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국내 경제 성장 동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8%에서 2.5%로 0.3%p 하향조정하며 수출 부진이 다소 완화되는 분위기지만 내수의 회복세가 약화되면서 성장세가 둔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은이 매년 1월 발표되는 경제 성장률 지표에서 2%대 전망을 내놓은 것은 2013년 이후 4년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의 미래에도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 와병 후 그룹의 콘트롤 타워로 활동하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특검이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비선실세 논란을 수사하고 있는 특검은 현재 최순실과 삼성, 이재용의 연결고리가 박근혜 대통령(직무정지)의 뇌물죄 성립에 결정적 단서라고 판단하고 있다. 뇌물공여 및 위증이 주된 혐의로 검토되고 있으며 그룹의 핵심인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 사장에 대한 일괄적인 법적 처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대가 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12일 이사회를 열어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결의한 바 있다. 이사회는 “급변하는 IT산업환경 속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중장기 성장동력 확보 등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 지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어 이사회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회 일원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추천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등재를 바탕으로 뉴삼성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것에 집중한 바 있다. 무려 8년 만에 오너일가가 책임경영을 바탕으로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총수일가의 등기이사 선임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지난해 9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등기이사에 오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행보가 나름 의미있는 이유다.

이재용 부회장은 실사구시에 입각한 경영 스타일과 소위 선택과 집중으로 좁혀지는 방법론으로 이건희 회장의 공백을 효과적으로 막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e삼성' 등의 실패로 이재용 부회장의 능력에 의문부호를 매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전면에 등장한 이재용 부회장의 '성적'은 일견 고무적이다. 선택과 집중적 측면에서는 방산과 화학계열을 과감히 털어내고 프린팅 사업부 매각에 나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힘을 집중시킬 수 있는 곳에서 승부를 본다'는 승부수로 해석된다.

바이오 사업 진출도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다. 삼성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송도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본사에서 글로벌 1위 바이오 의약품 생산기업(CMO)을 노리는 제3공장의 기공식을 열기도 했다. 물론 경기도 평택에 세계 최대 반도체 라인 기공에 나선 대목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에 15조6000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 착수했다.

삼성전자의 강력한 인수합병 의지의 배경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2014년 8월 인수한 스마트싱스, 2014년 8월 미국의 공조회사 콰이어드사이드 인수, 2014년 11월에는 서버용 SSD 소프트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인수했으며 2015년 11월에는 브라질 문서 출력관리 기업인 심프레스를 품에 안기도 했다. 또 2015년 2월 인수한 루프페이는 삼성페이의 핵심이 되어 주었고 2015년 3월 인수한 예스코일렉트로닉스 인수, 2016년 6월 조이언트 인수, 최근 인공지능 플랫폼 기업 비브랩스도 인수했다. 이러한 방향성이 갤럭시노트7 이후 돌파구를 찾으려는 삼성전자의 행보와 겹치며, 이재용 부회장의 등판과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하만 인수는 가히 화룡점정이다.

지난해 9월 29일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정확한 회담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화제를 뿌리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는 인도의 모디 총리와 만나 글로벌 경영을 시작하며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조직 문화적 차원에서도 변화를 예고했다. 지난해 3월 발표된 스타트업 삼성이 극적이다. 조직문화의 변화를 바탕으로 현장을 중요시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적절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7월 임직원들의 집단지성 플랫폼인 모자이크(MOSAIC)에서 벌어진 온라인 대토론회를 통해 1200건의 제안과 댓글을 모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삼성을 위한 각자의 의견을 모았다. 삼성 특유의 강한 ‘승부근성(Winning Spirit)’을 살리자는 의지다.

이건희 회장 당시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는 강력한 아젠다와 함께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권위의 흐름이라면,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트업 삼성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문화개조의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행사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참석하지 않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심장이 멈추다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발생한 경영상의 공백을 온전히 막아내는 한편, '뉴 삼성'의 기틀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이 터지며 삼성은 사상 초유의 위기와 직면하게 됐다. 특검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구속 수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며, 삼성의 최순실 일가 지원에 이재용 부회장이 깊숙히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 내부의 분위기는 당혹을 넘어 참담함이 번지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폭풍전야라는 표현만 어울릴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 수사 가능성에 대한 공식 코멘트를 요청하자 삼성그룹은 "특별히 할 말이 없으며, 성실히 수사에 임할 것"이라는 입장만 전달해 왔다.

문제는 경제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승계를 위한 민원을 매개로 최순실 일가에 막대한 지원을 제공한 것은 법적인 문제로 치부하더라도, 당장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날카로워지며 경영 공백이 불가피해지는 것도 분명하다.

설상가상으로 인수합병 대상인 하만이 시끄럽다. 13일 미국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에 따르면 하만의 주주들은 자사 이사들이 삼성전자와의 합병을 추진하며 소위 신의성실 의무를 위반했다며 집단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협상 과정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다.

엄밀히 말해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이사회의 의결사항일 뿐 주주의 동의는 아직 미완의 숙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 하만의 주주들을 설득하는 등의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출국금지를 받은 현재 상황에서는 언감생심일 뿐이다.

보호 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삼성전자의 대내외적 분위기가 급변하는 것도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미국 우선주의가 거세게 요동칠 것이 확실하고, 이 위기를 넘어설 강력한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삼성은 속수무책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넘으려던 삼성의 스텝이 완전히 꼬였다"며 "보호 무역주의의 흐름과 노골적인 경제적 견제, 여기에 대한민국 외교라인의 사실상 붕괴라는 삼각파도가 삼성의 위기를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 심각한 파열음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