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만주정벌의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하여 장쭤린을 지원하여 힘을 키워주고, 그로 하여금 베이징까지 진출하였다가 퇴각하게 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그런 계획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 사건도 있다. 괴뢰 군벌을 두는 것보다는 직접 만주 지배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관동군 참모들이 1928년 6월 4일, 장쭤린이 베이징에서 천진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타고 오던 기차를 폭파하여 그를 암살한 것이다.

역사는 관동군 참모들이 장쭤린을 암살한 사건이 일본 정부의 계획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장쭤린을 암살한 관동군 참모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지 않았다는 것을 볼 때 그 기록이 진실인지는 의문이다. 당시의 엄격한 일본군율을 참고로 할 때, 만일 일부 관동군 참모들에 의해 본국의 의도와 전혀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들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장쭤린의 임무는 동북3성을 장악하고 화북지방으로 영역을 넓히는 계획을 시험하는 것까지가 전부였던 것이고,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퇴각하는 그를 일본이 관동군 참모들을 행동대원으로 내세워 계획적으로 제거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쭤린보다는 정통성이 있는 사람을 내세워 만주를 통치하는 것이 일본의 입장에서는 더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이런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만주국의 건국 과정이다.

장쭤린의 암살로 인해서 그의 아들 장쉐량이 그 지위를 계승하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반감으로 장쉐린(張學良)이 국민당 정부에 합류하자 일본의 만주 정복 전략은 잠시 주춤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은 절대 만주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철도 선로를 스스로 폭파하고 그 사건이 장쉐량 지휘하의 중국군에 의한 소행이라고 몰아붙이며 관동군이 만주 침략을 개시한 것이다. 1931년 10월 요녕성[遼寧省 :랴오닝성] 서부에 있는 도시 금주(錦州 : 진저우)를 폭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동북3성 전역을 장악하고 1932년 장쉐량의 거점인 금주와 하얼빈을 점령하여 만주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한 후 같은 해 11월에는 천진(天津 :텐진)에 망명 중이던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부의(愛新覚羅溥儀 : 아이신기오로 푸이)를 탈출시켜 만주국의 황제로 삼을 준비를 추진하였다. 그리고 1932년 3월 9일 애신각라부의가 국왕에 취임함으로써, 만주는 대동이라는 연호를 쓰는 새로운 국가, 만주국으로 출발하였다. 일본의 의도대로 고조선 이래 우리의 고토였던 만주는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으로 탄생한 것이다. 만주국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우리선조들이 대대로 지켜온 영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위에 제시된 2개의 지도에서 나타나듯이 만주국의 영역이 고인돌과 청동검 등의 대표적인 고조선 문화유적에 의해 작성된 고조선의 영역과 비슷하여 한족 중심의 중국과 그 경계를 거의 같이 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주국이 지배한 영토를 고조선의 영역과 비교해 보면, 당시 일제에 의해 병탄되어 있던 한반도와 소련에 의해 불법으로 점유된 우리영토인 연해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다. 일본이 얼마나 치밀한 준비 하에 만주국을 건설해서 대륙을 지배하려 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