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 25일로 일주년을 맞이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이제 돌을 맞이한 만큼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 동안 충분한 성장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대표적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와디즈를 필두로 인크, 오픈트레이드 등 다수의 펀딩 플랫폼은 일정정도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며 한국크라우드펀딩기업협의회까지 발족할 정도로 내적인 인프라 구축에도 성공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1주년을 자축하는 크라우드펀딩 업계의 속은 의외로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나름의 규제 및 성장을 가로막는 유무형의 유리판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 출처=픽사베이

성과는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출범 1주년을 맞은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건수는 총 121건이며, 총 180억원의 자금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성공 펀딩은 261건의 46.4%에 달한다. 킥스타터 및 인디고고로 대표되는 미국 크라우드펀딩 업계가 초창기 20%의 성공률을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성공 펀딩에는 총 7172명의 투자자가 참여했으며 제조업이 38건으로 제일 많았다. 뒤를 이어 IT 및 모바일 34건, 문화 16건으로 집계됐다.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일반이 133만원이며 적격투자는 621만원, 전문투자는 3411만원으로 확인됐다. 출범 초기 5곳이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이제 14개까지 늘어났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기념식에 참석해 크라우드펀딩 업계의 노고를 치하하는 한편, "입법과정만 2년이 걸렸으나 현재의 성과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일부에서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지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매우 잘하고 있다고 본다"는 소감을 밝혔다.

▲ 출처=와디즈

임종룡 위원장의 말처럼 국내 크라우드펀딩 업계는 증권형을 타도 나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에 성공했다. 정부의 국정철학인 창조경제를 중심으로 크라우드펀딩이 스타트업 육성과 극적으로 연결된 덕분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려는 정부의 의도는 자금조달은 물론, 마케팅 및 홍보에 있어 강점을 보이는 크라우드펀딩을 적극적으로 육성했고, 다행히 금융위원회도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 강력한 로드맵을 짜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 금융위원회가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놀랐다"며 "금융위원회가 국내 크라우드펀딩 업계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 양조장 크라우드펀딩. 출처=와디즈

문제도 많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 나름의 바람을 일으키며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분명 있다. 먼저 투자한도 문제다. 현재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일반 개인 투자자는 한 기업에 최대 200만원, 연간 500만원 이상으로 투자할 수 없다.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이 금융위원회가 제공하는 별도의 가이드라인으로 일반 기준 연간 1000만원의 투자한도를 보장하는 점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와디즈는 "투자한도가 너무 제한적이라 시장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며 "크라우드펀딩이 초창기인데다 증권형의 도입도 역사가 짧아 보수적일 수 밖에 없지만, 이 부분은 업계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투자한도를 늘리는 것을 자본시장법의 적용으로 제한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플랫폼이며, 자금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간 투자 한도가 200만원인 일반투자의 경우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이 133만원에 그쳤다는 점도 중요하다. 평균이 130만원대인 상황에서 200만원 이상의 투자한도를 보장한다고 폭발적인 시장의 외연적 확장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개인투자의 경우 200만원에 근접한 금액과, 아예 10만원대의 낮은 금액으로 투자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위기다. 시장이 초기단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위 200만원에 근접한 금액을 투자하는 이들이 이윤을 확신하고 높은 베팅에 나설 경우, 업계의 잠재력이 크게 신장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게다가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P2P, 즉 개인간 거래라는 이유로 이를 개인간 금전거래인지, 혹은 대출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가 다소 완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에도 비슷한 정책 기조를 덧대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광고 규제도 있다. 현행법상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에 나선 기업은 해당 펀딩 플랫폼에서만 이를 알릴 수 있다. 다양한 광고를 집행하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과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이 부분에서 금융위원회는 광고 규제 완화를 위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으나 비선실세 논란으로 국회일정이 올스톱된 상태에서, 업계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광고 규제 완화는 업계와 연결된 다양한 파생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금까지 크라우드펀딩을 강하게 끌어온 금융위원회 자체의 문제도 있다. 지난해 11월 초 박근혜 대통령은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경제부총리 후보로 내세웠으나 야당의 반대로 인준이 거부된 바 있다. 그런 이유로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여전히 한국 경제의 사령탑을 맡는 상태에서 임종룡 위원장과의 관계가 애매해진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어색한 상황이 금융위원회의 신사업 동력으로 상실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임종룡 위원장의 경제부총리 내정 당시에도 "위원장의 거취와 상관없이 크라우드펀딩을 비롯한 금융위원회의 업무는 흔들림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정 부분에서 크라우드펀딩 내부의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먼저 내적인 정비. 와디즈가 최근 펀딩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모두의 예상을 깨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 총 7억원을 투자한 투자자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영화 '판도라 펀딩'에서도 드러난 소소한 문제가 눈길을 끈다. 일반적으로 영화 콘텐츠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기준으로 삼아 펀딩 수익예상을 고지하는 상황에서, 영화관 상영 외 IPTV 및 넷플릭스와 같은 추가 VOD 수입도 존재하기 때문에 펀딩 성공율을 확실하게 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영화 판도라. 출처=홈페이지

