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우리 부부는 식재료를 더 철저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평택에서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식품첨가물과 GMO(유전자조작작물)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시작한 자연주의 음식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강해져갔다. 기왕에 이 길로 들어선 바에는 아는 만큼 완벽하게 실현하고 싶었고, 제주에서 새 출발하는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바꿔야 할 품목이 첫째는 서양밀이었고, 둘째는 GMO였고, 셋째는 농약재배 농산물이었다.

우리가 만드는 면은 밀가루에 톳가루와 천일염만 넣는다. 면이 퍼지지 말라고 넣는 ‘면파워’라는 화학첨가물은 물론이고, 그 흔한 베이킹 소다조차 넣지 않는다. 그럼에도 쫄깃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 것은 톳의 놀라운 성질과 서양밀의 높은 글루텐 함량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서양밀에 비해 글루텐 함량이 현저히 낮은 우리밀은 화학첨가물 없이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양밀의 문제를 세세하게 알고 나니, 그것은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작물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밀로 바꾸어야만 했다.

평택에서 가게를 접기로 한 후 몇 달 동안, 처음 마라도에서 톳면을 개발할 때 그랬듯이 양푼이에 우리밀을 붓고 톳가루와 천일염을 넣어 손으로 치대어 삶아 먹어 보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 황금비율을 찾아냈다. 첨가제 없이 쫄깃한 면발이 가능했던 것은 글루텐 함량은 크게 상관이 없던 것이었다. 그것보다는 톳의 특별한 성질 덕분이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톳 예찬론은 더욱 강해졌다.

가격 부담이 컸지만, 불가능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우리밀로도 훌륭한 면발을 만들 수 있는데, 가격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격보다 더 큰 문제는 제주에는 대용량 우리밀을 취급하는 유통업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그 몇 달 동안 수소문을 하여 대량으로 구입할 경우 조금 더 싼 가격으로 공급해주겠다는 업체를 찾아서 팔레트째로 100포를 화물로 받기로 했다.

왜 이렇게 기를 쓰고 우리밀로 바꾸려고 했는지 설명하자면 그 이유가 다섯 가지나 된다. 그 첫 번째는 종자 자체의 문제다. 서양밀은 근 100년 동안 너무 많은 육종을 거듭해서 100년 전의 그 종자와는 유전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자가 되어 버렸다. 육종의 목적은 상업적인 효율성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 해로운지 이로운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변질된 서양밀은 서양인에게 만연한 장 질환인 셀리악병과 비만병의 주원인이 되어 왔다.

두 번째는 역시 육종을 거듭한 결과, 글루텐 함량이 심하게 높아진 점이다. 글루텐은 거대 단백질로 장내 환경을 악화시키는 곰팡이균과 비슷하여 가려움증, 면역질환, 어지럼증을 유발하고, 장내 유해균의 먹이가 되어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그래서 글루텐 프리 제품이 출시되기도 하고, 아예 밀가루를 끊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세 번째는 서양밀은 농약과 비료를 수도 없이 치는 농약농업의 대표적인 생산물이다. 재배 기간 중에도 많이 치지만, 수확 직전에 치는 제초제인 글리포세이트는 그 자체가 경악이다. 이 시기에 치는 농약을 ‘Pre-Harvest’라고 하는데, 왜 하필 제초제를 뿌리는가? 잡초도 아니고, 다 익은 밀에 왜 제초제를 뿌리는가? 글리포세이트는 GMO에 반드시 세트로 뿌려야만 하는 몬산토 라운드업의 주성분으로, WHO에서 발암물질로 규정한 독성 물질이다. 그렇다고 이 밀이 GMO도 아니다. 서양밀은 GMO가 승인된 바가 없고, 분명 Non-GMO 밀에 글리포세이트를 뿌리는데, 그 이유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가지는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 또 한 가지는 수확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다. 글리포세이트는 광합성의 맨 첫 단계인 효소 활성을 방해해서 광합성 메커니즘을 끊어 버린다. 그 결과, 식물은 일주일 이상을 서서히 말라 죽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밀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알고는 후세를 퍼뜨려야 한다는 절박감에 밀알을 최대한 많이 맺는다. 그렇게 맹렬하게 밀알을 맺고 나서는 시들시들 힘을 잃어 기계로 밑동을 쉽게 잘라낼 수 있게 된다. 참으로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뿌려진 독성 물질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몸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는 ‘Post-Harvest’ 때문이다. 포스트 하비스트는 수확 후에 치는 화학물질을 말하는데, 대부분 수입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미국에서 아시아로 수입되는 밀은 뜨거운 적도를 지나 두어 달 동안 항해를 하게 된다. 그동안 썩지 말라고 뿌려대는 방부제와 방부제 때문에 누렇게 변해가는 밀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뿌려대는 표백제가 엄청나다고 한다.

다섯 번째는 또다시 GMO 문제다. 위에서 나는 GM밀이 재배 승인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GM밀을 먹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면, 불법 재배와 불법 수출입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 미국 국무장관이 발표하기를, GM밀이 애리조나 등지에서 불법적으로 재배되어 아시아로 수출까지 된 것을 뒤늦게 발각했단다. 한국, 일본, 중국이 그 수입국인데, 일본과 중국은 곧장 수입밀 전량을 되돌려 보냈는데, 한국 식약처에서는 샘플 조사하겠다고 하더니, GM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전량 유통시켰다. 결국 한국 국민들만 GM밀을 무작위로 섭취하게 된 것이었다.

