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엇일까? 반도체 코리아의 저력, 가전의 든든함이다. 각 영역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찾아보자.

반도체, 꽃길 걷는다
삼성전자는 24일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매출 53조33억원, 영업이익 9조22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도체가 눈부시다. 고성능·고용량 제품 공급 확대에 따른 메모리 실적 성장으로 매출 14조8600억원, 영업이익 4조9500억원을 기록했다. 분기 최고 실적이다.  낸드의 경우 고용량 48단 V-낸드 SSD 공급을 대폭 확대하고 64단 V-낸드 공정 전환에 빠르게 전환된 전망이다. 고성능 서버용 SSD 등 프리미엄 시장 대응도 빠르게 대비한다는 복안이다. D램은 고용량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용 공급을 늘려 전분기 대비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앞으로 10나노급 D램 공정 전환을 본격화해 기술 리더십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고용량·고성능 등 고부가 제품 판매에 더욱 주력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도 영광스러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움켜쥐었다. 2015년 3분기 이후 5분기만에 영업이익 1조원대 재진입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1조4361억원, 매출은 5조3577억원으로 집계됐다. 순이익은 1조6286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29%며 전 분기 대비 13% 늘었다. 매출은 전 분기 대비 26% 늘어났으며 역대 분기 사상 최대치다. 연간으로 따지면 매출액 17조1980억원, 영업이익은 3조2767억원에 달한다.

수요 강세와 가격 상승에 따라 우호적인 시장환경이 지속되었고 환율도 상승해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4분기 D램 출하량은 서버와 모바일 수요 강세로 전 분기 대비 13% 늘었고, 평균판매가격은 14% 상승했다. 낸드플래시는 전 분기대비 출하량이 3% 줄었지만, 가격 프리미엄이 있는 eMCP 제품 판매 증가로 평균판매가격은 14% 상승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화려함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슈퍼 사이클과 무관하지 않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는 지난 2일 올해 메모리 시장 규모를 853억 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773억 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10.3%의 증가폭이다. 나아가 향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2021년 1099억 달러의 시장 규모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2015년부터 823억 기가바이트(GB)이던 낸드플래시 시장은 2020년 5084억 GB까지 확대되는 등 연평균 성장율이 44%에 달하며 2015년 약 570억 기가비트(Gb) 였던 D램 시장 역시 2020년 1750억 Gb로 연평균 25.2%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 64단 V-낸드 공급 시작과 10나노급 D램 공급을 본격 확대하는 동시에 수익성 중심 제품 판매에 집중해 실적 향상을 지속 추진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 2015년 8월 M14 준공식에서 선언했던 중장기 투자계획의 연장선에서 충청북도 청주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총 46조원의 자금을 투자하는 신규 공장은 청주 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 내 23만 4천m2부지에 들어서며 2017년 8월부터 2019년 6월까지 2조 2천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건물과 클린룸을 건설한다는 복안이다.

나아가 20나노 초반급 D램 공정전환을 가속화하고 10나노급 D램도 양산을 시작해 수익성을 강화할 예정이다. 낸드플래시는 M14 2층에 3D 제품을 위한 클린룸을 마련해 수요 성장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4세대(72단) 3D 제품도 개발을 완료하는 대로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 출처=SK하이닉스

반도체, 계속 꽃길 걷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풍당당한 행진은 국내 시가총액 1, 2위의 위엄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후문이다. 반도체 코리아의 저력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꽃길만 있을까? 가능성은 낮지만 분명 리스크도 있다.

