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중파에서 <아빠의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이를 먹어갔는데 어느 순간 옆을 보니까 가족이 없어진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렸는데 막상 옆을 볼 만한 여유가 생기니까 사회생활의 목적이었던 가족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는 죽어버린 참 당혹스런 시추에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아빠들의 사투를 프로그램에서는 간단한 실험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시리즈를 끝까지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여기서도 가족과 저녁 먹기가 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해결하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등장했던 것 같다. 성공했는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외국의 경우 효과가 있었다고 지난 칼럼 어디에선가 쓴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사실 아빠의 가족 찾기 분투기가 아니다. 이 문제를 다른 관점으로 한번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사실 결혼한 남자들은 아이의 탄생을 기준으로 그 전에는 그냥 남자 그리고 그 후에는 아빠로 나뉜다. 먼저 그냥 남자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 아이가 맞다. 우스갯소리로 아동심리학과 여성심리학은 있는데 남성심리학은 없다고 한다. 남자 심리와 아동 심리가 동일하기 때문이란다. 뭐 이건 들은 이야기이고 웃자고 한 이야기이니 과학적 잣대나 근거로 반론하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아빠다. 남자들은 필자의 경험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확 바뀐다. 일종의 책임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남편과 아내는 성인이다. 각자 알아서 살면 된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돌보아 주어야 한다. 부부로서의 교집합을 제외하고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사는 남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남자는 철이 든다. 가슴에 아빠라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개념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다 보니 아빠는 외롭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또 힘들더라도 그냥 전진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부장님한테 혼나고 후배한테 핀잔 들어도 소주 한 잔으로 넘긴다. 그래서 아빠의 소주 한 잔에는 눈물이 반이라고 했던 거다. 그런데 그렇게 전진만 했는데, 이제 옆을 좀 볼 여유가 생기니까 가족이 없어진 거다. 아이들은 이제 아빠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동안 와이프에게 잘한 사람은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완전히 혼자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잘 살펴보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빠가 바쁘다. 아이가 한참 자랄 때인 남자 30대는 회사에서 제일 바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대리, 과장, 차장 타이틀 달고 무지하게 일한다. 그러다 보니 야근도, 주말 근무도 많다. 필자도 그랬다. 아이들이 아빠를 필요로 하는 바로 그 기간에 아빠는 회사 일로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멀어져 가다 40대 후반이 되어서 여유가 생기고 이제 좀 옆을 볼 만할 때 아이들은 옆에 없다. 그땐 아빠랑 말도 잘 안 섞는다. 사실 아이들 입장도 이해가 간다. 어릴 땐 얼굴도 못 보던 아빠가 갑자기 친한 척하니 당황스러운 거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빠와 아이 모두 잘못이 없다. 그냥 서로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거다.

해결책은 뭘까? 물론 외국의 아빠들처럼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시간 보내주면 된다. 그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혹시 아빠와 아이들의 타이밍을 맞추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려해 봤는지? 아빠들이 한창 일할 때와 아이들이 한창 아빠를 필요로 할 때를 맞추면 이런 문제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좀 늦게 낳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좀 늦게 낳아 아빠가 여유 있는 타이밍에 육아를 한다면 아이도 아빠도 다 만족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늦게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부부에게 많은 친구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언제 키울 거냐, 우리 60 먹으면 그때 아이가 대학생일 텐데 그럼 70까지 일해야 한다 등등의 염려를 보낸다. 부모 나이가 많아지면 아이들을 보살필 경제적인, 체력적인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능력이 될 때 빨리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한 번의 직업만으로는 안 된다. 평균수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60, 70이 되어서도 일을 해야 한다. 좀 늦게 아이를 낳아도 되는 이유다. 좀 늦게 낳으면 아빠가 여유가 생길 시기와, 아이들이 아빠를 필요로 하는 시기가 딱 맞아 떨어진다. 뭐 타이밍이 맞아도 아빠가 혼자 놀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타이밍이 맞으면 아이들과 같이 놀 가능성은 더 올라가지 않겠는가.

어찌되었건 두려워하지 말고 아이 낳는 시기와 본인 인생의 일을 하는 시기와의 타이밍을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늦은 출산은 필자의 단순한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회적 문제가 가정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아빠의 전쟁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도 효과적인 코즈(Cause) 전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