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 서울의 도시정책을 말하다> 서울연구원 엮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이 책은 도서분류상 ‘정부간행물’에 속해 있다. 출판은 하되 저자들만 읽는다는 이른바 ‘관제서적’이다. 그래서 <이코노믹리뷰> 서평감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책을 받아 읽어보면서 기꺼이 서평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책을 읽던 중 한 가지 잊혀진 기억도 떠올랐다. 1989년 가을 난생 처음 외국 땅을 밟았다. 미국 뉴욕서 열린 국제회의 참석차 갔다. 어둑할 때 공항에 도착했는데 하늘에 뭔가 날라 다녔다. 거리에 버려진 검은 비닐봉지들이었다. 도심 공기는 골목과 하수구에서 풍겨 나온 악취와 포장마차 음식 냄새가 뒤섞여 비릿했다. 바로 눈 앞에서 중년 여성이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행인들은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가이드도 으레 벌어지는 일상이니 각자 조심하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실망이 컸다. 세계 최대 도시 뉴욕은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나 다를 바 없었다.

그로부터 수년 뒤 뉴욕시가 벌인 혁신은 기적에 가깝다.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을 중심으로 뉴욕시 당국은 1994년부터 8년간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범죄율을 크게 낮췄고 부정부패를 추방했다. 불필요한 시 소유 건물들을 매각하고 도시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행정혁신도 추진했다. 그 결과 뉴욕시 인구가 늘고 자본이 유입되면서 부동산 투자도 잇따랐고 고용과 소비가 증가했다. 뉴욕시가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당시 뉴욕혁신의 전말은 2003년 초 출간된 <줄리아니 시장의 뉴욕시정 개혁>에 소상히 설명돼 있다. 필자는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갔다. 책은 역시 정부간행물코너에 있었고, 친절한 설명보다는 수치와 도표, 목록 등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뉴욕시민들의 실생활을 다른 언어로 표현한 것이었다. <서울의 도시정책>도 마찬가지다. 다소 어려운 듯해도 서울 시민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책의 차이라면, <뉴욕시정 개혁>은 혁신의 결과 보고서인 반면 <서울의 도시정책>은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고찰과 대응방안을 담은 향후 정책 지침서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시적 저성장이 아니라 기조로서의 저성장 시대가 왔으니 도시정책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수도 서울에 나타나는 저성장의 징후와 양상부터 살핀다. 서울은 1970년대 이래 줄곧 고도성장 시스템에 맞게 유지되었다. 서울 외곽에서 추진된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나 개발이익에 근거한 재개발사업, 주택과 공공 인프라의 양적인 공급정책 등은 모두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자, 고도성장기이기에 가능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바야흐로 저성장의 시대다. 고도성장에 익숙한 우리에게 저성장은 낯설다. 하지만 저성장의 징후는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저출산과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둔화는 경제가 성장 단계를 지나 성숙 단계로 진입하면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1970~1980년대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던 경제성장률은 2~3%대로 떨어졌고, 2040년이 되면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인구 전망도 상당히 어둡다.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올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서고, 2026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동시에,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은 이제 경제, 주택·부동산, 인구, 재정 등 전 부문에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저성장은 앞으로 다가올 ‘예정된 현실’이다. 다시 고도성장기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일이다.

저자들은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을 경험한 런던 베를린 도쿄 등 외국의 대응책을 분석해 주택, 재개발, 공공 인프라, 공간구조 등 부문별 정책 이슈와 저성장 극복을 위한 대응 방안들을 제시한다. 책에서 제시한 도시정책의 새 패러다임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신규개발을 통한 양적 공급확대보다 기성 시가지의 환경개선과 관리를 지원해 질적 수준을 높인다. ▲ 수요자 특성에 맞게 정책을 수립한다. 시민의 관점에서 도시문제를 파악하고 과밀해소 혼잡완화 직주(직장과 주거)근접 등을 통해 시민들이 생활하기 편리한 도시를 지향한다. ▲저소득층·장애인·세입자·외국인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포용적 정책을 추진한다. ▲경제적 가치 중심의 외형적 개발에서 사람중심 도시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저자들은 저성장에 대하여 ‘위기’이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긴다. 이들은 고도성장기의 부정적인 영향 아래에서 쇠퇴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저성장기에서 지속가능한 새로운 안정을 찾을 것인지도 우리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서울시가 옳은 방향을 잡았다. 공공정책을 다루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일독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