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어느 여름날, CGV 본사에서는 특별한 한 회의가 열렸다. 상영관 중 하나를 도서관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컬처플렉스’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강구하던 중 내부에서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일부 팀장들은 영화관 하나를 도서관으로 바꾸면 그만큼 수익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반면 일부 팀장들은 전반적으로 소비자 서비스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적극 찬성했다. 결국 이 아이디어는 채택되었다. ‘씨네라이브러리’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 탄생하는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컬처플렉스(Cultureplex)’란 개념이 도입되며 극장에는 새로운 콘셉트의 공간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CGV명동역에 들어선 ‘씨네라이브러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상영관 하나를 전면 리뉴얼해 만든 이곳은 국내 최초의 ‘영화도서관’이다. 극장의 계단형 공간을 그대로 살려둔 채 내부를 재배치했다. 영화적 영감과 휴식, 그리고 소통의 공간을 모티브로 구성했다. 1만여 권의 영화 관련 장서들이 비치되어 영화인은 물론 일반 관람객들에까지 폭넓게 어필하고 있다.

단순히 장서만을 비치한 것이 아니다. 공간적 특성을 활용해 영화를 보고 관련 내용에 대한 강연을 결합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영화 <맥베스> 개봉을 기념해 내놓았던 ‘셰익스피어 집중탐구’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영화를 감상한 후 셰익스피어의 작품세계 탐구, 책 읽기, 셰익스피어와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를 결합한 프로그램이다. 예약을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와는 별도로 영화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도 속속 만들어졌다. ‘이동진의 인사이드 시네마’, ‘CGV 시네마클래스’, ‘KAFA 마스터 클래스’ 등의 강연 콘텐츠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영화 마니아들, 더 나아가 영화인들 사이에 빠르게 입소문이 나며 영화에 대한 보다 심도 싶은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한 번이라도 씨네라이브러리를 방문했던 고객들이라면 이 새로운 공간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책들이 많이 구비되어 좋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영화의 원작을 만날 수 있어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등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실제로 씨네라이브러리 방문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0% 이상이 재방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극장의 로비가 단순히 티켓을 끊고 팝콘을 사먹는 공간에서 벗어나 또 다른 문화를 즐기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CGV여의도의 경우 벽면 전체를 갤러리 느낌으로 꾸며놓았다. 때때로 영화 포스터나 아트웍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디즈니나 마블 전시회를 열었을 때는 관객들이 영화 관람과 관계없이 이들 전시회만을 보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CGV천안에는 아예 별도의 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지역 내 대학교 학생들의 예술 작품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래 예술가들의 작품을 미리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공간이자 상생공간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상당수의 극장에는 버스킹(거리공연)을 위한 별도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예컨대 CGV여의도의 로비에는 피아노와 마이크 등이 설치돼 있어서 누구나 쉽게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여기에 한 노령의 피아니스트가 수시로 방문해 관객들에게 연주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이 무명의 연주가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고정 팬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 피아니스트의 실제 직업은 의사이며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의 버스킹 공간에 처음엔 재미로 방문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극장 공간의 개념이 달라지면서 고객들이 극장을 대하는 태도나 인식도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즐길 수 있는 체험적 요소들이 많이 생겨난 만큼,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극장에 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