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학수고대하던 아이가 생겨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두 커플이 있다. 나이 차이는 조금 나지만 두 커플 모두 아이를 갖기 위해 긴 인고의 세월을 보냈고, 결국 귀한 아들을 선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닮은 점은 또 있다.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두 커플로부터 받은 인상이 상당히 ‘체계적’이었던 것.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준비를 해도 예상을 벗어나기 일쑤였던, 좌충우돌이고 고군분투였던 필자의 육아 무용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분하고 계획적이다. 미리 계획을 세워두었거나 확실히 입증된 사실만 수용하는 치밀함도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두 커플은 초보임에도 걱정이나 두려움보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무슨 근거나 단단히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 육아도 건축처럼 체계적이고 치밀할 수 있을까? 사진은 레고 아키텍처 판스워스 하우스. 출처=레고

비단 두 커플만의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아키텍키즈(Architec-Kids)’란 말을 처음 들은 건 올 초 서울대학교 소비 트렌스 분석 센터에서 내놓은 2016년 전망 리스트를 통해서였다. 아키텍키즈는 말 그대로 부모가 계획한 설계 도면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길러지는 아이들이란 뜻. 그 근거가 되는 이론은 단순명료하다. 충분히 검증된 제품이나 육아법 또는 전문가 추천에 의존해 자녀를 마치 집 짓듯이 공들여 키우는 원리다.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별에서 온 것은 아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트렌드는 계속 변화해왔다. 결혼 시기가 30대 중반을 훌쩍 넘기면서 임신도 늦어지고,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으로 난임과 불임 부부까지 증가하면서 자연 임신보다는 배란기를 확인해 계획적으로 아이를 갖는 부부가 늘었다. 임신 후에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2주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들러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찍고, 더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남들이 좋다고 하는 태교법을 총동원한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전혀 들어보지 못했거나 가고 싶어도 주위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였던 태교 여행은 이미 필수 코스가 되었다.

아키텍키즈는 임산과 출산 후 절정에 달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빅데이터를 활용한 확률 높은 육아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국민 기저귀, 국민 젖꼭지, 국민 물티슈까지 모두가 인정한 제품만 구입하고, 평판이 좋은 교구나 학습지는 물론 주중에 주말까지 불사하고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등 사교육의 늪에 빠진다. 입학철 사립학교 주변은 정보 싸움의 최전선으로 대학 입시를 방불케 한다. 인터넷과 SNS에서 얻는 방대한 정보를 등에 업은 엄마 아빠들은 육아에 자신감을 표출한다. 자아실현의 연장선에서 육아에 임하는 엄마들도 늘고 있다. 만반의 준비로 다 헤치고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 초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실수들이 있고 이내 시련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나 친척,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수치나 자료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아키텍키즈의 특징. 그 절충안으로 페이스북에 아픈 아이의 증상을 말하고 다른 부모들의 경험을 수집하고 종합해 가장 나은 해결책을 찾는 이도 쉽게 볼 수 있다. 마치 인테리어에 필요한 자재나 찾기 힘든 자동차 부품을 수소문하듯이 말이다.

아키텍키즈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실제로 다수의 의견과 전문가의 조언이 출산 전이거나 아이가 하나일 때는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더 크거나 둘째 셋째 동생이 생기면 하나둘 단점이 속출하기 십상이다. 언젠가 육아는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의 연속임을 깨닫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그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아닌 정보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화를 부를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눈높이를 고려하기보다는 부모의 욕심에서 비롯한 계획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인정한 제품이라도 내 아이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내 아이가 소문난 학원과 사립학교에 가지 않으면 큰일 나는 이유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아이에게 묻지 않고 부모 스스로 세운 계획일 뿐이다. 그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보는 것이 먼저다. 아이라고 무시하면 아이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눈높이 교육의 첫 단추는 아이를 어른과 같은 인격체로 존중하는 마음이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아이가 내 계획에서 벗어났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내 생각대로 따라주는 아이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리라. 모름지기 육아라 함은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늘 부모의 예상과 기대를 벗어난다는 데 그 묘미가 있다. 그러니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충분히 듣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충분히 헤아린 뒤에 계획을 세워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