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저널리즘의 대명사, 혁신의 선두를 강렬하게 원하는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최근 7명의 기자로 구성된 위원회를 중심으로 ‘독보적 저널리즘'(Journalism That Stands Apart)’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분명히 내부 보고서라는데 바다건너 서울 안국동에서 타자치고 있는 제가 봤습니다. 세상 좋아졌습니다.

 

독보적 저널리즘과 비극

독보적 저널리즘이 뭘까요? 뉴욕타임스 내부 위원회의 생각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복적인 편집구조를 줄이고 시각적인 사용자 경험을 디테일하게 잡아가는 한편 독자 타깃을 명확하게 구분해 맞춤형 서비스를 시도하는 등이 골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취재하기 위해 500만달러를 투입하자’와 같은 구체적인 방법론도 눈에 들어옵니다.

해당 보고서에 대한 판단에는 이견의 여지가 있겠지만, 시각적 접근 및 타깃 설정과 더불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뉴욕타임스의 제안은 마치 다국적 호텔체인의 고객만족 가이드 라인을 닮았습니다. 이제, 언론사는 변신해야 합니다.

뉴욕타임스의 보고서는 국내 언론환경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간단한 역사를 살필 필요가 있어요. 글로벌 업계도 마찬가지겠지만, 국내 언론은 철저하게 포털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포털이 막 움직일 당시에는 미비한 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정부 차원의 ‘IT강국 코리아’ 파도가 몰려오는 한편, 통신사들이 전국에 열심히 ‘망’을 깔며 인터넷 속도가 IT 발전의 미래라는 마약에 취하면서 상황이 일변합니다. 언론사는 트래픽이 몰리는 포털에 종속되기 시작했고, 이제 ‘네이버 뉴스, 다음 뉴스’라는 말은 일종의 권위처럼 여겨집니다.

콘텐츠 제작만 신경쓰며 전국의 신문배달원 유통구조를 사랑했던 언론사는 변신을 강제당했습니다. 때로는 반항하거나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게 되었어요. 여기에 페이스북 및 트위터 등 SNS 서비스들이 초연결의 플랫폼을 들고 모바일의 장을 활짝 열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됩니다. 네, 모든 언론사들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뉴스를 인터넷으로 본다, 어쩌지?”

어떤 언론사는 카드뉴스를 만듭니다. 어떤 언론사는 내이티브 광고를 녹여요. 또 어떤 언론사는 동영상에 천착하며, 어떤 언론사는 ‘포털이 뭐가 중요해? 페이스북이 있다!’고 외칩니다. 반응형 웹을 시도하거나 하이브리드, 심지어 가상현실 저널리즘도 고려됩니다. 로봇이 쓴 기사가 나오고, 기자 뺨치는 실력을 가진 일반인들의 콘텐츠 제작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온라인, 모바일 퍼스트라는 ICT 기업에나 어울릴 단어들이 난무합니다.

▲ 출처=플리커

비판, 그리고 자성

왜 언론사는 포털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부분. 네? 모두가 위기의식을 느끼는데 아직은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언론사는 없다고요? 지금이 종이신문의 위기임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2015년 기준, 조사결과에 따르면 세계 120개국 신문사의 매출 중 93%가 아직도 종이신문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읽는 사람이 모바일 및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사람보다 최대 3배 정도 된다고 합니다.

종이신문의 파괴력은 아직도 유효한겁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국내 언론상황만 봐도 분명 인쇄사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으며 온라인 독자층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요. 3배라고 하지만 조만간 역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사가 위기감은 느끼면서도 이렇다 할 대응태세를 보이는 것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사의 주 수익원은 광고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언론사 광고 ‘매출’은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요. 무슨 말이냐고요? 기업 입장에서 광고를 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은 지상파TV나 종이신문에 광고하면서 확실한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히 중소매체의 경우 광고효과에 대한 평가는 비록 이견이 있지만, 지나치게 제한적입니다. 그저 기계적으로 나가는 보험성 광고, 이것이 언론사의 종이신문 재출 등으로 잡히는 희한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왔다는 뜻이에요.

