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회생활 시작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걸그룹은 커녕 요즘 나오는 가수들은 잘 모르겠더군요. 노래방가면 호기롭게 뒷 페이지 최신가요를 뒤적이다가 멋적은 웃음과 함께 '무조건'을 열창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래, 나도 그런 나이지. 약간 나이 들어보니 이런 노래가 좋더라? 인생 뭐 있어? 참고로 제 스마트폰에 담긴 노래 중 최신가요는 별로 없습니다. 맞습니다. 제 걸그룹은 카라에서 멈췄습니다.

한 때 유행했다던 오디션 프로그램도, 최신가요도, 걸그룹도 잘 몰라요. 컴투미 시절의 밀크를 이길 수 있는 걸그룹은 최소한 저에게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SM엔터테인먼트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요? IT 기자라면 카카오에 인수된 로엔에 관심을 가지라고요? 물론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가 보여주는 행보가 재미있기 때문에 유독 팬심이 솟아납니다. 다만 한 가지 전제하자면, 대부분 이런식의 기사는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이어지기 일쑤이지만 제가 재미있어 하는 SM엔터테인먼트의 흥미 포인트는 분명한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은 '이제 하다하다 일개 기자의 취향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나?'라고 자괴감이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쓰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제 개인적인 흥미 포인트 한번 천천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스티브 잡스인가?
시간을 돌려 지난해 1월 27일로 가겠습니다. 당시 SM의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SM타운:뉴 컬처 테크놀로지, 2016이라는 행사를 통해 자사의 신사업을 대거 소개했습니다. 한류 3단계 로드맵으로도 잘 알려진 신사업의 내용은 흥미로웠습니다. 취재진이 대거 몰린 가운데 성황리에 열린 본 행사에서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IT 사랑을 유감없이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음원 스테이션 개설, EDM 레이블 설립 및 페스티벌 개시, 디지털 플랫폼 '에브리싱(everysing)' '에브리샷(everyshot)' '바이럴(Vyrl)'을 론칭, '루키즈 엔터테인먼트(Rookies Entertainment)' 앱 공개, MCN 등 SM의 5대 신규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소통(Interactive)을 중심으로 양방향 IT 플랫폼을 대거 공개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는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분위기'도 화제였습니다. 미국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를 받은 그는 당시 행사장에서 마치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50분으로 예정된 시간을 가득 채운 프리젠테이션을 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애플병에 걸린 사람은 멀리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를 밀어내면 곤란하죠. 샤오미의 레이쥔처럼, 저는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방식도 애플이 지향하는 고도의 브랜딩 방법론이라는 것에 한 표를 던집니다.

▲ 출처=SM

여기서 SM의 IT 사랑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IT부문 법인인 에브리싱 코리아를 통해 관련 경쟁력을 크게 키우고 있는 SM은 지난 2010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협력해 3D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나름의 동력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SK텔레콤과 함께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한류 레스토랑을 개발하기도 했어요. SM의 IT관련 인력은 지속적으로 충원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절정은 최근에 더욱 부각됐습니다. SK주식회사 C&C와 협력해 CES 2017에서 단독부스를 열어 인공지능 스피커 '위드'(Wyth)'를 공개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SK주식회사 C&C의 왓슨 기반 인공지능 ‘Aibril(에이브릴)’과 SM의 셀러브리티 콘텐츠를 결합해 완성했다고 합니다. 영어로 서비스 되며 올해 중순부터는 한국어 서비스도 추가된다고 하네요. SM소속 스타들의 음성을 담았고, 향후 SM 에이브릴 개인 비서 서비스 등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양사는 작년 11월 ‘에이브릴 기반 엔터테인먼트 전문 서비스 개발 협약’ 체결 이후 인공지능 왓슨 기반의 ‘에이브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한다면, 인공지능 스피커에 샤이니의 목소리가 담긴다는 겁니다. "누나,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잖아, 어서 일어나요잉~' 뭐 이런거 가능하다는 겁니다.

▲ 출처=SK

오프의 위력이 발휘된다
SM은 지난해 초 알리바바의 투자를 받아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중국 자본의 국내 콘텐츠 사업 잠식'이라는 측면에서 우려한 것이 사실이며, 이는 일정정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폭발적인 한류 콘텐츠의 위력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에 중론이 쏠립니다.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 보세요. '별에서 온 그대'의 성공 방정식에 주인공 직업만 살짝 바뀐 상태지만 중국은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답니다. 물론 한한령이 변수지만 한류 콘텐츠는 분명 먹히는 콘텐츠입니다. 이 대목에서 SM의 IT 연결은 콘텐츠의 파괴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전망입니다.

