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은 ‘늦장 공시’로 그 신뢰를 잃었다. 불공정거래 의혹, 사외이사 제도의 무용성 등은 결국 개인투자자들을 울렸다. 하지만 신뢰는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미약품이 다시 빛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한미약품 사태가 발생한 그날 ‘개장 1분’ 누군가는 분명 웃었다.

지난달 30일 한미약품의 주가는 전일대비 18.06% 폭락한 50만8000원을 기록했다. 이에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제넨텍과 1조원 기술수출 계약을 발표했으며 다음날 오전 9시 29분께 베링거잉겔하임과 항암제 기술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일각에서는 한미약품의 주가 폭락이 공매도 세력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전까지 한미약품의 누적 공매도 추이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폭락의 근원을 ‘공매도’라 할 수 없다. 공시 당일부터 공매도 추이는 급격히 증가했으며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세력들은 ‘악재 공시’라는 ‘공매도’ 명분을 쥐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모든 운용주체는 매수·매도에 대한 명분이 있어야 실행이 가능하다”며 “한미약품에 대한 고평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는 운용주체들에게 ‘매도의 명분’을 제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전부터 기관투자자 등 운용주체들 사이에서 한미약품에 대한 고평가 얘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도유망한’, ‘고령화 시대의 최대 수혜업종’이라 불리는 제약업종, 그 중에서도 대장주인 한미약품을 매도한다는 것은 단순 ‘고평가’라는 명분만으로 매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미약품의 일명 ‘악재 및 늦장 공시’는 매도 명분을 제공했고 공매도 세력도 이에 힘을 실은 것이다.

개장 후 1분 9만2103주 거래...매도 주체는 누구일까

4일 당일 한미약품 주식의 거래내역을 보면 장 개시와 동시에 한미약품의 주가는 전일대비 4.68% 급등으로 출발했다. 이후 불과 1분 만에 9만2103주가 거래됐는데 이는 이전 같은 시간대 한미약품의 거래량과 비교해도 분명 다른 규모다. 또 이날 1분 단위로 거래량을 봐도 ‘개장 1분’의 거래량은 최대치다.

이후 한미약품의 주가는 부진한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공시 직전, 전일 종가와 같은 수준에 이르렀다. 공시 발표 후, 주가는 본격적인 하락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장마감 이후 호재가 발표되면 다음날 개장과 동시에 해당 기업 주식 거래량은 폭증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이례적인 ‘개장 후 1분의 거래량’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보낼 이유가 없다.

▲ 한미약품 주가 및 거래량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그러나 이상한 점은 공시 발표 이후 1분당 거래량을 ‘개장 후 매 1분 마다의 거래량’이 압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돌발 악재’로 인해 전일의 호재와 당일의 악재가 겹치는 상황이라면 이날 악재공시 이후 더 큰 거래량이 발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한미약품 사태의 핵심은 공매도가 아닌 내부정보 유출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미 누군가는 이 정보를 알았고 장 초반 비교적 ‘여유 있게’ 물량을 처분한 것이다. 그것이 단순 매도이든 공매도든 말이다.

한편, 한미약품의 ‘늦장 공시’는 공시제도에 대한 효율성 문제도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25일 “한미약품 사태에 허점이 노출된 자율공시 제도를 강화하겠다”며 “불공정거래에 관련해 면밀히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미약품의 공매도가 국내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 이사장의 발언은 다소 초점을 흐리고 있다. 이번 한미약품 사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부거래 정보, 즉 불공정거래 가능성에 있다. 쉽게 말해, 미공개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원천 차단해야만 여타 논란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공시제도 개편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막기란 상당히 어려우며 이와 관련된 문제는 결국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또 더군다나 공매도에 차명계좌가 이용됐다면 정 이사장의 발언 중 하나인 “공매도 투자자의 유상증자 참여 금지”도 의미가 없다.

감시체계의 허점, 쓸모없는 사외이사제도...처벌 강화 필요

기업은 자체적으로 사외이사 제도를 통해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약품의 경우 이러한 내부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올해 1월 그룹사 직원 약 2800명에게 자신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90만주를 무상증여 했으며 아울러 당시 사외이사 중 하나인 이종구 전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에게도 한미사이언스 주식 775주를 무상증여했다. 사실 사외이사에게 주식을 무상증여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사외이사의 경우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러한 무상증여는 그러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이사회의 독립성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사외이사의 사회적 연결(Social Tie)을 중심으로’(김재경, 신진영) 제목의 논문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이 논문은 기존 연구가 사외이사의 비율 혹은 사내이사와 사회적 연결이 없는 사외이사의 수와 비율로 이사회의 독립성을 측정한 것과 달리 사회학에서 활용되는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이사회의 독립성을 측정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의 핵심은 단순 사회 연결망, 즉 학연·지연 등으로 인한 ‘감시의 폐해’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사외이사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일수록 경영진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모니터링과 견제 및 감독을 통해 기업 가치를 제고 시킬 수 있다는 점을 사회 연결망 관점에서 밝혔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과연 한미약품의 사외이사 제도가 적절히 작동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 사외이사제도가 더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자격기준을 독립성 관점에서보다 엄격하게 규정하고 시행하는 것이 우선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정찬우 거래소 이사장의 발언을 상기해보면 얼마나 ‘비현실적’ 대책이었는지 알 수 있다.

제도적으로 내부거래 정보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사외이사의 독립성은 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조치다. 그러나 사외이사들이 그들의 역할인 ‘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경우 이에 대한 처벌은 미흡한 상황이다. 투자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만 죽어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