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제주도에서 전기차를 렌트했다가 호되게 당했어요. 충전할 곳도 별로 없고 너무 불편했어요. 괜히 새로운 경험을 하려다 연인과 여행을 망쳐버려 속상해요.” (직장인 A씨, 30세)

“(제주도는) 명실상부 ‘친환경 섬’이잖아요. 향후 이 곳에서는 전기차만 구매할 수 있다고 하고요. 인프라가 내륙보다 훨씬 잘 조성돼있어 만족스러웠어요. 기름값도 절약돼 일석이조였죠.” (직장인 B씨, 30세)

공교롭게도 한 자리에서 들은 목소리다. 스스로를 ‘얼리어답터’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호기심 때문에 전기차를 빌렸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렌터카 회사와 차종도 같았다. 여행 시기도 비슷했다. 그들의 기억은 크게 달랐다.

제주도는 ‘탄소없는 섬’을 지향하는 녹색 섬이 아니던가. 최근에는 도내 등록된 전체 차량 중 전기차 비중이 1%를 넘어섰다는 통계도 나왔다. 10년 뒤에는 진정한 친환경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궁금증이 생겼다. 그들이 상반된 추억을 간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곧바로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자료사진 /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여유의 도시, 전기차를 품다

제주도가 추구하는 ‘탄소없는 섬’의 핵심은 2025년부터 도내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다. 사실상 전기차 왕국을 꿈꾸고 있으며, 2016년 현재는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그 기반을 다지고 있는 단계다.

제주전기차정책연구센터(EVRC)의 통계 리포트에 따르면 2016년 9월30일 기준 제주도내 등록된 전기차 수는 3608대로 집계됐다. 제주 지역 전체 차량등록대수의 1%를 넘어선 수치다. 올해의 경우 전국에 보급된 전기차 8071대 중 45%가 제주도에서 팔려나갔다.

제주 시내에서는 확실히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론상 100대 중 1대 꼴로 전기차를 만나게 되는 셈. 도로 위에서 전기차를 만나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렌터카와 일반 차량의 비중은 50:50 가량으로 느껴졌다.

반면 시내를 벗어나면 그 차이가 극명히 드러났다. 주요 관광지에서 렌트 차량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일반 번호판 차량은 거의 만나볼 수 없었다.

▲ 자료사진 /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기자는 롯데렌터카를 이용해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쉐보레 볼트(Volt)를 번갈아 시승했다. 롯데렌터카는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충전기와 환경부 공용 전기차 충전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제공해준다.

첫날 만난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전기차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부에서 인증받은 이 차의 공식 주행가능거리는 191km. 제주도 크기의 섬을 여행하기에 최적화된 셈이다. 게다가 제주도는 차량 흐름이 비교적 원활하고 도로가 잘 깔려있어 실연비가 더욱 잘 나오는 편이다.

불편함이 전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차량을 렌트한 후 신비의도로, 제주항 인근, 시내 등을 경유해 협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주행거리는 약 70km 가량. 배터리 잔량은 충분했지만 관광을 하는 동안 충전을 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밀려왔다.

협재해수욕장 도착 이후 가까운 충전소를 찾았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에는 가까운 충전소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1.8km 인근에 완속충전기가 있다는 알림이 떴다. 내비게이션을 연동해 이동을 시작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관광지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직선거리가 1.8km라고 표시됐지만 걸어가기엔 30분도 넘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롯데렌터카에서 무료 충전을 지원하는 환경부·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의 충전소도 아니었다. 결국 해수욕장 내 일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둬야 했다.

▲ 자료사진 /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충전기 3224개는 어디에

2016년 9월 기준 제주도내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총 3224개로 집계되고 있다. 이 중 급속충전이 가능한 기기는 127기다.

