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순실 의혹’을 수사하면서 대기업 총수 전원을 조사할 모양이다. 대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7명이라고 한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를 설립할 때 이들이 자금을 댔고, 그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비공개 면담에서 박 대통령은 대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총수들은 기금 제공의 조건으로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았을지 살펴볼 의도인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은 여러 문제를 노정한다. 먼저 선진국 문턱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후진적 준조세의 문제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53개 기업이 출연한 774억원은 세금은 아니되 세금처럼 반강제적 성격을 지녔다. 납부를 거부하면 모종의 불이익이 따랐을 것이다.

얼마 전 민주당은 미르재단에 거액을 낸 대기업 이사회 참석자의 발언을 공개한 바 있다. 경제단체장인 그는 중국 리커창 총리가 韓中 간 문화예술교류를 활성화하자는 얘기를 하면서 미르재단이 설립됐을 것이라면서 “(회사 측이) 이사회 추인만 원하고 이사회에서 부결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부결도 못 하고 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미르재단은 대기업 돈이 아니라 문예진흥기금을 통해 한중 문화예술활성화 사업을 별도로 수행하는 방식이어야 했다는 취지로 발언하고도 있다. 정부가 정부 예산으로 할 일을 기업의 팔을 비틀어 대신 해결했음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준조세 징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의 기업들은 각종 재해나 불우이웃돕기 성금, 정부사업 협찬금, 시민·사회단체 후원금 등으로 매년 막대한 자금을 내놓는다. 기부금이 한 해 6조원이 넘고, 법정부담금 등을 합하면 20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겉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비춰지지만 자유의사에 반하는 경우가 잦아 실제로는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는다.

정부나 단체 등으로부터 대가를 얻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보험료’ 성격이 짙다. 권력의 도움은 차치하고라도 자칫 권력의 눈 밖에 나 엉뚱한 피해를 입는 것만큼은 피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처럼 부정청탁과 불순한 대가성 거래로 의심받아 검찰조사와 함께 여론의 비난을 받는 경우는 ‘돈 주고 뺨 맞는’ 최악의 케이스일 것이다. 물론 검찰이 두 재단에 낸 출연금을 문제 삼는 것은 두 재단이 사리사욕을 위해 설립됐을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니, 대기업들로서는 그저 냉가슴 앓는 처지가 됐다.

준조세는 더 이상 유지해선 안 된다. 일반 성금뿐 아니라 정부 사업에까지 기업 돈을 대야 하는 후진적 관행은 이번 일을 계기로 사라져야 한다. 준조세는 자유로운 기업경영의 발목을 잡는다. 생존능력과 미래를 위한 투자 여력을 위축시키고, 주주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한다. 제품원가에 반영돼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나 각종 단체들의 반강제성 성금 요구를 금지하는 제2의 ‘김영란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 대기업들이 사법적 리스크까지 지게 생겼다.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불확실성에 이어 득달처럼 닥쳐온 삼중고다. 국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돼 있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세계적인 침체로 소비둔화가 지속되면서 수출길은 급속히 좁혀지고 있다. 유가하락의 효과도 조만간 사라질 수 있다. 현 정부가 주택경기를 부양해 내수를 살리려고 했지만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부작용만 잔뜩 키워 놓은 상태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견인하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각종 악재까지 겹치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해 있다. 현대차 임원들은 급여삭감까지 했다. 이런 여파로 악순환은 더욱 순환속도를 높이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은 기업의 위기 극복에도 직격탄이 될 것이다. 현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넘게 남겨진 상태에서 하야와 탄핵이 거론되고, 정치권도 내부갈등에 빠져 있으니 정부행정이 제대로 돌아가고 의회가 입법활동에 신경이나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경제 관련 입법이나 조선‧해운을 비롯한 주요 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은 물 건너 간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의 냉정하고도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