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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의 워치블랙북] 발터 랑에를 기리는 글
   
▲ 발터 랑에(Walter Lange) 1924~2017. 출처=랑에 운트 죄네

2017년, 1월 17일 독일 최고급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브랜드 랑에 운트 죄네(A.Lange&Söhne)를 이끌던 발터 랑에가 92세 일기로 별세했다. 마침 SIHH가 열리고 있던 기간 중에 전해진 갑작스러운 비보에 시계업계와 각종 커뮤니티는 애도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그리고 발터 랑에가 떠난 지금, 그가 85세 생일에 인터뷰를 통해 했던 말이 마치 지금의 수많은 추모 메시지에 대한 답변처럼 들린다. “죽음이라는 것은 영원히 어딘가로 가버리는 것이지만, 죽음 때문에 삶을 어둡게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발터 랑에는 그 말처럼 타계 직전까지 독일 시계 산업과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산업을 밝게 빛낸 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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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계 산업의 암흑기

   
▲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당하는 독일. 출처=핀터레스트

랑에 운트 죄네는 시계 역사 속에서도 손꼽힐 만큼 치열한 역사를 갖고 있는 브랜드다. 1845년 12월 7일, 지금의 랑에 운트 죄네의 창립자 아돌프 랑에가 설립한 시계공방은 1차 세계대전과 그에 따른 크고 작은 전투 중에 공중폭격을 맞아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발터 랑에 또한 군대에 들어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전쟁 후 고향에 돌아와 다시 공방을 열었을 땐 글라슈테가 동독에 편입되며 공방이 국유화되는 일마저 생겼다. 발터 랑에는 이를 반대하며 동독 정부에 격렬히 항의했지만 때는 군국주의 시대였고, 발터 랑에는 그때의 항의로 우라늄 광산에 강제 징용당할 뻔했다가 간신히 서독으로 도망쳤다. 이때까지도 랑에 운트 죄네는 오늘날까지도 고급시계 제작에 사용되는 니바록스(Nivarox)합금 스프링을 개발하는 등 시계 산업의 발전을 앞당길 업적을 계속해나가고 있었지만 큰 전쟁으로 인해 독일 시계 산업은 40년간의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발터 랑에는 훗날 인터뷰를 통해 그 시기를 떠올리며 시계를 사랑했던 공방의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해고해야만 했던 상황을 눈물로 기억했다. 또한 공방이 파괴된 이후에도 몇 달간이나 자신에게 찾아와 시계 제조에 관한 토론, 그리고 이후의 시게 산업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직원들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작이 언제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1990년 10월 3일, 2차 세계대전 이후 강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통일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남긴 상처로 인해 많은 산업이 단절된 상태였고, 시계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발터 랑에는 이미 황혼기의 66세 나이를 맞이해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에도 발터 랑에의 가슴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다. 그것은 선대의 시계 가업을 여기에서 끝낼 수 없다는 시계에 대한 열정이었다. 

   
▲ 1990년 랑에 운트 죄네가 첫 선을 보인 네 가지 컬렉션. 출처=랑에 운트 죄네

증조할아버지인 아돌프 랑에가 회사를 창립한지 145년이 지난 1990년 12월 7일. 통일이 되는 날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발터 랑에는 노구의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글라슈테로 돌아와 조력자 귄터 블렘라인과 회사를 재 창립했다. 그리고 그날을 기다려 온 것이 발터 랑에만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랑에 운트 죄네가 다시 문을 엶과 동시에 수많은 직원들이 회사로 돌아왔다. 독일의 시계 산업은 멈추었지만 시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현상에 힘입은 랑에 운트 죄네는 설립과 동시에 첫 시계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랑에 운트 죄네는 첫 시계들을 공개했다. 지금까지도 완벽한 명기라 불리는 랑에 1(LANGE 1)과 삭소니아(SAXONIA), 아르카데(ARKADE), 그리고 투르비용 푸르 르 메이트(Pour Le Merite). 세계를 놀라게 한 명작 4피스였다. 이후 랑에 운트 죄네를 통해 40년의 공백을 가졌던 독일 시계 산업은 완전히 부활했다. 글라슈테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중심지가 되었고, 독일 시계 제작의 심장이 되었다. 이것은 66세에 고향으로 돌아온 랑에가 오직 4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이후 지금까지 랑에 운트 죄네는 독일 시계의 정점이라 불리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시계 브랜드 중 하나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랑에 운트 죄네는 1994년부터 단 한 번도 제네바 시계 박람회에 불참한 적이 없다는 또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랑에 운트 죄네에서 내놓는 시계는 항상 전통적이며 동시에 새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 시계 산업도 함께 발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목숨과 같은 신뢰, 단단한 의지, 탁월한 기술력으로 알려진 독일 시계는 발터 랑에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다.

   
▲ 랑에 운트 죄네 2017 SIHH신작, 투르보그래프 퍼페추얼 푸르 르 메리테. 출처=랑에 운트 죄네

“우리는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의 시계를 만들 것이다.” 회사를 다시 설립했을 당시 발터 랑에가 말했던 목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회사가 두 번이나 무너졌던 어려운 상황도, 66세의 나이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표를 훌륭하게 이뤄냈다. 발터 랑에는 2015년 90세의 나이로 독일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독일 최고 공로 훈장을 수여받고 92세의 나이에 전설적인 푸르 르 메이트 컬렉션의 다섯 번째 모델을 선보이며 동시에 자신의 업적을 마무리했다.

발터 랑에는 세상을 떠났지만, 발터 랑에의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랑에 운트 죄네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발터 랑에의 끝이 아니라 랑에 운트 죄네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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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 시계 전문 페이지 <블랙북> 운영자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7.01.26  17: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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