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항생제의 오·남용은 세균들의 항균 내성(Antimicrobial Resistance, AMR)을 증가시킨다. 항균 내성은 미생물이 항생제에 노출되어도 생존할 수 있는 약제 내성을 말한다. 미생물(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기생충 등)이 항균제(항생제,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 항말라리아제, 구충제 등)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유전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생긴다. 미생물의 항균 내성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 농산물, 환경(물, 토양, 공기)에 의해서도 옮겨진다. 미생물들은 식품을 통해서 사람에 전해지기도 하고 사람과 동물의 접촉 또는 사람들 간에도 전파된다. 불충분한 감염 통제, 부적절한 위생조건, 부적절한 식품 취급이 모두 항균 내성을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결국 세균이 다수의 저항성 유전자를 갖게 되면 여러 항생제가 무용지물이 되는 다제 내성의 ‘슈퍼박테리아’가 된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다제 내성 결핵(TB), HIV, 말라리아 등 감염성 박테리아에 대한 항균 내성으로 매년 70~80만명이 사망하고 있다. 항생제 효과는 점차 줄어들고 사람들의 왕래는 늘어나 전염성 감염이 쉽게 전파할 위험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새로운 항생제 개발연구비도 전체 신약개발비의 5% 이하에 그치고 있다. 세균 감염을 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항생제가 없으면 장기이식, 항암 약물치료, 당뇨병 관리, 수술 등은 물론이고 작은 상처나 단순한 세균 감염조차도 치료가 힘들어지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영국의 한 보고서에서는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세계적인 대처가 시급하며 잘못하면 2050년경이면 내성 세균 감염으로 매 3초당 한 명씩 사망하여 연간 100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세계 경제에 100조달러 이상의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슈퍼박테리아는 세기적 재앙

항균 내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환자에게만 항생제를 처방해서 근본적으로 항생제 사용량을 줄여야만 한다. 사람들의 의식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소독을 철저히 하고, 농산물 재배나 가축 사육에 항생제가 남용되지 않도록 항생제 사용량을 집계하고, 과도한 사용량에 대해선 경고조치를 내리는 등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질병을 신속히 진단하는 기술도 중요하다. 그리고 항생제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해야만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질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미리 백신 주사를 맞는 방법이다. 백신 주사를 맞으면 질병 감염률이 급격히 줄어들지만(어린이 65%, 고령자 45%) 의료시장은 예방보다는 질병치료에 치중하기 때문에 전 세계 제약시장에서 백신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3%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백신 개발에 대한 제약 산업체들의 투자 의지가 매우 낮고 정부의 공공투자도 미미한 실정이다. 백신은 어느 한 기업이나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가 합심해서 다양한 백신을 개발해야만 한다. 이미 개발된 백신들도 접종 대상을 늘려 누구나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16종의 치명적인 감염성 질병에 대해서 무료로 예방접종을 지원해 주고 있다.

항생제 대신 세균 감염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① 우선 박테리아 포식자(Bacteriophage)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박테리아 포식자란 바이러스로 세균의 세포질에 자신의 DNA를 주입시켜 세균 내에서 자신을 복제하여 여러 개체의 바이러스로 증식한 후 세포 밖으로 빠져 나간다. 이 과정에서 박테리아 세포는 파괴된다. ② 둘째로 라이신(Lysin) 효소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박테리오파지 내 독소인 라이신은 감염균 세포를 직접 용해시켜 없애버리는 작용을 한다. 점막 표면이나 전신 감염을 일으킨 병원체를 치료하는 용도로 최근 널리 알려지고 있다. 사람과 동물은 물론이고 식품을 오염시킨 병원체에도 효과가 있다. ③ 셋째로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는 장내 유해균의 복제를 막아주는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해균 감염에 대한 저항성도 높여준다. ④ 넷째 인체의 면역기능을 강화하면 감염을 줄일 수 있지만 면역반응이 복잡하고 상호 연관성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문제가 있다. 생활방식과 면역기능 사이에 과학적으로 입증된 직접적인 연관성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식사, 운동, 나이, 심리적 스트레스, 기타 요인이 면역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⑤ 다섯째로 포유류 이외의 동물들의 면역작용에 사용되는 항균 펩타이드(Peptide)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항균 펩타이드는 자연발생 저분자 단백질로 약 12~50개의 아미노산이 결합된 중합체이다. 박테리아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와 곰팡이들과 같은 다른 미생물들도 죽일 수 있다. 20여종의 아미노산들을 임의로 결합 순서를 바꾸면 그 기능과 역할이 달라지는데 배열 방법이 20!(2.4×10의 18승)만큼 많다. 우리 몸속에서 얻을 수 있는 펩타이드의 다양한 기능은 무수히 많다.

