혈두통(瘀血頭痛), 순환되지 않는 노폐물의 적체로 나타나는 담음두통(痰飮頭痛) 등으로 나눈다. 그 외에도 한두통(寒頭痛) 열두통(熱頭痛) 등이 있다.

두통은 특히 심리적 안정과 수면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운동을 하는 것이 통증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진료를 받을 때도 자신의 상태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개는 머리가 아픈데 어떤 시간에 어떻게 아픈지 물어보면 잘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스로 통증이 나타나는 시간과 아픈 양상을 집에서 잘 체크해보고 진료 시에 설명하면 병의 진단과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