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테크는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경제다"

고종성 제노스코(Genosco) 대표이사가 '2016 서울 바이오 의료 컨퍼런스'에서 어느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한 말이다. 바이오기술 산업에도 '아이디어'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이오산업은 지식기반 산업이다. 기술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혁신적인 기술(아이디어)은 벤처에서 나온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 단지를 조성하고 벤처 기업들을 키우기 위해 열을 올리는 이유다. 하지만 바이오 벤처는 연구를 이어갈 대학이나 병원과의 연계가 필수적이고 자금 마련이 중요하다. 다국적 제약사의 협력도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이 선순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집약된 곳이 바이오 메디컬(의료) 클러스터다. 이에 최근 정부가 서울 홍릉에 조성하기로 한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 핵심은 '네트워크'

고령 사회가 다가오면서 바이오 의료 산업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온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이 가져올 새로운 산업혁명을 일컫는 말이다. 바이오 의료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의료와 ICT의 융합이 신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산업인만큼 관련 시장 선점을 위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ICT 융합 의료산업을 위한 전략을 세우고 경쟁한다. 신산업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보·기술의 오픈'과 '협업'이다. 이를 위해 각 나라가 주력하는 것이 바로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 조성이다.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는 한 공간 혹은 지역을 말한다. 바이오 의료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는 대학, 병원, 기업, 투자 기관, 정부가 종합적으로 모여있는 곳을 말한다. 클러스터는 단순히 이런 기관들이 모여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구축 해 이곳에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클러스터의 핵심은 네트워크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메디컬클러스터의 경우 하버드·MIT 등 우수한 대학이 위치해 있고 메사추세츠종합병원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이 입지해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벤처 기업을 배출하고 병원과 협력해 연구를 진행한다. 이 성과를 흡수하기 위해 노바티스와 같은 다국적 거대 제약사들이 함께한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은 바이오 벤처캐피탈 투자와 정부 지원이다. 연구개발에서부터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보스턴 메디컬클러스터는 연구 성과가 창업, 기술이전, 라이센싱 등으로 연계되도록 상업화가 활성화 된 곳이다. 대학 교수나 연구자가 창업을 하거나 라이센싱을 할 수 있도록 대학 내에 벤처지원체계가 마련 돼 있고 벤처캐피탈이나 정부 지원 시스템과 연계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 돼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것이 바로 암젠에 기술 이전한 엔브렐의 사업화 사례다. 엔브렐은 매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연구개발한 류마티스성 관절염 주사약 치료제다. 개발 이후 병원은 이뮤넥스(Immunex)에 지식재산권을 기술이전했고 2002년 암젠이 이뮤넥스를 인수했다. 암젠이 이뮤넥스를 인수한 가장 큰 이유는 엔브렐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메디컬(의료) 클러스터를 통해 구축되는 네트워크 시스템은 각 기관과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연구개발이 단순히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 활용될 수 있도록 상업화가 활성화 되면 이는 곧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경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 출처=서울시

바이오 코리아, 서울 홍릉에 거는 기대

정부는 지난 9월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 조성을 발표했다. 미국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를 벤치마킹해 바이오 의료 창업 선도기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산학연 연구 지원을 통해 2020년까지 글로벌 신약 17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예산을 늘리고 시설 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의 지원을 할 예정이다. 연구 성과를 사업화 할 병원·연구소 전담조직도 현재 53개에서 1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아이디어에서 마케팅까지 바이오 의료 창업을 지원하는 '바이오헬스 비즈니스 코어센터'도 설립한다.

바이오 의료 산업 관계자들은 정부가 이처럼 클러스터 조성에 발 벗고 나선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바이오 의료 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조명 받고 육성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 돼 왔지만 아직까지 산업 생태계 조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국내에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것은 홍릉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주로 지방을 중심으로 클러스터 조성 움직임이 있었다. 충북 오송 바이오산업 클러스터, 대구경북 의료산업 클러스터, 원주 의료기기 클러스터, 경기 바이오 클러스터, 대덕연구개발특구, 인천송도 바이오클러스터 등이 있다. 서울시가 나서서 홍릉에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를 세우는 것은 서울을 바이오 허브로 삼고 전국의 클러스터들과 연계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까지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 홍릉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 출처=서울시

무엇보다 홍릉 바이오 의료 클러스터에 기대하는 것은 '바이오 벤처 육성'이다. 바이오산업에서 스타트업은 매우 중요하다. 한 자료에 따르면 혁신적 신약 중 48%는 바이오 벤처를 거쳐 개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제약사인 제넨텍도 대학 교수와 벤처캐피탈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 사업화를 위해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시작했다. 클러스터가 중요한 이유는 대학→벤처→제약회사로 이어질 사업화 모델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의료 업계 관계자들은 제 2의 한미약품 배출을 위해 바이오 스타트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국내서는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바이오 의료 벤처 투자 중 3년 이하의 신생 벤처기업 투자도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바이오 의료 벤처기업들이 연구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고 단기 수익성 마련에 종종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다.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이사는 국내와 해외의 가장 큰 차이로 '정부 정책 일관성'과 '투자 문화'를 꼽았다. 바이오테크에 관련된 정책의 경우 15년 이상의 정책이 일관성을 가지고 갈 필요가 있는데 외국은 이런 정책의 일관성이 잘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또 외국은 벤처투자자들이 한 스타트업에 투자해 아주 큰 기업으로 만들어 창업자와 상생하려는 분위기가 많다고 전했다. 이런 환경에서 성공한 투자자들이 배출되면 그 성공을 맛 본 사람들은 또 투자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투자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것이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산업혁신연구본부장은 "바이오와 IT 스타트업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이 어렵고 축적된 연구 기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 바이오 산업 생태계가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바이오 의료 산업 1세대 창업자가 엑시트를 한 사례가 없어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글로벌 상위 20개 기업 중 우리나라 기업이 2개쯤 포함될 수 있을 때 까지는 정부 지원이 적극 뒷받침 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계획하는 ‘바이오 허브’ 공간은 스타트업 육성을 위주로 채워질 예정이다. 본관은 산학연 네트워크 공간이다. 신관은 인큐베이팅을 목적으로 공용 연구 장비실, 공용 실험실 등을 제공한다. 별관은 코워킹 기업지원 공간으로 마련된다. 세 건물 모두 초기 벤처기업을 위한 입주 공간을 둘 계획이다. 바이오 허브가 유망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집중 육성하는 엑셀러레이터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바이오 의료 산업이 신성장 동력으로서 가치가 높은 것은 분명하다. 업계에서는 이번 서울시의 클러스터 조성을 계기로 바이오 의료 스타트업 창업이 활성화 되고 대학, 병원, 정부, 기업의 협력으로 글로벌로 도약할 수 있는 탄탄한 네트워크가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