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환상의 섬 간산도(독도)노인, (중)생각이 나인 줄 (우)본전 모르고 자학

 

“흙으로 빚어졌음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리. 바람으로 불어넣이었음 마침내 바람으로 돌아가리. 멀디 먼 햇살의 바람사이 햇살 속 바람으로 나부끼는 흙의 티끌 홀로서 무한 영원 별이 되어 탈지라도 말하리. 말할 수 있으리. 다만 너 살아 생전 살의 살 뼈의 뼈로 영혼 깊이 보듬어 후회없이 후회없이 사랑했노라고.”<흙과 바람/애경초(愛經抄), 박두진 詩, 미래사>

 

어릴 적 강가에서 진흙으로 솥단지와 친구와 가족얼굴을 만들어 보여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정말 나를 많이 닮았네’하며 너무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 이후부터 강변을 좋아한 나는 ‘잘 만든다’는 말이 듣고 싶어 흙으로 얼굴을 조형하는 것에 몰두했다.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옷이며 손과 발에 온통 흙투성인 아이를 혼내지 않고 한없이 격려해주신 어머니 사랑에 눈시울 붉어지곤 한다.

 

▲ 관심 갖는 가족

 

흙으로 빚은 인물상 토우(土偶)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다. 어눌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그리고 왠지 다가가면 멋쩍게 웃어줄 것 같은 순박한 표정의 얼굴들에서 이 땅 사람들 심상의 친근한 모습을 떠 올리게 한다. 토우들은 단순소박하고 거친 손길의 작업흔적이 형태 속에 배어 있는 일상의 표정으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그들에서 ‘나’를 떠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데 우리 대지의 온전한 기운을 담은 것과도 다름 아니다. 세월을 녹여 낸 듯 손으로 빚은 얼굴들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부른다. 푸근하고 따뜻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겨있고 정이 넘치는 넉넉한 인심과 주름진 눈매의 미소에 지난한 삶의 흔적 전해지는 자상한 할머니의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소박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우리산하 야생화처럼 꾸밈없이 해맑은 아름다움을 지닌 얼굴이 되기까지 어찌 손끝만으로 그 작업이 가능할 것인가. 바람과 빛과 물 그리고 마음의 정성이 어우러져 그들과 함께 동화되는 한 삶을 살아가는 저 깊은 내면의 교감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리라. ‘나’와 너무나도 닮은 얼굴을 만나게 되고 그 감성을 느끼는 순간 토우의 얼굴들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정신성이 이어지는 역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 (좌)칠석날 제물 소녀 (우)엄마 품이 제일 좋아

 

◇따뜻한 손길 인연의 화합

성모마리아 뒤편 겸허하게 서 있는 저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후끈 솟아나는 산다는 것의 감사함에 기도드리는 오후. 진눈개비 내리는 창가에 서면 앙상하게 홀로이 서 있는 나무는 참으로 의연하게 다가온다. 겨울엔 봄을 준비하는 에너지로 분주하듯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나무는 늘 무엇인가를 열심이다.

깜깜한 혹한의 밤 찬바람에 맞서며 고고하게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삶이라는 것의 엄숙함과 용기에 다시 힘을 얻곤 한다. 침묵과 헌신의 숭고함을 간직한 나무에게서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잔잔히 불러주는 평화로운 노래를 듣게 되는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리. 김경원 작가는 이렇게 메모했다.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이라했던가. 인연이 모여서 태어나고 만들어 진다.

 

▲ (좌부터)간절히 청원하오니, 애절한 기도, 검둥개야 우지마라 우리애기 잘도 잔다

 

어머니,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태어났지만 일체만물을 다 인연으로 하여 살아나간다. 내 의지가 많은 인연을 만나 화합하여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어느 한순간도 같은 나는 존재하지 않기에 잠시 갈길 멈추고 바라본다. 누군가의 마음에 한 줄기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누군가 잠시 머물러 바라봐준다면 내가 달빛이 되어 꽃을 피우게 될지도 모르니!”

△권동철/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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