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정기예금만 찾던 부자들이 다시 투자처를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펀드라면 질색하던 부자들이었지만, 3%대 저금리에 손해를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물가상승률만도 못한 정기예금 금리에서 벗어나 대체 투자처를 찾아보면서 다시 펀드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직접투자를 하는 부자들도 있지만, 포트폴리오 중 3% 정도의 극히 일부분에 속한다고 PB들은 말한다. 대부분 자산가들은 안전한 간접투자인 펀드에 15~20% 정도 돈을 묻어두고 있다고 전했다.

부자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경기회복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준다. 조인호 신한은행 분당PB센터 부센터장도 “3개월 전에는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는데 현재는 문의가 많다”며 “부자들은 경기흐름을 빨리 읽기 때문에 경기회복의 선행표시로 봐도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국내 경제는 10년 주기이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경기가 침체됐고, 77년에는 80년대 초 목표였던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그 다음으로 온 위기는 1985년으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5개국이 맺은 플라자협정으로 인해 달러가치가 떨어지면서 원화가 평가절하돼 위기가 찾아왔다. 그 이후 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10년 주기로 보면 투자처가 보인다

위기 당시에는 누구나 힘들지만, 위기에서 탈출하는 시기를 감지한 이들은 현재 부자가 돼 있다. PB들은 10년 주기로 바라보면 투자처가 어떻게 변화되고 언제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신한은행 조인호 부센터장은 “현재는 지난 10년 주기로 보면 2003 ~2004년에 속한다”며 “그 당시 채권투자가 붐을 이뤘고, 2005년부터 펀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인 은행 예적금과 국고채에서 벗어나면 안정적이고 수익률도 괜찮은 채권으로 오게 되고,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주식과 펀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고채 금리 전망도 추경용 국고채 발행으로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나오고 있어 국고채에 투자하는 MMF 자금이 많이 빠져나오고 있다. 지난 4월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MMF 설정액은 전일 대비 2조9860억원 감소한 118조4430억원을 기록했다. MMF 설정액이 120조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2월16일 이후 처음이다.

여운봉 미래에셋생명 스타타워지점 지점장은 지금을 1998년~99년으로 봤다. 위기 직후라는 점과 함께, 1998년도 주가가 360을 기록했을 때 주식으로 갔듯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집중하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여 지점장은 “10년 전 상황과 많이 다르지만, 주식·부동산·채권 등 투자자산은 변하지 않았다”며 “바닥에 근접하거나 바닥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을 때 부자들은 움직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회사채 수익률, 정기예금보다 낫네

지난해 연말에 부자들은 현금으로 들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들 은행으로 달려갔다. 연말 7%대 정기예금에 돈을 묻어두거나 국공채에 투자하는 MMF에 투자했다. 하지만 금리가 계속 인하되면서 정기예금이 아닌 고금리 회사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펀드보다는 우량 회사채가 안정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4월1일 현재 국고채 금리가 4%대를 기록했다. 지난 3월 한 달간 0.12%p 상승한 것이다. 이처럼 국고채 금리가 올라가면서 채권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투자자들에게 메리트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달리 회사채는 금융위기 바람이 거셌던 10월과 11월 사이 7~8%대(AA-등급)의 고금리였지만, 최근에는 5%대를 기록하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수익률도 좋고, 3%대의 정기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만기까지 가져가도 부담이 없다. PB센터에서는 사모형태로 채권 투자 금액을 모집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표시채권의 만기 경과물, 즉 만기까지 1년~1년6개월 남은 부자들이 사모형태로 돈을 모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 채권들이 해외에서는 평가절하되는 탓에 10%대의 고금리로 발행됐으며, 환율을 조정하는 금리(3.5%)를 제하더라도 7~8%의 고금리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50억원 단위로 돈을 모집하며, 해외에서 BBB등급의 여신금융채권 또는 은행 후순위채권에 투자한다. 이종영 국민은행 강남파이낸스PB센터 부센터장은 “3년 만기 채권금리가 8~10% 정도 되는데, 아시아나, 코오롱, 기아자동차 채권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들도 많다”고 답했다.

회사채 투자에 관심을 보이면서 PB들도 채권 판매에 정신이 없다. 신한은행 조인호 부센터장은 “3개월 전에 비해 회사채 문의와 거래도 많아졌다”며 “오늘(3월31일)도 상담문의만 6건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PB들은 회사채 투자도 좋지만, 콜옵션 거부 등 상환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 부센터장은 “우리은행이 후순위채권 조기상환(콜옵션)을 거부했듯이 회사 사정에 따라서 상환 거부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며 “비우량채권이 수익이 좋다고 하지만 그만큼의 리스크가 따른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동희 우리투자증권 압구정 PB부장은 또 “우량 기업들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고, 비우량 회사채는 여전히 신용 위험도가 높아 우선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언급했다.

“15억원 손실 봤는데 넣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인터뷰 도중 걸려온 강남 고객의 전화이다. 해당 고객은 중국 펀드에 몇 십억 원대의 돈을 투자한 상황인데, 손실액은 무려 15억원(-40%)이었다.

하지만 고객은 해당 PB에게 중국펀드에 투자하겠다고 전화를 했다.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이 계속 발표되면서 중국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고, 향후 전망도 비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손실 봐도 ‘중국과 한국’만 한 게 없다

증권사, 은행, 보험업계 자산관리사들 대부분이 중국펀드 또는 주식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펀드에 배신당했던 기억을 잊은 것일까. 아니, 그 반대로 중국펀드의 배신을 대비하면서 투자하겠다는 마음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PB들은 말한다. 특히 이제 거치식이 아닌, 적립식으로 투자방식을 바꿨다.

