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M 시리즈 (14-15-16) / 출처 = 현대자동차

“우리는 아주 즐거운 여정의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시험·고성능차담당 부사장)

현대자동차는 그 어떤 기업보다 빠르게 성장해왔다. 반조립 형태의 자동차 부품들을 들여와 조립·판매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 5대 완성차 기업으로 거듭났다. 짧은 기간 현대차는 고유의 기술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독자 기술’을 위한 의지를 보여줬다.

현대차가 또 한 번 출발선에 섰다. 이번에는 고성능차. BMW ‘M’, 메르세데스-벤츠 ‘AMG’ 등과 자웅을 겨루겠다는 구상이다. 유수의 기업들이 이미 포진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후발주자’다. WRC 랠리카 i20, 양산차인 신형 i30 고성능 모델, ‘N’의 미래를 보여주는 미드쉽 선행차 RM시리즈, 친환경 고성능 콘셉트카 N 2025 비전 그란 투리스모까지. 도전을 통한 새로운 가치 실현.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었다.

준비된 브랜드 ‘N’

현대차 ‘N’의 출발점은 스포츠카다. 이 회사는 앞서 1990년 2도어 스포츠카 ‘스쿠프’를 시장에 내놓으며 새로운 시장에 손을 뻗었다. 이 같은 스포츠카 DNA는 1996년 티뷰론, 2001년 투스카니, 2008년 제네시스 쿠페로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세상에 실체를 드러낸 것은 2011년이다. 현대차는 연구소 내부에서 독자 기술 개발을 통한 고성능 차량 개발을 선언했다. 2012년 개발조직을 발족하고 WRC에도 본격 참가를 선언했다. 같은 해 파리모터쇼에서 i20 WRC 콘셉트카를 발표하고 RM 미드십 시범 차량 제작에 착수했다.

2013년부터 고성능 브랜드 ‘N’의 중장기 개발 계획을 수립하며 개발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14년 부산모터쇼에서 RM14를 공개하고 독자 개발 차량으로 WRC에 처음 참가했다. 8월 독일랠리에서는 첫 출전에 우승을 거두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6년 들어와 새로운 ‘N’ 로고가 공개되며 대략적인 틀이 잡혔다.

▲ 2015년도 브릴리언트 모터 페스티벌 참고사진 / 출처 = 현대자동차

현대차 내부에서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꿈이 발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동차가 좋아서 입사한 사람들, 스포츠카 동호회를 만들며 레이싱을 꿈꾸던 사람들, 드림카를 직접 만들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모여 ‘N’을 출발시켰다는 전언이다.

목적이 분명한 만큼 방향성도 정확했다. 현대차가 고성능 기술을 개발하면서 내세운 원칙은 크게 세 가지다. ▲모터스포츠로부터 영감을 받고 ▲단순한 힘이 아닌 성능을 조화를 구현하며 ▲운전자가 느끼는 감성적인 즐거움을 먼저 생각하는 것 등이다. 현대차는 실제 WRC를 비롯한 모터스포츠 대회 참가를 본격화하며 ‘조화로운 성능’과 ‘감성’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차는 또 ‘N’ 브랜드를 위해 인재 영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며 개발 의지를 불태웠다. 남양연구소 고성능차개발센터를 재정비하고 독일 뤼셀스하임의 유럽기술연구소(HMETC)에도 고성능차개발실을 새롭게 조직했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BMW의 고성능차 개발총괄책임자였 던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 부사장을 2014년 12월 데려왔다. 그는 7년 동안 BMW ‘M’의 연구소장직은 담당해온 인물이다. 이듬해 11월에는 메르세데스-벤츠 ‘AMG’ 출신의 클라우스 쾨스터(Klaus Kostor) 이사를 비롯해 다양한 개발자들을 영입했다.

“기본기에 충실한 차 만들어라”

고성능차는 기본적으로 운전자가 의도한 대로 잘 달려야 하고, 잘 멈춰야 하며, 잘 회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기본기에서 출발하듯 고성능 기술 역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다듬어 단계적으로 신기술을 탑재하는 셈이다. 현대차가 최근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삼게 된 배경이다.

▲ RM15 / 출처 = 현대자동차

고성능차가 되기 위해서는 고출력, 고 RPM은 물론 고온·압력 등이 극한에 달한 상황에서도 이를 버텨낼 높은 강성이 필요하다. 차체는 코너링과 고속 안정감을 위해 저중심으로 설계돼야 하며 첨단 소재 사용을 통해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현대차가 ‘N’에 투자하고 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애용하는 합리적인 가격의 차량은 만드는 메이커라는 한계를 넘어서야겠다고 각성한 것이다. 랠리카 및 미드십 선행차를 통해 개발을 위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이 반영된 첫 번째 양산형 고성능 차가 2017년 공개될 예정이다.

개발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는 RM시리즈는 ‘움직이는 고성능 N 연구소’라는 별칭을 갖는다. 2014년부터 매년 모터쇼를 통해 선보이는 RM시리즈는 실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테스트카’다.

올해 부산모터쇼에서 공개된 RM16은 이전의 RM14·RM15에 비해 동력성능이 대폭 개선되고 다양한 신기술이 추가됐다. 액티브 스포일러를 통해 냉각·공력 기술을 개선하고 배기음을 튜닝해 고성능차의 감성 품질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2.0 세타 T-GDi 엔진에 전동식 수퍼차저를 추가 적용해 엔진 응답성도 강화했다.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 39.0㎏·m의 힘을 발휘한다.

친환경 고성능 콘셉트카인 ‘N 2025 비전 그란 투리스모’도 주목된다. N 2025는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친환경 고성능 파워트레인을 구현했다. 두개의 연료전지 스택에서 최고출력 500kW(680마력)를 발생시킨다. 제동 시 얻어지는 회생에너지를 슈퍼 캐퍼시터에 저장한 후 150kW(204마력)의 추가 에너지를 일으킨다. 이를 통해 총 650kW(884마력)의 시스템 출력을 낸다.

▲ 2014 i20 WRC CAR / 출처 =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더 많은 고객들이 탈 수 있는 차량에 고성능 기술들을 대거 적용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서킷에서 최고 속도로 달리는 경주용 자동차 개발에서 터득한 기술과 험한 돌길과 진흙탕길을 쉴 새 없이 달리는 WRC 랠리카에서 얻은 노하우를 접목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가 달리고 있다. ‘N’의 진짜 의미는 현대차가 고성능차를 통해 습득한 기술력을 양산차에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점이다. 험로를 주파하며 내공을 쌓은 랠리카의 기본기를 아반떼·쏘나타에 장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성능 ‘N’을 위한 개발자들의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