다만 SM이 당장 IT 기술의 체화를 바탕으로 종합 IT 기업으로 성장하려고 보는 것은 비약이 강합니다. 차라리 플랫폼 기업의 강점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미디어 기업이 되려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멤버 영입이 자유롭고 멤버 수의 제한이 없는 새로운 개념의 보이그룹인 NCT(New Culture Technology)가 힌트입니다. SM은 기존의 콘텐츠 사업의 전형을 부정하고, 스스로 플랫폼이 되어 확장성과 개방성을 중심으로 삼은 일종의 플랫폼 사업자를 꿈꾼다는 뜻입니다.

SM의 이러한 야심찬 시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글과 애플 등이 구사하는 일반적인 생태계 전략과 유사합니다. 강력한 킬러 콘텐츠, 혹은 강력한 기반기술력으로 자사 중심의 생태계를 만들어 새로운 바람을 연속적으로 빨아들이는 오픈소스 전략입니다. 네이버와의 비교도 좋습니다. 네이버랩스를 통해 기술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겠다는 네이버의 가치는 SM의 방식과 비슷하니까요. 다만 SM은 이러한 방식을 차용할 뿐 스스로의 정체성을 완전히 IT로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확보한 킬러 콘텐츠를 바탕으로 미디어 기업으로서 가지는 중추 생태계의 핵심을 노린다는 복안이니까요.

하지만 SM이 IT기업을 원하든, 플랫폼이나 미디어 기업을 원하든 중요한 포인트는 사실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오프의 힘'입니다. 이는 현재의 O2O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현재 카카오를 비롯한 국내 O2O 산업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시작해 오프라인으로 뻗어가며 일종의 플랫폼을 자임합니다. 기민하고 유연한 모바일 경쟁력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하지만 아직 현실의 강자는 오프라인이며, 최근에는 오프라인을 이해하는 사업자가 최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고젝(GO JEK)을 주목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통사정이 열악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오토바이가 이동수단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됐으며, 이를 '오젝'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고젝이 탄생했어요. 즉, 오프라인의 열망이 온라인으로 뻗어간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언하건데, 고젝은 국내 O2O 기업들이 가지지 못한 오프라인 DNA를 바탕으로 소위 '업의 이해'적 측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SM은 고젝과 닮았습니다. 이미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며 방대한 콘텐츠를 확보한 상태에서 풍부한 노하우를 겸비했지요. 이를 바탕으로 IT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달리는 겁니다. "IT는 거들 뿐"이며 본질은 오프에 있습니다. SM의 실험이 영악한 이유입니다.

▲ 출처=SM

"전형적 실수는 피하길"
콘텐츠와 플랫폼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찰떡궁합입니다. 이 지점에서 IP를 포함한 방대한 오프의 권력은 IT 기술을 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됩니다. SM은 그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찬사는 피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말해 SM이 콘텐츠와 IT 기술의 만남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확실하게' 도출한 것은 아니니까요. 이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를 차치한다고 해도, SM의 방식에는 '오프에서 온으로 향하는 플레이어의 전형적 실수 가능성'도 보입니다. 일단 한국말 수업이 끝났다는 에이브릴의 성능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왓슨의 국내 리셀러인 'SK주식회사 C&C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의 문제도 있으니까요.

민감한 대목은 SM의 접근법입니다. 이번에 SM은 '무려 인공지능 스피커'를 출시했습니다. CES 2017에서 단독부스도 내고 공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SM의 IT 기술력과는 관련이 거의 없으며, 단순히 IP만 제공한 케이스입니다. 물론 그 이상의 의미부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을 무리하게 IT 기술력과 비전으로 엮으면 곤란합니다. 이 부분은 추후 더 살펴볼 생각입니다.

나아가 IT 기술 전반에 대한 접근도 예민합니다. 다양한 IT 기술을 타진하는 SM이 지나치게 사용자 경험에만 매몰되어 '일을 벌인다'면, 단기적인 성과는 얻을 수 있어도 중장기적 차원에서 미디어 기업으로의 잠재력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미디어 기업을 지향한다면 SM은 IT 기술을 철저하게 수단으로 활용해야 하며, 본질적 업의 차원에서 활용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오프에서 온으로 향하는 기업의 치명적인 실수, "내가 가진 오프의 노하우로 온을 무조건 채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