물건을 보낸 나라에서 잘못된 물건을 보냈으니 돌려보내라고 요청을 하는데, 잘못된 물건을 받은 나라에서 괜찮다고 기어이 받아서 자국민들의 입 속으로 처넣은 기가 막힌 사건이다. 한국이 공식적인 세계 GMO 수입 1위국이라는 불명예도 모자라 불법 재배한 GMO까지 처리해주는 글로벌 호구임이 또다시 증명된 사건이었다. 그러니 그 후로도 GM밀은 계속 들어오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들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GM밀의 불법 재배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텐데, 이토록 허술한 검역국 외에 어느 나라에 팔아먹겠는가. 결국 올해에도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불법 재배가 발각되었다고 언론에 나오지 않았는가. 그러니 우리밀이 아닌 면류는 공짜로 준대도 먹지 말 일이다.

밀가루 다음으로 반드시 바꿔야 하는 것은 모든 GMO 식재료였다. 평택에서는 GMO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던 탓에 1년은 그것이 GMO인지 모른 채 사용했고, 나머지 1년은 대체할 식재료를 구할 수가 없어서 알고서도 그냥 사용했다. 연간 GMO 수입량이 1000만 톤에 달하고, 그중 800만 톤이 가축 사료로 쓰이고, 200만 톤이 식용으로 쓰인다. 그 가축을 어차피 인간이 먹으므로 사료용도 결국 식용이다. 200만 톤 중에서도 식용유로 가장 많이 쓰이는데, 콩, 옥수수, 카놀라가 전 세계 GMO 재배량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연간 수입되는 대부분의 GMO가 탕수육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튀김 기름으로 주로 쓰이는 콩기름, 옥수수기름, 카놀라유가 그러했고, 탕수육의 주재료인 돼지의 먹이가 모두 GMO였다. 달콤새콤한 소스 재료로 쓰이는 설탕도 GM 사탕무였고, 식초도 GM 성분이 섞일 수 있었다. 이 중에서 설탕과 식초는 마라도에 있을 때부터 유기농 비정제 원당과 천연발효 식초를 썼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지만, 식용유와 돼지고기는 대체해야만 했다.

가정에서야 GMO가 아닌 올리브유, 포도씨유, 견과유, 현미유 또는 유기농 콩기름 등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식당에서 사용하는 대용량 식용유는 제품 자체가 귀하고, 있다 해도 가격이 비싸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찾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온라인을 적극 활용해서 찾았더니, 구세주처럼 짠하고 나타나주었다. 중소기업 한 업체에서 유일하게 Non-GMO 쌀겨로 대용량 현미유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역시 밀가루와 함께 팔레트째로 실어오기로 했다.

그리고 돼지고기는 GMO 사료를 전혀 먹이지 않는 농장을 찾으면서 해결되었다. 공장식 축산업체에서는 사료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배합사료를 먹이는데, 이 배합사료의 주성분이 GM 옥수수이다. 이런 사료를 먹으면 배설물 냄새도 지독해서 근처만 지나가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악취를 풍긴다. 거기에 한 마리 한 마리 철망에 가두어 키우는 밀집 사육으로 구제역이나 콜레라 등 전염병이 창궐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그것을 예방한답시고 항생제 투여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동물복지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태이고, 빨리 살을 찌워 빨리 팔아야 하므로 성장호르몬제 투여도 기본이고, 육질을 부드럽게 만든다고 연육제도 먹인다. 우리가 일반 마트나 고깃집에서 사 먹는 가축은 다 이렇다.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독을 먹는 것이다.

요즘은 동물복지 인증제도가 생겨서 항생제도 투여하지 않고, 비교적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는 고기가 프리미엄급으로 시중에 나오고 있는데, 그렇다고 동물복지가 자연축산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일부 약물은 투여를 해도 되며, 사료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즉, GMO 사료를 먹여도 동물복지라고 인증해준다. 그러나 따져 보시라.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또한 내가 먹는 동물이 먹는 것이 곧 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건강을 지키는 일이 가장 큰 복지이며, 건강은 먹는 것과 직결된다. 각종 병을 유발하는 GMO를 먹이면서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찾아낸 농장은 공장식 배합사료를 전혀 먹이지 않는 자연양돈 농장이었다. 배합사료는 포장지만 뜯어서 부어주면 그만이라서 배합사료를 배제하고 다른 먹이로 대체하는 일은 몹시 성가시고 품이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든다. 그럼에도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먹이의 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농장의 동물복지는 따지지 않아도 최상이라고 보면 된다. 그 농장은 자연교미, 자연출산, 자연방사를 실현해낸 곳이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아서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모른다. 이렇게 귀한 고기로 탕수육을 만들어 손님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물론 고기 값은 시중 고기의 4배에 달했는데, 그렇다고 탕수육 가격을 4배나 올릴 수는 없는 일이어서 최소한의 마진만 남기기로 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그 농장과 거래를 텄다.

GMO를 완전히 배제하고도 남는 문제가 또 있었으니, 바로 농산물에 뿌려지는 농약이었다. 평택에서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제주에서라면 최상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기농산물 전문 유통 영농법인을 찾아내어 거래를 텄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제주 유기농산물보다 육지에서 들어오는 유기농산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다. 제주에서라면 많은 농민들이 유기재배나 자연재배를 하리라던 기대가 산산이 깨어져 버렸다. 제주에서라면 조미료 음식보다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맛을 더 좋아할 거라는 기대가 깨어진 것처럼 말이다. ‘청정제주’라는 말은 하늘이나 바다에 가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깨달아 갔다.

이렇게 농약과 GMO를 완전히 배제한 식재료를 찾아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자연주의’라는 말을 가게에 내걸기 시작했다. ‘자연식’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주의’를 붙인 이유는 완벽함과 철저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우리 음식이 철학적 사유의 산물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어떤 철학적 사유인지는 다음 원고에서 풀어가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