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웹브라우저 주소창에 접속하고자 하는 도메인을 잘못 입력했는데도 ‘존재하지 않는 사이트’라는 표시가 뜨지 않고 엉뚱한 웹 사이트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유명한 상표명을 웹 브라우저 주소창에 입력했는데 해당 상표와 관련이 없는 다른 웹 사이트가 표시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유명 상표와 동일 또는 유사한 도메인 이름을 먼저 등록해둔 뒤, 이후에 해당 상표권자에게 도메인 이름을 제공하는 대가로 거액을 요구하는 이른바 ‘사이버 스쿼팅(Cyber Squatting)’이다. 종래 ‘chanel.co.kr’, ‘viagra.co.kr’, ‘sens.co.kr’, ‘kangwonland.co.kr’ 등의 도메인 이름이 제3자에게 선점되어 해당 상표를 보유한 회사가 도메인 이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그런데 기존의 판례를 보면, 법원은 사이버 스쿼팅이 상표 침해 등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엇갈린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일견 동일하게 보이는 ‘사이버 스쿼팅’에 관해 법원이 엇갈린 판단을 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칼럼에서 설명했듯이 상표 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일·유사한 상표를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침해자가 해당 상표를 ‘상표로서 사용’(이른바 ‘상표적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타인의 등록상표를 사용한 경우에도 어떤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거나(예컨대 ‘대장금’의 복장을 한 헬로키티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대장금’이라는 상표를 표시한 경우), 그 용도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다면(예컨대 자동차 부품이 ‘K5’ 자동차에 사용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K5’ 상표를 표시한 경우) 상표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A는 ‘viagra.co.kr’이라는 도메인 이름을 등록한 B로부터 해당 도메인을 이전받았고 그 도메인을 사용하는 홈페이지를 개설해 인터넷상으로 ‘생칡즙’을 판매하고 있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Viagra)를 개발 및 판매하는 미국의 화이자 프로덕츠 인크(Pfizer Products Inc.)는 이와 같이 ‘Viagra’를 도메인 이름으로 사용하고 ‘비아그라’ 및 ‘Pfizer’를 이 홈페이지에 사용하는 A의 행위가 상품 주체 및 영업 주체를 혼동시키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A를 상대로 이 도메인의 사용 금지, 등록말소 등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A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상표인 ‘Viagra’와 동일한 표지를 도메인에 사용하고, 홈페이지에 비아그라 용어의 유래 및 비아그라의 효능과 부작용, 에피소드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생칡즙 및 건강보조식품 등을 판매함으로써, A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일반인으로 하여금 A의 영업활동이 미국의 화이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한다는 이유를 들어, A가 도메인과 홈페이지에 ‘Viagra’라는 표지를 사용한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및 나목에 따른 상품 주체 및 영업 주체 혼동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소정의 이른바 ‘상품 주체 혼동행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A가 ‘Viagra’ 상표를 자신의 상품 출처를 표시하는 것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A가 홈페이지에 기재한 글에는 ‘제작사인 화이자에 따르면 비아그라는…’이라고 해 비아그라가 화이자의 제품임을 표시하고 있을 뿐이고, A가 판매하는 제품에는 ‘산에 산에’라는 A의 독자적인 상표가 부착되어 있었으며, 약국에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비아그라를 구입할 수 있으므로 일반인의 관점에서 A사가 비아그라를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고, 반대로 외국의 유명 제약업체가 생칡즙을 생산·판매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A사의 행위가 상품 주체 및 영업 주체 혼동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2다13782 판결).

특히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도메인이 원래 인터넷 프로토콜 주소(IP 주소)를 사람들이 인식하기 쉽도록 문자 등을 결합해 만든 것으로, 본래 상품이나 영업의 표지로서 사용할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특정 도메인으로 웹사이트를 개설해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을 하면서 그 웹사이트에서 취급하는 제품에 독자적인 상표를 부착·사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그 도메인이 일반인을 그 도메인 이름으로 운영하는 웹사이트로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도메인 자체가 곧바로 상품의 출처 표시로서 기능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면서, 도메인이 원칙적으로는 상표 침해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사 제품에 독자적인 상표를 부착‧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상표를 도메인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언제나 상표 침해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독자적인 상표 자체가 다른 사람의 상표와 유사한 경우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홈페이지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볼 때 도메인을 상표로서 사용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상표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 또한 ‘상표적 사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표 침해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타인 상표의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성립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