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거나 ‘짐차’ 역할을 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스타일을 잘 표현해주는 차로 각광받고 있죠. ‘도심형 SUV'라는 수식어가 등장하고 판매량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6년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내수 판매량은 158만8572대. 이 중 SUV(RV 기준, 미니밴 포함)는 54만2017대로 전체의 34%에 이릅니다. 전체 실적에서 1톤 트럭 등 상용차를 제외할 경우 SUV 비중은 더욱 높아지게 되고요.

공간 활용성이 뛰어나다는 커다란 장점을 무기 삼아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차급도 다양해졌죠. 소형, 중형, 대형 라인업을 갖추게 된 것은 물론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등 엔진 선택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SUV는 기존 자동차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던 세단과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엔트리카(생애 첫 차) 구매자들도 마찬가지. 가격에 맞춰 단순히 경차냐 중형차냐를 고민하던 시대가 끝난 셈입니다.

주요 엔트리카 고객층인 2030세대는 ‘SUV냐 세단이냐’를 두고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반떼를 선택할지 K3(크루즈·SM3 포함)를 고를지 생각하던 시절과는 다르죠. 물론 유예할부를 통해 수입차를 구매하고 ‘카푸어’를 자청하는 세력들도 많아졌지만, 논외로 하겠습니다.

▲ 기아차 니로 (자료사진) / 출처 = 기아자동차

자동차 전시장을 가보면 분위기 변화를 확실히 감지할 수 있습니다. 생애 첫 차 구매자들은 한번쯤 ‘유모차를 싣고 카시트 사용하기에는 SUV가 훨씬 편리하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몇백만원 더 주면 SUV를 살 수 있다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예쁩니다. QM3, 트랙스, 티볼리 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이들이 세련된 얼굴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거늘. 남들과 다른 개성을 중시하는 고객층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셈이죠.

2000만원대 수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차량이 많아졌습니다. 전통의 강자 아반떼·K3·크루즈는 물론 QM3·트랙스·티볼리·니로 등 소형 SUV들이 포진하고 있죠. 살짝 더 무리한다면 투싼·스포티지 등도 염두에 둘 수 있고요. 중형 시장으로 넘어갈 경우 후보들이 더욱 화려해집니다. 쏘나타·말리부·SM6 등 핫한 차들은 물론 싼타페·쏘렌토·QM6 등도 만나볼 수 있거든요.

구매자들도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내수 판매량을 살펴보면 티볼리(5만6935대), 니로(1만8710대), QM3(1만5301대), 트랙스(1만3990대) 등 소형 SUV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투싼(5만6756대), 스포티지(4만9876대) 등 전통 강자들도 제 역할을 충분히 했고요.

준중형차 시장에서는 아반떼(9만3804대)가 ‘넘사벽’의 면모를 과시했지만 K3(3만6854대), 크루즈(1만847대), SM3(8880대) 등의 실적은 SUV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엔트리카 시장에서 SUV와 세단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된다는 점은 고객에게 분명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준중형차를 타다 가족이 생기면 중형차를 타고, 노후에 성공의 상징으로 대형차를 찾던 시대가 끝난 것입니다. 각자 용도에 맞는 차를 골라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힘을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서요.

신차 출시에도 불이 붙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한국지엠이 9년만에 크루즈의 완전변경 모델을 내놨고, 현대차는 최초의 소형 SUV를 투입할 계획입니다. 바야흐로 엔트리카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영웅은 난세에 나타나는 법. 국내 소비자들이 더 좋은 차를 많이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