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지대학교 임승빈 교수

한 때 전 세계 영화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졌던 미국과 프랑스, 하지만 오늘날 두 나라의 위상은 크게 차이가 난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대를 확장하며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는 미국과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프랑스영화 시장의 총 관객수는 2억 명 가량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규모다. 눈에 띄는 건 박스오피스 10위 안에는 무려 8편의 할리우드 영화가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프랑스 자국 영화는 단 두 편에 불과했다. 프랑스 영화시장 전체로도 할리우드 영화 점유율이 무려 55%에 달한 반면 자국 영화 는 35% 내외에 머물렀다. 물론 여전히 프랑스가 전 세계 예술영화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산업적인 면에서 프랑스는 더 이상 할리우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가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프랑스 영화산업이 이처럼 다른 길을 가게 된 이유는 뭘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주저 없이 자유경쟁과 보호정책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미국은 철저한 자율경쟁을 통해 영화를 산업적으로 성장시켜 왔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영화에 대한 보호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 정부가 영화산업에 쓰는 보조금이 매년 8천억 원 가량 되는데, 한국과는 달리 극장으로 나가는 비중이 30%를 넘어선다. 이 보조금을 받기 위해 12개 이상 스크린을 보유한 영화관은 한 영화를 2개 이상 상영하지 않도록 정부와 협약을 맺을 수 있다. 이렇게 협약을 맺은 극장은 일정 수준 이상 좌석점유율이 나오지 않을 경우 부족한 만큼 보전받을 수 있다. 극장은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다 보니 여러 영화를 골고루 나누어 상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 국민들은 자국 영화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할리우드 영화 선호도가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프랑스 내에서조차 지나친 보호정책이 자국 영화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라며 반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안철수, 도종환 의원이 영화와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이른바 영비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나라 스크린독과점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배급과 상영 겸업 금지 조항이다.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스크린독과점 등의 폐해를 유발하고 다양성 영화시장을 저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영화배급과 극장 사업을 함께 하고 있는 CJ나 롯데는 두 사업 중 한 가지를 포기하거나 팔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실제로 보호정책을 쓰는 프랑스에서조차 수직계열화를 막는 조항은 없다.) 

병을 치료하려면 진단을 잘 해야 하고, 또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이번 영비법 개정안은 진단에서부터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해법으로 내놓은 상영과 배급의 분리 방안 역시 우리 영화산업에 엄청난 충격파를 줄 수 있는 시대 역주행적 발상이란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 영화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통계가 잡히는 우리나라 스크린 수는 대략 2400여 개 정도다. 미국의 40000여 개, 프랑스의 5700여 개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다. 반면 개봉하는 영화 편수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15년 한 해만 해도 극장 개봉 영화가 무려 1200편을 넘어섰다.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애당초 영화들이 스크린을 잡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영화 관람 기호는 상업영화에 편중돼 있다. 지난해 개봉된 1200여 편의 영화 중 다양성영화는 30%를 넘는 363편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 영화를 관람한 것은 전체 관객(2억1700만)의 3.5% 수준인 750만 명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다양성영화를 보는 관객은 극히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시장 상황은 극장들의 스크린 배정을 어렵게 만든다. 관객의 대중적인 선호도와 배급업자들의 상영 요청 속에서 늘 줄타기를 한다. 선호 영화에 스크린을 더 많이 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작은 영화들 입장에서 보면 늘 극장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관객의 선호도가 높은 영화에 스크린을 많이 배정하다 보면 스크린 쏠림도 발생한다. 이번 영비법 개정안에서 문제로 삼고 있는 이른바 스크린독과점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스크린독과점 은 실제로는 매우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흥행 순위 상위권 영화를 보면 <베테랑>, <암살>,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국제시장>, <내부자들> 순이었다. 이 중 최대 스크린 점유율은 4월26일 <어벤져스>가 기록한 45.1%였다. <암살>의 최대치는 31.4%였고, <베테랑>과 <국제시장>, <내부자들>은 모두 23~26% 내외에 머물렀다. 이 수치들이 스크린을 가장 많이 확보한 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스크린독과점으로 볼 수 있는 날은 일년 중 아주 적은 일수에 지나지 않는다. 관객들의 밀려드는 선호도를 감안하면 이 정도의 기간은 허용 가능한 수준이 아닐까?(실제로 프랑스에서도 이처럼 일년 중 일정 기간 스크린 독과점 기간을 허용하고 있다.)  

수직계열화 때문에 극장이 계열 배급사를 밀어준다는 주장은 더욱 증명이 어렵다. 지난해 박스오피스 1위에서 10위까지를 살펴 보면 쇼박스 배급 영화가 3편으로 가장 많았다. 극장 체인을 소유한 CJ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두 편,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단 한 편이었다. 롯데가 유일하게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영화는 그나마도 한국영화가 아닌 할리우드 영화 <미션임파서블:로그네이션>이었다. NEW, 디즈니, 20세기폭스, 유니버설픽처스 배급 영화도 각각 1편씩 흥행 순위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만일 자사 영화 밀어주기를 통해 독과점이 발생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극장 체인을 갖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상위권을 독식해야 맞다. 그러나 실제로는 흥행 상위에 다양한 배급사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왜 기본적인 사실 관계에 기반하지 않은 이런 개정안이 마련됐을까? 이는 영화계 내 극히 일부의 진단과 처방만을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중요한 법안은 영화계 전체의 의견이 골고루 반영되어 정교하게 조정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수렴과정이 미비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번 영비법 개정안의 초안 참여자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참여연대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할 수 있는 주요 법안에 영화계 내 소수의 의견만이 반영된 것이다. 

일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영화시장은 그 동안 비교적 건실하게 성장해 왔다. 스크린쿼터 등으로 자국영화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보호주의보다는 철저한 경쟁이 보장되었고 이런 가운데 대기업들이 참여했다. 이것은 영화가 산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철저한 자율 경쟁 하에 어느 새 매년 관람객 2억 명이 넘는 대형 시장으로 거듭났다. 이뿐만 아니다. 매년 자국영화 점유율이 50%를 넘어서고, 1천만 명이 관람하는 자국 영화도 여러 편 쏟아진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조금씩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자국영화 경쟁력을 확보하고 영화를 산업화시킨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거듭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영화의 상황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완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IT 문화기업들은 전 세계 영화시장에서 빠르게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안에는 철저한 수직통합 전략이 있다. 예컨대 완다그룹은 중국 내에서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뒤 안정적 성장을 바탕으로 빠르게 해외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미국 2위 극장체인 AMC와 4위 카마이크, 호주 1위 호이츠 등을 사들이며 세계 1위 극장 체인으로 등극했다. 여기에다 4조원 가량을 투자해 <인터스텔라>, <다크나이트>, <쥬라기월드> 등을 제작한 미국의 레전더리픽쳐스를 인수, 영화제작과 투자사업에도 본격 뛰어 들었다. 이제는 글로벌 수직통합 전략을 바탕으로 무대를 전 세계로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직통합은 비단 완다의 사례만은 아니며 글로벌 경쟁시대에 필수적 전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문화의 글로벌화를 지향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스크린독과점, 수직계열화를 잡겠다는 영비법 개정안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이번 개정안을 두고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영화산업이 급격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법안 발의자들은 지금이라도 영화계 내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폭넓은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법안을 통한 규제보다는 자율적인 토론을 통해 문제점을 올바로 진단하고 서로의 양보와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