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필요하다.’ 최근 품질문제로 위기를 맞은 기업에 전문가들이 내리는 한결 같은 지적이다. 화려하게 등장한 제품이 혁신적이지 못했던 걸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발목을 잡았다.

이번 사태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패스트팔로워(Fast-Follower)’로 성장해온 우리 기업들의 공통적인 문제가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선진국의 혁신사례를 모방하며 세계 일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지만 ‘더 적합한 것’을 고민하기보다 ‘더 좋다고 하는 것’을 쫓으며, 혁신의 ‘속도와 양’만 추구하고 집중했던 결과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자사에 더 적합한 혁신을 고민하고 실행한 결과 독보적 품질경쟁력을 갖춘 두 기업의 사례가 있다.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 D사는 직원 150명의 소규모 회사로 스틸코일 원자재를 절단, 가공하는 기업이다. 스틸코일의 절단, 가공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에서 타 경쟁사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구축하기 위해 D사는 ‘보여줄 수 있는 공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철저한 낭비 제거와 효율적 인력운영에 집중했다. 화려한 혁신기법의 도입이 아니라 자사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에 집중한 것이다. 이로써 독보적인 품질에 가격 우위까지 갖춘 D사는 중소규모의 회사로는 예외적으로 품질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토요타에 제품을 직납하고 있다.

일본 대표 욕실제품기업 T사는 30년 전 전사적 설비관리 활동인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을 도입했다. 진흙을 반죽하여 고열로 구워내는 위생도기의 제조과정은 필연적으로 흙먼지를 생성해 설비에 악영향을 불러일으키고 품질과 생산성에 차질을 빚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TPM은 단순한 설비관리 활동이 아니라 ‘흙, 물, 기름을 컨트롤하자’는 혁신방향을 추구하며 품질, 원가, 설비, 공장안전 등 전 영역에 걸친 T사 만의 전사적 혁신활동으로 확장 추진되고 있다. 기법의 도입이 아니라 자사의 문제 해결에 집중한 다양한 혁신기법의 도입과 활용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끈 것이다.

앞선 두 사례를 통해 우리 기업만의 혁신을 원하는 기업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전략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객관적인 진단을 통해 혁신의 구체적인 문제를 파악하라. 쉽게 말해 문제가 곧 혁신방향이다. 기업이 객관적으로 내부의 문제 요인을 분석하는 것은 기업의 외부적인 경쟁요인을 파악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D사는 자재를 절단, 가공하는 단순 작업의 특성상 차별적 원가절감에 경쟁력이 있음을 명확히 파악했다. T사는 제조 시 흙과 물을 배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설비는 물론 작업자에게까지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을 짚어냈다.

둘째, 문제를 제거하기 위한 혁신활동의 맞춤형 설계와 실행이다. 문제를 파악했다면 적합한 혁신활동의 맞춤형 설계와 실행이 필요하다. D사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 150명 정도의 인원 활용을 극대화해야 했다. 이를 위해 부서를 통합하고, 모든 직원이 설비와 품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언제, 누구라도 고객에게 작업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현장분위기를 조성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만이 아닌 현장 전체에 대한 이해가 형성돼 있었기에 적극적인 소통과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품질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원가 절감 방안에 대해 끊임없이 고안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먼지와의 싸움에 나선 T사는 역시 공통의 목표 아래 구체적인 16가지 손실(Loss)을 규정, 이를 없애가는 방식으로 실천적 혁신을 이어갔다. 혁신활동의 맞춤형 설계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도출된 문제 및 혁신활동 방향의 전사적 공유다. 전 직원이 ‘한 가지’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기적 구조로 움직이는 기업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은 특정부서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혁신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진화하라. 혁신은 이미 발생한 일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영수준과 함께 높아지는 잠재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선진 혁신기법을 도입하는 것이 일정 단계에 이르렀을 때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T사의 경우 30년간 추진해온 혁신기법 TPM을 몇 년을 주기로 내용 및 방법을 조금씩 발전시켰다. 따라서, 추진 초기와 현재의 활동 모습이 전혀 다르다. 현재의 TPM은 일반적인 ‘TPM’이라기보다 ‘T사만의 종합적 혁신활동’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린다. 매년 지속적으로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하고 실천하는 전 과정을 통해 혁신활동은 진화의 힘을 갖는다. 정해진 틀에 활동을 맞추지 않고 당시의 환경에 따라 변화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1월, 삼성이 사내방송을 통해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일본의 장인정신 ‘모노즈쿠리’를 임직원들에게 전달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첨단 기술이 고도화되는 시점에도 우수하고 안정적인 품질이 제조사의 정수(精髓)이자 기본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기에 현 사태가 더욱 안타깝다.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리 기업이 따라잡아야 할 ‘선진기업’이라는 모델은 이제 없다. 지금이야말로 혁신이 필요하다. 누구에게 배우고 모방한 혁신기법이 아닌 우리의 문제에 집중하고 우리의 역량을 활용하는 우리로부터 시작하는 진정한 혁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