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사람들의 옷차림은 마치 장례식장에라도 가듯이 검정색 일색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선거를 앞둔 요즈음에는 다양한 셔츠나 액세서리 등을 달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의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의 가방에는 ‘Love Trumps Hate(사랑이 증오를 이긴다)’는 문구가 새겨진 배지가 달려 있었다.

이 문구는 클린턴의 사랑이 트럼프의 혐오를 이긴다는 뜻으로 클린턴 지지자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7월 28일 민주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후 널리 사용된 문구다. 클린턴 지지자인 이 여학생이 자신의 지지의사를 밝히기 위해서 가방에 달은 것이다. 조용한 일요일 오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할머니는 말끔하게 차려입고서는 ‘Vote Hilary(힐러리에게 투표를)’라고 적힌 가방을 메고 있었다. 힐러리 클린턴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제품인데 아마도 비공식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산 모양이다.

같은 날 저녁시간 즈음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술집 앞에서는 ‘Vote Trump(트럼프에게 투표를)’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중년의 남성들이 모여 있었다. 미국인들은 평소에는 대화의 주제로 정치를 잘 꺼내지 않는데, 선거철이면 자신의 지지 정당이나 지지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연예인들도 자신의 지지 후보를 TV에서 공개적으로 밝힌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연예인들은 힐러리 연설장에서도 등장했던 케이티 페리를 비롯해서 유명 배우인 에바 롱고리아, 메릴 스트립, 시고니 위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다양하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연예인은 많지는 않지만 찰리 쉰, 헐크 호간 등이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연예인들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했다가는 두고두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의 지지 사실을 거리낌 없이 밝힌다.

기업인들은 지지 후보를 공개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액수의 금액을 선거캠프에 기부하면서 선거운동을 돕기도 한다. 힐러리 클린턴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기부한 기업인들이 많은데 애플의 CEO 팀 쿡, 아메리칸 항공의 더그 파커, 나이키의 마크 파커, 매사추세츠 뮤추얼 생명보험 CEO 로저 크랜들 등이 힐러리 선거캠프에 기부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휴렛팩커드(HP) CEO 메그 휘트먼도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전 뉴욕시장이자 <블룸버그 통신>의 소유주인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힐러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기업인 출신인 트럼프를 지지하는 기업인은 많지 않은데 최근 온라인 결제서비스인 페이팔과 빅데이터 분석업체 팔란티르의 공동창업자이자 페이스북의 이사회 멤버이면서 헤지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피터 틸이 125만달러를 기부한다고 밝히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밖에는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로버트 머서와 딸 레베카 머서가 155만달러를 트럼프에 기부한 바 있다.

신문과 방송 등도 중립을 지키기보다는 지지 정당이나 후보를 밝히고 독자들에게 투표하도록 독려한다.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미국 내 100대 언론매체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곳은 43곳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보스턴글로브> 등 유명한 신문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공식적으로 지지한다.

반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곳은 중소 신문사들로 사위인 재러드 쿠시너가 소유한 <뉴욕 옵서버>를 비롯해서 <산타 바바라 뉴스-프레스>와 <세인트 요셉 뉴스-프레스> 등이다. 100대 매체 중에서는 <라스베가스 리뷰>가 유일하게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섰다.

한국에서는 비밀 투표의 원칙을 너무 굳게 믿는 것인지, 투표를 하고 난 후에도 누구를 지지했는지 말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아마도 지지 후보가 밝혀지면 그 후의 후폭풍이 무서워인지도 모르겠다. 후폭풍이나 뒷감당을 고민하지 않고 마음껏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밝힐 수 있는 미국인들이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