렌트카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중요한 숫자가 아니었다. 개인용 충전기를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민간 사업자가 세운 기기는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원카드나 번호 등이 있어야 요금 수납이 가능한 탓에 렌터카 업체가 지정해준 충전소 외에는 이용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웃지 못할 촌극도 연출됐다. 일정 탓에 협재를 벗어나 다시 도심으로 향했다. 렌터카 업체에서 나눠준 충전소 위치 안내문은 초행길 여행자가 보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순간 눈앞에 ‘이마트’ 간판이 보였다. 고민 없이 차를 몰았다. 이마트는 제주 뿐 아니라 내륙에서도 충전 인프라 확충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도착한 곳은 이마트 신제주점.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마트인데 당연히 충전기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품었다. 어찌된 일인지 옥상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동안 충전기를 찾지 못했다. “전기차 충전기는 야외 주차장에 있다”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야외 주차장은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나마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진입이 불가능했다. 안내요원도, 사람도 없었다. 직원전용 주차장이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들어선 주차장 안에는 포스코ICT에서 보급하는 충전기가 설치돼 있었다. 회원가입 없이는 이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쓴웃음을 지으며 차를 다시 돌렸다.

▲ 외곽에 있는 한 카페에 BMW 전용 충전 케이블이 설치돼 있었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순간의 선택이 30분을 좌우한다”

시내에서 볼일을 본 뒤 다시 여행지를 찾아갈 계획을 짜고 있었다. 전기차의 배터리 잔량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100km 내외는 충분히 달릴 수 있는 수준이지만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몰려왔다. 시간은 오후 3시께. 렌트 일정을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잡아둔터라 충전을 할 필요는 없는 상태다.

성격 탓일까. 기자는 결국 충전소를 찾았다. 제주도청과 시청 중간쯤에 자리한 ‘한라도서관’을 향했다. 여유롭고 깔끔한 공간이었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지하·지상 주차장을 모두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충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입구 바로 옆이었다.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에서 운영하는 기기다. 차를 세운 뒤 회원 인증을 통해 DC차데모 방식의 급속 충전기를 차량에 연결했다.

순간 기아차 레이 EV 차량이 천천히 들어왔다. 일반 번호판이었다. 차에서 내린 여성 운전자는 기자에게 “지금 시작하신건가요?”라고 물었다. 충전 단자가 한 개 뿐이라 꼼짝없이 기다려야하는 상태인 것이다. 심지어 주행가능거리가 5km 미만이라 이동도 불가능하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 제조사별로 전기차 급속 충전 연결 단자가 다르다. 이 때문에 급속충전기에는 선택의 여지 없이 세 종류의 선이 마련돼야 한다. 상당수 충전소는 배선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 무게가 은근히 많이 나가 여성 운전자는 꼬여있는 줄을 푸는 데 애를 먹을 것 같았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전기차 활성화를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전기차 보유자 뿐 아니라 여행객들도 충분히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충전 인프라 양이 아닌 충전 속도다. 주유소가 많이 없어도 기름을 넣는 시간은 1~2분 내외지만, 전기차 충전은 수십분에서 수시간까지 소요된다. 독일을 중심으로 현재보다 두 배 수준 빠른 속도를 내는 급속충전 표준화 방안이 마련되고 있긴 하지만 수요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를 강조하고 있는 마케팅에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테슬라를 필두로 2세대 전기차가 30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300km를 달리고 나면 ‘억지로’ 수십분간 발이 묶여있어야 한다.

마음이 약한 기자는 완충을 포기하고 레이 EV 운전자에게 충전기를 양보했다. 충전시간은 11분24초. 8.79kWh의 전력을 채우고 2962원이 청구됐다.

“기름이 만들어 주는 마음의 평화”

첫날 저녁 쉐보레 볼트(Volt)로 차량을 바꿔탔다. 전기차가 아니다. 순수 전기모드로 90km 가량을 달리고, 이후에는 가솔린 엔진의 기름을 활용해 모터를 채워 주행한다. 기름이 가득 차 있을 경우 676km를 달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상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인 셈이다. 완속 충전기를 통해 배터리를 채울 수도 있다.