때 되면 문제가 되는 정부 부처의 언론사 집행 광고. 여기에는 광고효과 이상의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문제가 보이지 않나요? 어쩌면 언론의 광고는 광고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구독자의 광고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닌, 철저하게 공급자(기업)와 플랫폼(언론사)의 이해관계에서 움직입니다. 광고 플랫폼의 다각화가 시작되며 예견된 현상이며, 오래된 나선입니다.

자연스럽게 노력이 부족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광고 문제를 떠나 기사 전달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요. 언론사 특유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이 덧대어진 상태에서 언론사는 종이신문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러한 의식의 연장은 노력의 제한성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종이신문의 광고매출 효과가 나름의 생명력을 인정받는 상태에서 기사도 온라인, 모바일 퍼스트 방식을 확실하게 체화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라고요? ‘광고의 중심에 구독자가 비껴있는 것처럼, 기사도 제공스킬 그 이상의 고도화가 없었다’는 겁니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언론사도 ‘카드뉴스, 동영상 뉴스, 심지어 가상현실 저널리즘을 통해 상황에 맞는 고도화를 타진하고 있다’는 주장.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방식이 ‘왜 먹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나요? 피키캐스트의 연예인 짤방은 재미있지만, 언론사의 코스피 분석 짤방은 재미없어요. 연예인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많아 나름 파급력이 있다고, 언론사 페이스북 팔로워가 많으면 없던 파급력이 생깁니까?

접근방식부터 잘못됐습니다. 뉴스는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가치이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운 포맷을 무작정 차용한다고 그 뉴스가 재미있고 흥미로워지지는 않아요. 페이스북 팔로워가 몇 만이고 트위터가 얼마나 활발한지 따집니다. 나름 의미는 있어요. 그런데 그 다음은요? 괜히 뉴스를 통해 웃기려고 페이스북 뉴스 링크에 ‘따봉’ 남발하다가 ‘언론사가 그러면 곤란하지’라는 질책을 받은 ‘웃픈’ 사연도 뇌리를 스칩니다. 이런 맙소사, 어쩌라고?

▲ 출처=플리커

비판은 쉽고, 대안은 어렵다...‘그래도’

사람들은 언론사를 비판합니다. ‘포털에 기어들어가 던져주는 먹이만 먹고 사는 놈들’이라는 지적. 슬프지만 틀린말이 아니에요. ‘포털을 벗어나봐, 조금 새로운 접근법은 없나? 이 공룡같은 놈들’이라고 욕해도 언론사는 할 말이 없어요. 사실이니까.

하지만 비판은 쉽고 대안은 어렵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

올해 유출된 뉴욕타임스의 내부 보고서도 흥미롭지만, 사실 2014년 공개된 뉴욕타임스의 혁신 보고서를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뉴스룸을 개혁하고 독자개발에 나서는 한편 모바일 퍼스트를 빠르게 잡아가자는 주장 등이 골자입니다.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네요. 뉴스룸 개혁. 크게 인재영입과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부문 강화 및 부서간 협력강화 등이 핵심입니다.

무엇을 말할까요? 바로 독보적인 저널리즘입니다. 콘텐츠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뉴욕타임스는 조직을 개편하고 유동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한겁니다. 아무리 모바일 환경에서 재미있게 만들어도 뉴스는 연예인 신변잡기 스토리보다 따분해요. 그렇다고 10대에 집중해 따봉이나 날릴까요? 뉴스를 만들지 말까요? 카드뉴스? 펀딩? 답은 콘텐츠입니다. 그리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을 키우고, 그 다음에 유통 및 확산의 가치를 논해야 합니다. 빅데이터 역량을 키우고 큐레이션에 돌입하고요.

여기서 하나 더. 대형 언론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중소형 언론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사의 무거운 엉덩이를 비판하면서 두 개념을 혼용하고 있는데, 중소형 언론사는 운신의 폭이 좁은 대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조직을 운용하며 콘텐츠의 특화된 질을 꾸미는 것이 홈페이지 고치고 신기술 도입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최근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는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비스를 런칭하기 전, 무작정 거리로 나가 각 연령병, 계층별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합니다. 딱 하나. 수요자를 위한 최적의 사용자 경험을 만들기 위해. 언론사도 독자를 중심에 두고 광고 매출이든 기사의 방향성을 생각하면 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차라리 페이스북 팔로워 숫자 올리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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