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차를 대접하기로 유명한 푸틴의 티타임. 출처=watchprosite

화산에서 스키를 타고, 난파선 탐사를 위해 흑해를 잠수하고, 산불이 나면 소방용 헬기를 조종해 진화작업에 나서는 남자. ‘액션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다. 세 번째 대통령직 역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년 연속 1위 등의 기록을 지닌 이 강한 남자는, 시계 또한 같은 시계를 세 번이나 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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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한 남자의 컬렉션

▲ 보드룸에서 블랑팡 레망 아쿠아 렁을 착용하고 있는 푸틴. 출처=watchprosite

먼저 푸틴 대통령이 시계 마니아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은 랑에 운트 죄네의 투르보그라프 푸르 르 메리트, 파텍필립 퍼페추얼 캘린더, 파텍필립 칼라트라바, 브레게 마린 등 초고가의 하이엔드 시계를 여럿 소장하고 있다. 최근 5년여 동안 착용하고 있던 시계들의 총액은 2,200만 루블(약 7억 8,5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외부에 공개된 시계들의 총액일 뿐 실제로는 두 배 이상일 것이라 추정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시계는 블랑팡의 '레망 아쿠아 렁 그랜드 데이트'라는 모델이다. 공식 석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푸틴의 시계다.

 

푸틴의 첫 번째 레망 아쿠아 렁

▲ 휴가를 즐기는 푸틴. 출처=핀터레스트, 리아 노보스티

햇볕이 내리쬐던 2009년 8월. 푸틴은 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에 방문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당시 푸틴은 2번에 걸친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하고 총리로서 잠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곧잘 상의 탈의를 하고 말을 타고 산속을 돌아다녔던 푸틴은 대통령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탐험가의 모습이었다. 푸틴은 휴가 도중 만난 작은 목장의 식구들에게 식사 초대를 받았다. 권력가 답지 않은 솔직한 모습과 마주 대한다는 것은 목장 식구들에게 더없이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여느 탐험가의 식사시간이 그렇듯 그날 저녁은 서로의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고, 이내 짧은 만남은 큰 아쉬움으로 변했다. 푸틴은 작별 인사를 나누며 저녁식사 초대와 그들의 환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목장의 작은 목동 아이에게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와 주머니칼을 선물로 넘겨주었다. 그들은 주머니칼과 함께 받은 시계가 약 1400만원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푸틴의 두 번째 레망 아쿠아 렁

▲ 푸틴의 시계를 즐겁게 들어 보이는 빅토르 자가옙스키. 출처=더가디언닷컴

2010년, 푸틴은 모스크바 남부 툴라 주의 무기공장에 들렀다. 푸틴이 착용한 시계는 목동 아이에게 주었던 시계와 똑같은 모델. 블랑팡의 레망 아쿠아 렁이었다. 이날의 방문은 노동현실 격려를 위한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 푸틴의 방문은 항상 그러하다. 권력자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직종의 친구, 혹은 탐험가의 방문과 같은 분위기다. 그렇기에 그날 역시 노동자들과 푸틴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하고 진실했다. 푸틴이 돌아가려던 찰나, 감정이 고조된 한 노동자가 외쳤다.

“당신을 기억할 만한 물건을 하나만 주세요!” 무기 공장의 말단 노동자 빅토르 자가옙스키었다. 러시아의 황제와 같은 지도자에게 외친 말이었다. 푸틴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웃으며 주머니를 뒤졌다. 오히려 더 당황한 것은 주변에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아쉽게도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빅토르가 말했다. “그럼 그 시계는 어떠십니까?” 그 말에 시계를 넘겨주는 푸틴의 미소가 압권이다. 어느 기사에서는 푸틴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시계를 건넸다고 말하거나 이후 공장 직원들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푸틴은 즐겁게 시계를 선물로 넘겼다.

이후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푸틴의 시계를 받은 빅토르 자가옙스키의 아들인 드미트리는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는 그런 관대한 선물을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단지 푸틴을 기억할만한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그 시계는 나도 아버지도 착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제 가족의 유물이 될 것입니다. 공장 사람들은 기쁨을 나누며 아버지에게 ‘축하해’ 혹은 ‘잘했어’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물어볼 걸’이라고 하기도 했지만요.”라고 말했다. 자가옙스키는 러시아 신문의 인터뷰를 통해 푸틴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당신의 러시아 군대에는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당신을 기억할 만한 물건

▲ 공식 석상에 거의 함께 등장하는 푸틴과 블랑팡 레망 아쿠아 렁. 출처=watchuseek

푸틴이 1000만원이 넘는 시계를 건네준 것을 애국적인 의미나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하거나, 혹은 러시아 특유의 부정부패와 연관 짓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시계 교환엔 다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시계 동호회의 지인에게 94년 실크로드에서 러시아 공수부대원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헤어질 때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계 교환을 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89년 작 레드 히트에서도 시계 교환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70년대 미소 협상 당시 미 국무성 고문인 헬무트 소넨펠트에게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시계를 바꾸자고 이야기해 당황했다는 기사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러시아에서는 '당신을 기억할 만한 물건’으로 가장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시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 백범 김구와 윤봉길 의사의 시계. 출처=문화유산채널

한국에서도 시계 교환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바로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의거 직전 교환한 시계다. 윤봉길 의사는 의거 1시간 전, 6원짜리인 자신의 시계를 2원짜리인 김구 선생의 시계와 교환했다. 김구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시계를 들고 목멘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나자.’라고 했다. 윤봉길 의사가 '나는 이제 곧 죽을 몸이니 내 시계를 드리겠다.’ 가 아닌 ‘나는 이제 죽을 몸이니 나의 값나가는 시계와 선생의 헐한 시계를 바꾸자.’라고 이야기 한 데에는 시계를 차본 사람들만이 아는 깊은 감정이 담겨있다. 김구 선생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이 시계를 곁에 두었다고 한다.

푸틴은 빅토르 자가옙스키에게 시계를 선물로 건네준 이후 블랑팡의 레망 아쿠아 렁을 다시 들였다. 사실 이것은 네 번째 시계다. 세 번째로 들인 아쿠아 렁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짓이 아니냐고? 같은 시계를 다시 구매할 정도의 시계에 대한 애정, 그것은 그 시계에 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느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블랑팡의 레망 아쿠아 렁에 담긴 ‘무언가’는 푸틴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블랑팡 홈페이지, 시계풍속사, 러시아의 의리, 더 가디언, BBC 컬처,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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