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떤 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정할 것인가. 현재 상황으로는 그 어떤 국가도 해당되지 않는다. 또 미국이 실질적인 행동을 취하기보단 으름장을 놓으며 심리적으로 달러 약세 압력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는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NHK에 따르면 지난 1일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회견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환율조작 비판을 전면 부인했다. 아울러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지난 1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환율 조작 국가는 중국과 일본이 아닌, 한국과 대만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일본의 환율조작을 비판한 이후 이러한 보도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FT가 트럼프의 시선을 돌려 일본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FT 소유주가 일본 미디어 회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공동으로 FT 본사와 일본지사에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기재부와 한은은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부 보고서 등을 인용해 FT의 의견에 반박했으며 국제결제은행(BIS)의 실질실효환율로 도 원화가 절상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FT는 중국과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이지만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8%에 달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일본이 2011년 이후 외환시장에 개입한 적이 없으며 중국은 위안화 절하 압박을 받는 위안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재무부가 베넷-해치-카퍼(BHC) 법안을 근거로 주요 12개 교역대상국에 대해 환율 조작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대미국 무역수지가 연간 200억달러 이상 ▲경상수지규모가 GDP대비 3% 이상 ▲외환매수규모가 GDP대비 2% 이상으로 세 가지다.

▲ 국가별 대미국 무역수지 연간 200억달러 이상 해당 여부 [출처:NH투자증권]

한편,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말 기준 국가별 대미국 무역수지는 중국이 3561억달러, 일본이 676억달러 흑자를 보고 있으며 한국도 302억달러로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에 해당된다. 

경상수지규모가 GDP대비 3% 이상인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2.4%로 해당되지 않는 반면, 한국과 일본은 각각 7.9%, 3.7%로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에 속한다. 한국의 경상수지규모가 GDP대비 3% 이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기준에는 일본도 해당된다.

▲ 국가별 경상수지규모 GDP대비 3% 이상 여부 [출처:NH투자증권]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GDP대비 2% 이상인 국가는 스위스와 대만 등이며 한국, 중국, 일본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FT는 한국과 함께 대만, 싱가포르 등도 환율조작국으로 표현했다. 대만과 싱가포르의 경우 경상흑자는 GDP의 각각 15%, 19%에 달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FT 통화 절하의 증거로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자료를 인용, 대만과 싱가포르 달러의 실질환율이 26%, 28%씩 저평가 됐다고 전했다.

▲ 국가별 외환매수규모 GDP대비 2% 이상 여부 [출처:NH투자증권]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포지션을 갖고 있어 미국이 한국에 적대적이기 보다는 경제강화를 추진했다고 보도한 부분이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미국이 한국에 ‘선심’을 쓴다는 뉘앙스로 보인다.

역플라자합의와 엔화의 ‘만년’ 평가절하

과거 미국은 아시아지역의 경제개발과 공산주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세계의 리더를 자처하며 강한 달러로 세계를 이끌었다. 이는 미국이 달러를 기반으로 한 경제지배력을 넓히기 위한 조치였음에는 물론 정치적요인도 다분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미국이 원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또,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이후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뉴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특히 1995년 역 플라자합의는 본격적으로 강한 달러를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본격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역 플라자합의 즉, 강한 달러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 국가별 실질실효환율 추이(1994년=100 기준) [출처:BIS]

환율 측면에서 보면 FT의 주장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대비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갖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을 보면 1995년 이후 현재까지 가장 큰 폭의 하락(저평가)을 보인 통화는 엔화다. 특히 FT는 2011년 이후 일본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이때부터 엔화의 가치는 유독 가파르게 평가 절하된 점도 눈에 띈다.

실질실효환율을 볼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기준 시점을 어느 시기로 정하는지 여부다. 그러나 엔화는 지난 2015년 12월 미국이 제로금리 수준에서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 약 1년간 강세를 보였던 것을 제외하면 여느 시기를 막론하고 가장 크게 평가절하됐다.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이 바뀐다?

현행 미국의 교역촉진법 만으로는 지난 10월 환율 보고서 결과처럼 특정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어렵다. 또 지난해 연간 경제지표를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 재무부가 외부 전문가 등을 통해 계량기준의 적절성을 검토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는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중 두 가지에 해당돼야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지만 지난해 10월 중국이 환율조작국의 단 한 가지 요건만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할 수 있는 요건을 새로 만들었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재무부가 환율조작국에 대한 기준치 또는 적용 경제지표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며 “종합무역법 적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교역촉진법 조건에 미달해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의 입장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FT의 보도처럼 미 재무부가 GDP대비 경상수지흑자 요건에 비중을 높이거나 여타 항목의 기준치를 낮추는 등 기준을 변경한다면 한국이나 대만이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한국과 대만은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된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무부는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대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

국제 공조보다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선 상황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압력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또 특정 국가들을 겨냥한 미국의 노골적인 통상전략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미국이 그 힘을 유지한채 달러를 약세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