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이 직접 ‘글로벌 사업에서의 성공’이란 화두를 그룹 사장단에게 던졌다. 과감히 글로벌로 진출하라는 최고경영자의 외침은 성장의 돌파구를 글로벌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경영환경에 직면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재계 3위의 기업에서 나온 글로벌 강조는 성장 한계에 갇힌 요즘 타 기업에도 공통되는 외침이다.

하지만 이들 외침은 글로벌에 어떻게 이를 것인가에 명쾌한 방향 제시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이미 성장 동력이 주춤하면서 외국 기업에는 경제영토의 여지를 내주지 않는 중국을 글로벌 해법으로 삼으려 하거나, 이제 움트는 정도의 미얀마가 뜬금없이 글로벌 화두로 등장하기도 한다. 아직은 대안이 되기엔 미흡한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전략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분주한 글로벌 비전에서 유독 인도가 빠져 있다. 구매력 세계 3위이고 인구로도 세계 2위로 곧 1위가 될 인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와 식음료산업이 주력인 CJ그룹은 영화산업 세계 2위이며 경작면적기준 2위의 농업대국인 인도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런데도 글로벌 로드를 내건 경영플랜에서 전혀 인도가 부각되지 않았다. 인도 시장에서 SK그룹의 존재감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인도 시장에서의 최근 LG의 위상이다. 인도에서 ‘한국의 3대 타이거 기업’으로 불리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가 인도 시장에 진출하여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이 세워져 있다는 것은 인도 경제계에선 상식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LG전자의 최근 인도 내 행보가 전에 비해 소극적이어서 시장 위상마저 크게 위축되었다. 최근 드러난 대표적인 현상으로 세계 2대 스마트폰 시장인 인도에서 존재감마저 상실되어 가는 LG의 부진이다. 통계조차 내놓기 어려운 LG휴대폰의 추락은 그 자체로서도 충격이지만, 그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손상이 자칫 어렵게 지켜온 상위 가전기업으로서의 위상까지 허물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이다.

▲ 인도가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임을 과시하는 조형물. 인도레 시에 설치된 대형 거리표지판에 세계 각지와의 거리가 표시돼 있다. 출처=김응기

이러한 결과는 인도 평가와 향후 전망에 대한 기업별 판단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는 인도를 글로벌 축으로 대응하여 성장하고 있지만 LG의 경우는 이와는 달랐다. 삼성전자는 중국변화 이후 인도를 한동안 소강상태로 두었다. 그 기간 베트남 투자에 치우쳤다가 최근 이재용 부회장의 진두지휘로 이를 변경했다. 글로벌 행보에서 인도를 보다 상향시켰다. 그러면서 인도 공장설비에 3400억원을 추가 투자하는 등 정책 전환을 했다. 인도 내수시장은 규모에서도 크기도 하거니와 비중으로도 자체가 글로벌 시장이기 때문이고, 이는 베트남으로는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 올해 하반기 들어 인도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 시장이 되었다. 그 규모가 세계시장 총량의 10%에 해당한다.

인도가 곧 ‘글로벌’이라는 이해는 단지 시장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인도가 통로가 되어 전개되는 주변시장으로의 파급력도 포함된다. 알려진 대로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은 생산량의 25~30%를 중동과 아프리카, 호주, 일부 아시아 국가, 중남미까지 수출하여 명실상부하게 인도를 글로벌 시장에 이르는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기업전략은 곧 인도로 진출할 기아자동차에게도 적용된다. 그 까닭에 수출물량을 소화할 항구로의 접근성을 공장입지선정 기본요건으로 삼고 있다.

인도가 ‘글로벌 통로’이다. 그래서 종종 인도 시장에서의 성공은 곧 글로벌 성공으로 이어진다. 중소기업이 인도에서 성공하자 곧 글로벌 기업의 주목을 받고 엄청난 가격에 기업양도된 사례가 있다. SD진단시약의 경우가 그렇다. 시약개발과 적용에 있어서 인도보다 우선될 국가가 없다. 그런 마당에 인도에서 성공한 기업을 인수한 미국 엘리어社는 일거에 생산과 판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거머쥔 것이다. 한국 기업이 자력으로 지속하기보다 해외로 매각되었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인도 성공이 글로벌 성공’이란 선도적 사례를 보여주었다는 데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에 고무된 국내 모 대기업에서도 인도 진단시약산업에 뜻을 두고 인도 현지법인 인수에 나섰다고 한다.

인도가 글로벌을 여는 빗장이다. 최근 인도 영화산업이 이를 설명한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한 인도 영화가 글로벌 업그레이드되면서 이젠 북미와 유럽에서 동시 개봉을 노릴 정도로 세계시장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이는 작품의 글로벌 업그레이드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전 세계에 분포한 3000만명 이상의 재외 인도인(NRI)이라는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들이 직접 소비하거나 소비를 충동시키는 축으로서 그리고 비즈니스 네트워크로서 인도발(發)영화를 흥행시키고 있다. 이는 내수시장 그 자체가 글로벌인 인도를 또한 글로벌을 여는 빗장으로 삼을 충분한 이유로도 설명이 된다. 글로벌 전략에서 인도가 열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