유동희 우리투자증권 부장은 “현재 신흥 시장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은 중국만 한 곳이 없다”며 “선진국이 금융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반면, 중국은 거대한 소비 시장이 뒷받침하고 있어 예상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해외펀드에 투자할 경우 환헤지 설정 유무도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며 “해외펀드 손실이 몇 배로 컸던 이유도 환헤지로 비롯됐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PB들이 고객에게 제시하는 환헤지 설정 기준 환율은 ‘1350원’이다. 이 기준 환율보다 하락할 경우에는 환헷지를 걸지 말고, 상승할 경우에는 환헤지를 설정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유 부장은 “환율 전망이 까다롭기 때문에 환헤지 설정 기준을 잡기 힘들지만 환율 전망이 낙관적이기 때문에 1350원으로 기준을 잡는 게 좋다”고 언급했다.

중국주식에 직접투자하는 고객들도 있다. 중국의 몽유유업, 인민재산보험, 회원주스 등 중국 우량기업 주식을 매수하는데, 인민재산보험은 1주당 800원이다. 기본매수가 2000주이므로 160만원만 집어넣어도 투자가 된다. 여운봉 미래에셋생명 지점장은 “부자들은 중국주식에 최대 10억원대로 투자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중국주식이 크게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부자들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국내 주식형펀드, 인덱스펀드도 주목하는 투자 대상 중 하나이다. 코스피지수가 회복을 보임에 따라 지수연동형인 인덱스펀드에 투자자금을 늘리고 있다. 국내 주식형으로는 우량한 대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에 투자 중이다.

우리투자증권 유 부장은 “지금이 바닥이라는 분위기와 낙관적인 전망으로 1200에 안착할 가능성이 많다”며 “코스피가 점차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는 부자들은 인덱스와 국내 주식형 펀드에 대해 문의를 많이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 아파트와 상가 싸게 살 때다

미래에셋생명 여운봉 지점장은 “강남불패라는 단어는 지워질 수 없다”며 “부자들이 살 곳은 강남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부자들은 강남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가격이 하락한 급매물 또는 상가를 알아보고 있다.

최근 여 지점장의 고객 중 한 명은 개포동 재건축 아파트 급매물을 구매했다. 예전에는 20평이 7억~9억원대였지만, 최근에는 5억원대로 급락했다. 해당 고객은 재건축 규제가 계속 완화될 것으로 예상, 급매물을 5억원대로 사들였다. 이 밖에도 다른 고객들도 재건축 아파트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부자들이 부동산 하락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주목하는 이유는 규제완화 때문이다. 2주택 중과세와 양도세 완화가 부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했다고 PB들은 전한다. 신한은행 조인호 부센터장은 “특히 강남 강변을 중심으로 알아보고 있는 부자고객들이 많다”며 “압구정동을 비롯해서 조망권이 좋은 삼성 아이파크 등도 주목 대상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아파트 이외에도 상가와 빌딩을 알아보고 있다. 재건축 중인 상가 분양과 강남 도산대로변의 빌딩들이 그 대상이다. 하지만 신도시 상가들은 주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PB들에 따르면 판교신도시는 ‘베드타운’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상가 수익이 그다지 재미없을 것이라고 한다.

신한은행 조 부센터장은 “강남 아니면 분당, 서울 이내의 상가들을 중심으로 문의가 들어오고 거래도 성사되고 있다”며 “판교신도시는 상가 1층이 아직 분양되지 못할 정도로 부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에셋생명 여 지점장은 서울시가 나누는 각 5대권역의 중심가 상가에 대한 부자들의 관심도가 크다고 전했다. 지방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상권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상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여 지점장은 “상가가격이 하락한 탓에 싼 가격으로 상가를 구매하는 부자들이 많다”며 “강북 뉴타운 상가와 재건축 아파트가 올라가는 지역의 상가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10%는 원자재에 투자

부자들의 투자처는 현물도 있다. 지난해 원유가격이 150달러까지 치솟은 것에 비해 올해 원유가격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50~70달러를 기록 중이다.

부자들은 하락 폭이 큰 원유에 관심을 보이며 오일펀드 또는 유전사업에 투자하는 펀드에 돈을 집어넣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 경기가 회복될 경우에 원유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현재가 투자 기회라는 것이다.

사실 오일펀드나 원자재펀드는 지난해 하반기에 깡통펀드 1위를 기록했다. 광공업 관련 펀드는 -60~70%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내기도 했다. 여기에 선물환까지 설정한 탓에 마이너스 수익률은 두 배가 되면서 원금을 모두 까먹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하지만 가격이 하락한 지금은 향후 상승세만이 남았다. 몇몇 부자고객들은 사모펀드를 조성해 미국 내 유전에 투자하고 있다고도 한다. 원유는 원가보다 선물가격이 더 높기 때문에 일정 기간에 맞춰 거래하면 어느 정도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원유가격 하락으로 선물 거래가 도리어 손실을 가져오자, 원유가격과 함께 올라가는 유전에 투자하는 것이다. 원유가격이 상승하면 원유 관련 산업인 유전산업도 동반 상승하기 때문이다.

금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는 게 부자들의 시각이다. 금은 3월19일 현재 선물가격이 온스당 958.80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조만간 하락하지 않겠냐는 의견에도 부자들은 끄떡없다. 1000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크기 때문에 당분간 상승세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달러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취급되는 금은 달러가격이 하락하면 같이 하락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달러 하락으로 찾아올 인플레이션으로 금 가격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은행 조인호 부센터장도 “금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상당 금액을 신한은행 골드리슈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