예를 들어 700만명의 관객을 모으면 30%의 수익을 보장한다고 가정했을때, IPTV 및 넷플릭스 계약에 따른 수익을 고려하면 손익분기점은 다소 낮아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을 펀딩 초기에 확정할 수 없다는 대목이 문제다. 제작사 및 배급사들이 영화관 외 수익에 대한 계약을 펀딩 플랫폼에 공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는 신뢰도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펀딩 플랫폼들이 추후 이러한 부분을 반영해 손익분기점을 재조정하지만, 분명 보완해야할 지점으로 보인다.

크라우드펀딩 자체가 개인이 하기에 너무 어렵다는 말은 꾸준히 나온다. 개인정보확인 및 기타 다양한 인증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는 펀딩 플랫폼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상황이라 시간이 지나면 나름 방법이 보일 전망이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아이템이 지나치게 하드웨어 중심으로 꾸려지는 것도 눈길을 끈다.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특정 영역에 대한 편중현상은 영화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진격하는 펀딩 플랫폼 업체 입장에서는 분명 리스크가 된다. 어차피 펀딩 플랫폼 입장에서는 아이템의 다각화가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하드웨어 제품 중심으로 시장이 꾸려지는 부분은 최근 스타트업들의 모바일 서비스 기조와 맞물리며 소위 '성장 억제판'이 될 가능성도 있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용자 경험을 담보하는 스타트업 및 업체가 하드웨어 스타트업 및 업체보다 양적인 부분에서 절대적 우위를 보인다는 점도 아쉽다. 이 문제는 펀딩 플랫폼의 정교한 전략으로 해결해야 한다.

크라우드펀딩을 자금 조달이 아닌 홍보 및 마케팅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분위기가 많아지는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일차적으로 자금 조달이 아닌 상황이라면 홍보와 마케팅의 관점에서 크라우드펀딩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있고, 이 과정에서 소위 먹튀도 등장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 이러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추후 반드시 고려해야할 지점이다.

펀딩 플랫폼의 전문화도 관건이다. 최근 크라우드펀딩은 제품을 넘어 콘텐츠, 심지어 영화까지 저변을 넓히는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펀딩 플랫폼을 일차적으로 믿기 때문에, 펀딩 플랫폼은 '진짜'를 걸러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내 펀딩 플랫폼이 와디즈를 제외하고 일정정도의 규모가 되지 않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일반직원이 제품의 서비스를 평가하고 영화 콘텐츠의 시사회를 통해 수익성을 예상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추후 시장의 크기가 커지면 펀딩 플랫폼은 자체적인 전문가를 여럿 보유해야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중요한 포인트다.

진부하지만 펀딩 플랫폼 자체에 대한 일차적인 공신력 문제도 있다. 해외의 사례지만 최근 릴리 로보틱스의 폐업 등 크라우드펀딩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방법이 없다. 온전히 업체가 풀어야 한다.

▲ 출처=릴리 로보틱스

마지막으로 창조경제와의 연결고리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스타트업 활성화로 덧대어 이를 붐업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크라우드펀딩, 특히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육성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이제는 크라우드펀딩 자체의 외연이 넓어지는 상황에서 스타트업 육성정책의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정정도 벗어나 크라우드펀딩 본연에 집중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