안정감이 달랐다. 제주 여행을 하면서 676km 주행거리를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190km 가량을 가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배터리가 방전돼도 상관없다는 사실은 운전자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다.

배터리 잔량이 남은 상태에서는 전기차와 같은 주행감성을 보여준다. 대신 단자가 한 개 뿐이라 급속 충전기는 이용할 수 없다. 롯데렌터카에서는 220V 콘센트로 연결이 가능한 완속충전기를 나눠줬다.

▲ 220V 연결 단자를 이용해 쉐보레 볼트를 충전하는 모습 /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40km 가량을 주행하고 숙소로 향했다. 새로 생긴 중소규모의 호텔이었다. 지하주차장에 220V 콘센트가 보여 놀랐다. ‘역시 제주도구나. 확실히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주차 후 완속충전기를 꽂았다. 기름값을 아끼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반전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간 사이 호텔 안내요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거 충전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서요. 선은 잠시 뽑아두겠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듣고 황당함이 몰려왔다.

‘탄소없는 섬’ 제주도에 박수를

다음날 제주 동부 여행지들을 도는 동안 볼트의 배터리는 쉽게 바닥나지 않았다. 호텔에서 잠시나마 충전을 해둔 덕에 100km 가량을 기름 사용 없이 달릴 수 있었다. PHEV의 최대 장점이다.

볼트에 사용 가능한 접속 단자를 제공하는 성산일출봉 완속 충전소를 찾았다. 롯데렌터카에서 제공하는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소유 기기다. 카드를 접촉하고 충전기를 연결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계속해서 충전이 되지 않았다.

▲ 쉐보레 볼트를 완속 충전기로 충전하고 있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원인을 찾을리 만무했다. 긴 통화 끝에 “볼트는 단자가 다른 것 같습니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을 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이미 렌터카 업체에서는 220V 충전단자만 제공한다는 사실을 공지한 상황. 결국 또 한번 충전에 실패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전략산업추진단이 파악한 현황을 살펴보면 9월 한 달간 EV 콜센터에 접수된 민원 건수는 267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218건(81.6%)이 전기차 사용자의 전화였다. 렌터카 이용자는 5건(1.9%)만 민원을 넣은 것으로 파악됐다.

유형 구분을 보면 전체의 53.2%에 달하는 142건이 ‘충전 불가’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 역시 같은 이유로 불편을 겪었고, 볼트와 같은 단자를 사용하는데 충전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었다. 전기차 충전 구역에 일반 차량이 주차해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전기차 보유자는 “주말 차가 많이 몰리는 주차장 등에서는 충전 구역에 일반차를 세워두는 사람이 간혹 있다”며 “차 세울 곳이 없는데 여기에 자리가 있어 세웠다는 논리를 내세우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에 따로 할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 때문에 큰 불편을 겪을 소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국내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도 최근 북극곰과 환경 생태계 파괴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고, 인간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탄소없는 섬’으로 변하고 있는 제주도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전기차를 수차례 시승했던 기자 역시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주요 관광지, 외곽 카페 등을 지나며 ‘여기에 충전기가 있다면 좋을텐데’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 향후 전기차 보급대수가 더욱 많아지면 불편함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공용 충전기의 확충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다.

▲ 제주도 행원풍력발전단지 일대 모습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 제주도 행원풍력발전단지 일대 모습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그럼에도 제주도의 미래는 밝았다. 남쪽에 있는 이 작은 섬은 ‘환경 보호’라는 대의를 향해 우직하게 달리고 있었다. 제주도는 단순히 전기차 보급 뿐 아니라 도내 소비되는 전력도 전량 신재생 에너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동쪽 해안에서 만나본 ‘행원풍력발전단지’를 보며 그 큰 뜻에 공감할 수 있었다. ‘탄소없는 섬’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는 제주도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