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이 해마다 늘고 있다. 원인도 다양하다. 파산법을 이용해 채무를 정리하는 것은 불온하다는 인식이 과거에는 많았다. 또 살려보겠다고 기업 회생을 신청했는데,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흔했다. IMF 위기,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도산법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영원히 갚아야 할 채무를 강제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하지만 도산 위기 앞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 경제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통제를 통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방법이 유일하다.

가계부채 1300조원, 저성장, 금리인상 우려, 경제 불확실성 등. 가계와 기업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점점 소비의 위축이 기업들의 성장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계 운용이나 기업 경영에서 경제주체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의의 위기로 인한 도산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회생전담 법원이 오는 3월부터 출범한다. 법원의 한 부서가 아닌, 독립된 조직과 운영을 갖춘 전문법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로 도산에 직면한 한계기업과 금융소비자들을 위해서다. 이 회생 법원이 실제로 회생절차를 밟는 기업과 개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리 주변에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 있다. 빚지는 일이다. 빚, 즉 채무는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에서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잘 알지 못한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빚 때문에 은행에 가기도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법원을 찾는다. 법원만이 강제적으로 채무를 탕감해주거나 감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를 갖고 찾지만, 법원은 우리의 기대를 비켜가기 일쑤였다. 가장 큰 이유는, 결정에 일관성이 없는 것.

법원이 일관성을 잃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실제 사례를 보자.

법인회생신청 '3修' 끝 법정관리 탈출

중견기업인 우진페인트. 이 회사는 최근 회생절차를 졸업했다. 이 회사가 법정관리를 졸업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밟았다. 회사의 유동성 문제로 회생 신청 후 법원은 회계사인 조사위원을 회사에 파견했다. 회사의 재무상황을 파악한 조사위원은 ‘이 회사가 기업을 계속 운영하더라도 빚진 것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법원에 보고했다. 빚을 갚기에는 영업이익이 부족하다는 것. 법원은 이 같은 이유로 신청을 기각했다. 조사위원은 구조조정을 해온 사실은 간과한 채, 과거 5년 동안 판관비를 ‘평균’ 산출한 것이다.

회사는 2015년 1월에 두 번째 회생신청을 한다. 이번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청서류를 제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다른 지방보다는 신속하고 전문적이라는 애기를 들었기 때문. 회사는 다급했다. 회생절차에 돌입하면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법적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이미 한 차례 기각을 당했던 터라 방어막이 없었다. 다시 채권자들의 채권회수 압박이 가해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회생신청을 한 후 몇 주가 지나서 조사위원이 파견됐다. 회사는 이미 한차례 경험이 있었으므로 과거 판매 관리비의 감소추세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다른 데서 문제가 생겼다. 이 관리위원은 너무 고압적이고 융통성이 거의 없었다. 관리위원이 경영 전반을 통제, 지출과 거래 등 모든 것을 허가받도록 했다. 결제가 늦어져도 마냥 기다려야 했다. 관리위원에게 밉보이면 허가서가 늦게 내려오고, 그러면 거래처와의 거래가 끊어질 뿐이다. 불만을 제기하면 관리위원은 담당 판사에게 나쁜 얘기만 늘어놓는다.

채권자집회기일, 법원에 채권자와 여러 이해관계인들이 모여 그간의 경과를 묻고 답하는 날이었다. 이날 판사가 서류를 보면서 조사위원에게 물었다. “우진페인트 제조원가가 이게 맞나요.” 조사위원이 답을 못 했는데, 화근이 됐다. 원가산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조사위원 때문에 계속 기업가치가 산출되지 않았다. 법원이 내린 두 번째 기각사유였다.

회사는 다시 회생신청을 해야 했다. 그사이 법원에 예납금으로 납부한 돈만 7000만원이었다. 예납금은 조사위원의 조사인건비다. 회생을 신청하지 않으면 주거래 통장은 압류된다. 거래대금은 치를 수 없고, 직원들의 급여도 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그 다음은 ‘파산’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회생을 다시 신청했다. 이번에 납부한 예납금은 3500만원이다. 두 번의 회생신청 기각결정으로 거래처들이 크게 동요했다. 사정을 봐주던 거래처마저 등을 돌렸다. 이제는 현금을 주지 않으면 원재료를 주지 않았다. 매출이 감소하고 유동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살아보자고, 직원들과 의기투합해 회생신청을 했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세 번째 신청했을 때 재판부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관리위원도 다르고 판사도 달랐다. 조사위원도 달랐다. 절차는 원만히 진행됐다. 문제가 됐던 계속기업가치도 이번에는 무리 없이 산출됐다. 지금 와서 보니 그전에는 왜 기업가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계속기업가치가 산출되고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채권자 동의도 일정 비율 이상 다 받았다. 이렇게 우진페인트는 간신히 회생절차를 졸업하고 정상화할 수 있었다.