 

항균 펩타이드가 해법

펩타이드는 전통적인 항생제와는 달리 항균 내성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과학자들은 항생제 대안으로 이들 펩타이드를 적응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미생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항균 펩타이드를 분비하고 있다. 동·식물들이 내뿜는 독소들이 대부분 이런 항균 펩타이드 계열이다. 흥미롭게도 자연 속의 생명체들은 자신이 서식하거나 살고 있는 환경에 적합하도록 펩타이드의 구조 및 아미노산 서열을 다르게 진화시켜 왔다. 20개 내외로 구성된 아미노산 중 절반 정도는 양전하를 띠는 아미노산인 리신(Lysine), 아르기닌(Arginine), 히스티딘(Histidine)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전하를 띤 아미노산이 음전하를 띤 박테리아 세포막에 들러붙으면 펩타이드의 소수성 부분과 세포막의 소수성 부분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세포막에 구멍이 생긴다. 이때 세균 세포 내부로 펩타이드와 지질이 들어가서 DNA, RNA 그리고 단백질들을 표적으로 삼아 파괴 작용을 일으킨다.

최근 MIT 연구진은 해양 동물에서 분리한 펩타이드인 크라바닌(Cravanin)-A라고 불리는 항균성 펩타이드에 아미노산을 5개 더 추가하면 소수성을 띠는 펩타이드 표면적이 더 넓어져서 박테리아의 세포막을 터트리는 효과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렇게 만든 크라바닌(Cravanin)-MO 펩타이드는 특히 항생제 내성이 있는 대장균과 황색포도상균주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항균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를 새로운 항균 펩타이드로 대항하는 길을 열었다 할 수 있다. 식탁 표면에 바르면 미생물 성장이 억제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포도상구균이나 다른 박테리아에 의한 피부감염을 치료하는 연고나 도뇨관(導尿管)의 항균코팅제로도 사용될 수 있다. 펩타이드를 전통적인 항생제와 함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박테리아가 약제 내성을 일으키지 않는 효과도 있다.

 

슈퍼박테리아를 포식하는 박테리아

이질균(Shigella) 박테리아는 해마다 1억6000만여명이 설사병을 앓게 하며 오염된 음식에 감염되어 매년 100만명이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이질균 감염을 막을 백신이 없으며 항생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대부분의 환자가 감염 5~7일 사이에 감염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셀 바이오로지>에 보고한 영국 임피리얼 대학교 연구자들의 논문에 의하면 두 종류의 박테리아를 결합한 델로비브리오(Bdellovibrio)가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던 이질균 슈퍼박테리아를 4000배나 감소시킨다고 한다. 실험실에서 제브라 다니오(Zebra Fish) 애벌레에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과 카베니시린(Carbenicillin) 항생제가 듣지 않는 이질균 박테리아를 주입하여 감염시킨 다음, 델로비브리오 주사를 한 방 놓자 애벌레 생존율이 60%로 높아졌다. 한편 델로비브리오 주사를 맞지 않은 대조군은 3일 후에 겨우 25%만 살아남았다. 이 결합 박테리아는 이질균 박테리아를 내부에서 바깥쪽으로 먹어가면서 커지므로 나중에는 이질균 박테리아 껍질을 파열시킨다고 한다. 델로비브리오 박테리아는 동물의 면역계통과 자연스런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며 먹이인 이질균 박테리아가 사라질 때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물론 제브라 다니오에서 관찰된 결과가 사람에서도 관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포식성 박테리아로 슈퍼박테리아를 해결하는 혁신적 방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처 부위에도 쉽게 바를 수 있으므로 감염된 상처를 치료하는 데도 유용할 것 같다.

올해 11월에 캠브리지에 있는 한 생물합성 벤처회사가 살아있는 박테리아에 유전자 변형을 가해서 요소순환장애(UCD)와 간 뇌증과 같은 고암모니아 혈증에 기초한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살아 있는 박테리아를 설계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신약후보물질인 SYNB1020 당의정에는 약 1000억개의 프로바이오틱스 대장균 박테리아 세포가 함유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론 항생제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콜리스틴(Colistin)에도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중국과 영국에서 발견된 상태이다. 슈퍼박테리아의 유전자가 다른 세균에 감염되면 항생제가 무력화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슈퍼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밝혀내서 이를 포식하는 새로운 박테리아를 탄생시키는 유전자 조작기술이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