먼저 중국 리스크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중국의 기술력은 국내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중국은 2014년 1조위안을 투입하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후 칭화유니를 중심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난징에 35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한편 칭화유니의 자회사인 XMC는 지난해 3월부터 우한에 28조원에 달하는 메모리 반도체 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당초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인수합병 전략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마이크론 및 샌디스크 인수 등이 미국 정부의 견제로 무산되자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당장 기술력이 없어도 공장부터 건설해 충분한 인프라를 마련,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생태계 전략을 짜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인 셈이다. 현재의 지위에 취해 슈퍼 사이클에만 집중할 경우, 중국의 기습에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저변 인프라 및 인재의 측면도 화두다. 현재 국내는 정부 차원의 반도체 연구개발이 다소 정체된 상태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중국은 시작부터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강력한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과는 별개로 국내인력도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다행인 점은 국내에서 반도체성장펀드가 출범하는 등 나름의 변화가 엿보이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27일 제9회 반도체의 날 행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한국성장금융, 산업은행 등 4개사의 조성협약에 배경을 둔 상태에서 지난 25일 출범했다. 삼성전자가 500억원, SK하이닉스가 250억원을 출자했으며 양사가 출자한 모(母)펀드 금액 750억원을 바탕으로 벤처캐피탈(VC) 민간자금 1250억원을 자(子)펀드로 더해 총 2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성장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의 유력 중소 반도체 기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할 전망이며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반도체성장펀드의 사무국을 맡게 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남기만 부회장은 “반도체 유망기업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연결하고, 저평가 돼 있는 반도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발판 마련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며, “투자받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시제품 제작과 해외시장 진출 지원 등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은 이미 해당 분야에서 국내보다 우위라는 점도 중요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4분기 시스템LSI 사업에서 중저가 모바일 AP 수요 견조세와 업계 최초 10나노 파운드리 공정 개시 등을 통해 평타를 친 수준이지만, 중국은 날카로운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삼성전자는 올해 10나노 공정 제품 양산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14나노 제품기반의 오토모티브(Automotive)·웨어러블(Wearable)·IoT 등 제품 다변화와 이미지센서·DDI(디스플레이구동칩) 등의 제품 공급 확대를 통해 실적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복안이지만, 다소 안일한 상황판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출처=삼성전자

가전, 준수하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여파로, LG전자는 LG G5의 부진과 LG V20의 동력 상실로 올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반도체 인프라가 최고의 실적을 내며 삼성전자의 호성적은 유지됐으나 갤럭시 신화는 다소 빛을 바랬고, LG전자는 '안개의 바다'에 빠진 분위기다.

다만 가전의 경우 양사가 여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CE부문은 매출 13조6400억원, 영억이익 3200억원을 기록했다. TV의 경우,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 등 연말 성수기 프로모션 강화 속에 SUHD 및 커브드 TV 등 프리미엄 제품 판매는 확대됐지만 패널 가격 상승과 환 영향 등으로 전년 동기 대비 실적이 감소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QLED TV의 야심찬 승부수를 던진 상황에서 계절적 변동만 잘 넘기면 여전히 한 칼이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프리미엄 제품과 B2B에 집중한 전략도 준수하다. 앞으로 2017년 삼성전자 TV 사업은 QLED TV 중심으로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해 수익성 확대에 역점을 두고, 생활가전은 ‘패밀리허브 2.0’ 냉장고, ‘플렉스워시’세탁기 등 혁신 제품과 스마트 가전 강화, B2B 투자 본격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LG전자도 지난해 MC사업본부가 1조2591억원이라는 막대한 영업적자를 냈으나 전체적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TV 흑자폭이 컸기 때문이다. HE사업본부의 영업이익은 지난 2015년 573억원에서, 2016년 1조2374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H&A사업본부 영업이익도 2015년 9817억원에 비해 2016년에는 1조3344억원을 기록해 실적을 받쳐줬다.

▲ 출처=LG전자

가전, 계속 준수할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 경쟁력은 여전하지만, 초연결의 사물인터넷 시대가 오면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당장 소프트웨어 기업에 패권을 빼앗겨 안드로이드 하드웨어 동맹군에 남았던 삼성전자의 케이스가 반복될 수 있다. 물론 각자 스마트홈 전략을 꾸리고 있으나 이 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다.

나아가 가전영역이 계절적 영향이 강하고, 디스플레이의 경우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는 부분과 더불어 중국의 박리다매 정책 가능성도 여전한 변수다. 환 영향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세계를 휘어감는 보호 무역주의 기조에도 민감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