美 명문대 출신 A씨, 개인회생신청 3번에 이혼까지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 씨는 명문과학고를 거쳐 미국 스탠포드대학를 졸업했다. 그는 국내 L전자에서 억대연봉을 받는 조건으로 스카웃되었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법원을 찾게 된 것은 갑작스런 퇴직 때문이다. 회사 내 알력 다툼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거주하는 아파트 담보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리하게 대출받은 것이 문제였다. 당시 매입한 아파트는 9억원에 가까웠고, 대부분 담보 대출로 매입자금을 충당했다.

뿐만 아니라 지인의 권유로 모 회사에 투자한 돈도 회사가 망하면서 회수할 수도 없었다. 이 돈을 투자하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았다. 법원을 찾았을 때 그가 지고 있는 채무는 총 3억6000만원이었다. 집은 이미 경매로 넘어갔다.

그는 총 3번의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처음 신청한 곳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었다. A 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 독촉을 막는 일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A에게는 금지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빗발치는 전화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법원은 금지명령 없이 A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법원의 궁금증은 “대출이 많은데 그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지만 해명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설명하는 데 시간과 자료가 필요하니 금지명령을 우선 내려달라고 한 그의 요청은 묵살됐다. 금지명령이 먼저 내려지고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제는 바뀌었다는 설명뿐. A는 서울중앙법원에서 절차진행을 포기했다.

A는 다시 수원지방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수원법원은 3일 만에 A에게 금지명령을 내려줬다. 당장 채권자의 독촉이 멈췄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법원의 요구가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모와 형제의 재산 상태를 모두 해명하라는 것이었다. 법원은 혹시 친인척에게 재산을 숨겼는지 보려고 했다. 그는 다시 법원의 요구를 감당하지 못했다. 부모와 형제에게 재산 내역을 보여달라고 할 수 없었고, 절차는 기각됐다.

A 씨는 이번엔 대전지방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대전지방법원은 A에게 “어떻게 억대 연봉을 받았던 사람이 200만원의 급여(당시 시간강사 급여)를 받을 수 있느냐”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결국 법원은 A가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급여를 받는다고 보아, 매년 급여의 변동내역을 법원에 보고하고 변제금을 증액하도록 하는 조건이 제시됐다. 매달 급여 200만원에서 100만원이 변제금을 납부하게 된다. A가 3번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동안, 배우자와의 갈등이 깊어져 이혼까지 하게 됐다.

 

채무자가 마지막으로 찾는 곳, 법원. 지역마다 다르고, 같은 법원이라도 누가 관여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독립, 서울회생법원으로 3월 출범한다. 오수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학장(대법원 회생/파산 위원회 위원)은 “회생법원이 중앙법원으로부터 독립된다는 의미”라며 “법원조직법상 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속하는 것과 독립된 회생법원으로 존재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의의를 평가했다.

회생법원이 출범하면 법원의 결정에 예측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환영 일색이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또 다른 힘은 법관들의 전문성이다. 법률전문가들은 회생법원에서 법관의 장기적인 임기보장이 법관의 전문성과 직결된다고 설명한다. 한 부류 업무에 종사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접한다면 자연히 전문성이 배양된다는 것. 오 교수는 “회생법원 내 구성원들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면 자연히 도산신청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의 전문성도 동시에 증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창현 변호사(법무법인 대율)는 “한진해운과 같이 외국에 영업망과 자산이 있는 경우 외국의 도산절차와 연계된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이 경우 판사에게 고도의 전문성은 더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회생법원의 출범은 무엇보다도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기대한다.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모두 다양한 사례를 정형화하고 축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기존 파산부에서 회생법원으로 독립시키면 회생법원장을 중심으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