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열리는 프로 미식축구 결승전인 수퍼볼(Super Bowl)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스포츠 경기의 하나이다. 올해 수퍼볼 게임이 열린 2월 5일(현지시간), 미국에서는 오전부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대형 TV 스크린이 있는 술집이나 음식점을 찾아 속속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집에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스포츠게임을 즐기기 위해 맥주와 음료수, 음식 등을 싸들고 가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난해 열렸던 슈퍼볼 덴버 브롱코스와 캐롤라이나 팬더스전은 미국에서만 1억1190만명이 TV로 게임을 지켜봤다. 이 수치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다같이 TV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보는 수치를 제외한 것이므로 실제 시청자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가장 많은 시청자가 모였던 수퍼볼 게임은 작년에 열렸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시애틀 시혹스의 게임으로 1억144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워낙 인기 있는 게임이다 보니 수퍼볼 중간에 들어가는 광고의 액수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때문에 수퍼볼 게임의 진짜 재미는 게임보다도 중간 광고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올해 수퍼볼 TV 광고료는 30초당 최소 500만달러(약 58억원)로 역시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수퍼볼의 광고 시간을 산 기업들은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인상적이고 재미있고 파격적인 광고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한다. 수퍼볼 게임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광고가 게임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비싸디 비싼 광고시간을 통해서 제품을 광고하기보다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명료하고 진지하게 제시한 광고들이 대거 등장했다.

트럼프가 7개 무슬림국가의 사람들에 대한 미국 방문을 금지한 행정명령에 대해 가장 뚜렷하게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나선 것은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다.

‘우리는 (당신을) 받아들입니다(#WeAccept)’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나온 에어비앤비의 광고에는 다양한 인종, 성별, 연령의 얼굴이 나오면서 ‘우리는 당신이 누구든지, 어디에서 왔든지,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든지, 무슨 종교를 믿든지, 우리의 마음은 하나입니다’라고 트럼프 행정명령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맥주 버드와이저는 회사를 만든 창업자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민자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독일에서 막 미국으로 넘어온 버드와이저의 창업자 에버하드 앤하우저에게 한 미국인은 ‘넌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아예 ‘우리는 널 환영하지 않는다’면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매몰차게 말한다. 역경을 딛고 맥주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면서 ‘어떤 것도 당신의 꿈을 막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이 맥주를 건넵니다’라고 자막이 나온다.

코카콜라는 미국의 국가처럼 불리는 노래 ‘아메리카 더 뷰티풀(America the Beautiful)’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7개국 언어로 부르는 2014년 수퍼볼 광고를 다시 내보냈다.

건축자재업체 럼버84는 멕시코의 모녀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트럭을 얻어 타고 미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광고를 만들었으나 정치적 이슈가 포함된 내용이라고 거부당하면서 광고의 뒷부분이 생략된 반쪽짜리 광고를 내보냈다. 완전한 광고에는 멕시코와 미국 국경 사이에 지어진 거대한 벽에 막혀 망연자실하던 모녀가 커다란 문을 발견하고 이를 열어서 미국에 들어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TV에서는 모녀가 길을 떠나는 모습만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광고 주제가 무엇인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광고들이 정치적 메시지를 담으면서 이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해당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이자며 나섰다. 수퍼볼 역사상 처음으로 연장게임까지 가서 우승자가 나온 수퍼볼 게임만큼이나 광고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