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추진한 ‘실손의로보험 제도 개선 방안’이 오히려 보험료 부담을 상승시킨다는 우려가 나와 주목된다.

포괄적 보장구조에서 기본형과 특약형으로 이원화되지만, 비급여 항목을 주로 이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특약형 상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사실상 보험료 부담이 커지게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비급여 항목에 대한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형‧특약형 분리 보험료 인상 우려

최근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금융감독원은 실손의료보험의 과잉진료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해주면서 ‘제 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리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전 국민의 65%인 3296만명이 가입했다.

이번 개선안은 실손보험의 과잉 진료를 근절하기 위해 추진됐다. 실손보험은 보장 영역이 너무 방대해 과잉 진료나 의료 쇼핑 등 도덕적 해이가 나타났다. 이는 결국 보험사들의 손해율(납입 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의 비율)이 높아지고,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런 악순환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 4월부터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을 의무적으로 ‘기본형’과 ‘특약형’으로 나눠 판매하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실손보험료 상승의 주범이 되고 있는 ▲도수치료 ▲체외충격파치료 ▲증식치료 ▲비급여 주사제 ▲비급여 MRI 검사 등 5가지 진료는 원하는 사람만 보험료를 더 내고 보장받을 수 있도록 특약으로 분리했다.

기본형 실손보험에 가입하면 5가지 진료행위에 대한 보험금을 받을 수 없지만, 대다수 질병·상해치료를 보장받을 수 있다. 보험금은 40세 남성·여성 기준으로 26.4% 저렴해진다.

특히 특약형 상품의 경우 가입자의 자기부담비율을 기존 20%에서 30%로 높이고 특약 이용 횟수도 제한된다.

▲ 출처=금융위원회

문제는 포괄적 보장을 제공하던 기존 실손보험이 분리될 경우 사실상 소비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오히려 증가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구본기 ‘구본기생활연구소’ 소장은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한 실손의료보험 제도개선에 대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진료비 부담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사실상 비급여 항목 때문에 실손보험을 가입하는 상황에서 기본형의 경우 해당 진료를 제외하고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가입 후 2년간 진료를 받지 않은 경우 보험료 할인을 제공하는 것도 사실상 실손보험 문제의 책임을 소비자들에게만 전가시키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구 소장은 “보험사는 실손보험 보험료 인상의 근거로 손해율을 들지만 자료는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며 “실손보험 보험료를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로 전환토록 유도하는 등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는 정책을 펼치지 않는 것 자체가 보험사의 이익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비급여 관리 전제 않으면 과잉진료 가능성 여전”

실손보험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비급여 항목이다. 일부 소비자들 혹은 병원의 경우 다친 것에 비해 과도한 진료를 병행하는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와 같은 꼼수를 부린다.

이런 행위 자체가 가능한 이유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자동차보험의 경우 현대차의 ‘아반떼’ 범퍼가 부서졌을 때, 교체비용이 10만원이라 가정하면 그 이상 비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실손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어깨를 다쳤을 때,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어깨 치료는 5만원이 든다고 정해져 있지만, 도수치료를 병행할 경우 진료비는 20만원 혹은 30만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비급여 항목에 대한 자기부담금을 30%로 올려 한계를 설정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비급여 치료 항목에 대한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출처=금융감독원

지난해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955개 비급여 진료항목(2만5084건)을 조사한 결과 병원별 진료비 가격 차이가 최소 7.5배에서 최대 17.5배에 달했다. 2013년 기준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 비율은 9.7%에 그쳤으며, 전체 대상 항목 1만668개 중 1611개 항목에 불과했다.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은 지난 2010년 약 800억원 규모에 불과했으나 2014년 1조5000억원으로 4년간 무려 17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 비급여 의료비도 17조9000억원에서 24조원으로 34% 늘었다.

실손보험 손해율 추이를 살펴보면 2013년 109.4%에서 2014년 125.9%, 지난해는 129.6%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보험 손해율이 77%를 넘으면 보험사는 적자를 본다고 알려져 있다.

▲ 출처=금융감독원

물론 이번 개선안에는 복지부 고시 개정을 통해 올해 100개, 내년에 100개 등 연도별 확대 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코드, 명칭, 행위 정의 등을 표준화한다고 했다. 다만 표준화 작업을 시행하는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연구원 정성희 연구위원은 “현재 실손의료보험의 문제점은 상품구조와 비급여 부분이 서로 결합되어 발생하고 있다”며 “이 두 가지 부분을 병행하여 개선해 나가야 제도 개선의 효과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근본적인 비급여 관리가 전제되지 않는 한 과잉진료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며 “비급여 적정성 평가체계 등 비급여 관리체계 구축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