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이 약관상 지급한다고 규정했던 자살보험금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대법원이 자살보험금에 대해 일부는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하고 또 다른 송사에선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한 상황. 약관상의 표기오류라 해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소멸시효가 지난 경우에는 상법에 따라 지급의무가 없다는 판단이다.

반면 금융감독원의 경우 약관 명시 후 보험금 미지급 자체 자체가 보험업법 위반이라는 입장인데다 국회에서는 지급관련 법안까지 제안하고 있어 생보사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이코노믹리뷰는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핵심 쟁점에 대해 문답식으로 정리해 봤다.

 

약관내용 오류 핑계로 삭제…법원 “지급하되, 소멸시효 지나면 무효”

Q. 자살보험금 지급 문제는 왜 불거졌는지

==지난 2001년 동아생명(현 KDB생명)은 재해사망특약이 담긴 상품을 판매하면서 약관에 ‘자살의 경우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이후 다른 보험사들이 유사 상품을 내놓으면서 동아생명의 약관을 그대로 베끼게 됐다. 때문에 다른 생보사들의 재해사망특약 상품에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약관이 적용된 전체 보험 계약 건수는 대략 280만 건으로 집계된다.

Q. 생보사들은 언제부터 문제를 인지했는지

==판매된 지 10여년이 지난 뒤인 2010년 4월경이다. 생보사들은 당시 관련 약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뒤늦게 인지하고 자살을 재해사망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문제는 해당 상품에 가입했던 자살사망자 유가족들은 이 같은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약관을 수정한 뒤 일반사망 보험금만 지급했지만, 약관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은 대다수의 가입자들은 자살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Q. 금융당국은 해당 문제를 언제 인식했는지

==2013년 8월 금융감독원이 ING생명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했다. 당시 금감원은 관련 상품 약관에 재해사망특약 가입 시 일반사망 보험금보다 2~3배 많은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준다고 기재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반사망 보험금만 지급한 사실을 적발했다.

ING생명 이후 금감원은 다른 생보사들로 조사를 확대했고,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동일한 행태를 보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Q. 당시 가장 큰 쟁점은 무엇이었는지

==보험사들은 약관이 잘못됐다고 해명했다. 자살은 재해와 무관한 성격의 사망이기 때문에, 재해보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약관 표기의 실수이기 때문에 지급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경우 명백하게 잘못 기재된 약관이라 하더라도 약관대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엄연히 약관에 기재된 내용이기 때문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금감원은 보험사들에게 징벌적 규제를, 보험사들은 금감원에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비자들은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보험금 청구소송을, 보험사들은 또 소비자에게 지급의무가 없다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Q. 법원의 판결은 어떻게 나왔는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났다. 대법원은 지난 5월12일 생보사들이 2010년 4월 약관 개정 이전에 판매한 상품의 경우 옛 약관에 기재된 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Q. 또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은 왜 나왔는지

==소멸시효 문제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상법에 따르면 보험금은 보험사고 발생 시점에서 2년내 청구하지 않으면 시효가 완성돼 청구권이 소멸된다.

즉, 생보사들은 옛 약관에 기재된 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만일 소비자가 미처 보험금을 청구하지 못해 소멸시효가 지났다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Q. 대부분의 자살보험금이 소멸시효가 지났는지

==문제는 대부분의 미지급 자살보험금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미지급 자살보험금 총 2600억여원 가운데 소멸시효가 완성된 금액은 무려 2200억원에 육박한다. 사실상 대부분의 미지급 자살보험금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자살보험금 지급 쪽으로 가닥 잡힐 것”

Q. 금감원 측은 소멸시효가 지나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보험업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보험업법 127조3항 ‘약관 준수’ 규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는 보험계약자의 권리 축소 또는 의무 확대 등 보험계약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포함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따라서 가입자가 재해사망금만 청구했더라도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까지 챙겨서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계약자의 권리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논리다. 일반적으로 피보험자는 보험금을 청구할 때 약관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임을 감안할 때 보험사들이 주계약 관련 보험금만 지급한 것 자체가 악의적이라는 주장이다.

Q. 제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사안에 연루된 14개 생보사에 대해 보험업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과징금은 제재의 경중에 따라 연간 수입보험료의 최대 20%까지 부과할 수 있다. 또 일각에서는 과징금 이상의 행정제재를 부과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Q. 자살 보험금 지급 법안까지 추진 중이다

==지난 7월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은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소멸시효의 효력을 없애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 지난달에는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 역시 자살보험금 지급을 위해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도 특례를 적용하는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Q. 보험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애초에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를 부려 사태가 이렇게까지 왔다는 의견이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은 9월30일 성명을 내고 생보사들의 대국민 사과와 더불어 금융당국의 보험업법 위반행위 엄중처벌을 요구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금소원 오세헌 국장은 여러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어느 보험사도 생명보험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일반사망보험금과 재해사망보험금을 따로 청구하게 하지 않는다”며 “수익자가 일반사망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재해사망보험금도 같이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주장했다.

▲ 2016년 5월 기준

Q. 이미 지급한 보험사들도 있다

==지난 6월 일부 보험사들은 대법원 판결과 별도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보험금을 지급하는 업체는 ING생명(815억원), 신한생명(99억원), 메트라이프(79억원), PCA생명(39억원) 등 7개 회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감독당국의 적극적인 규제와 더불어 도의적인 책임 소재에 있어 자유롭지 못한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더 이상 미루기는 힘들 것”이라며 “초반에는 눈치싸움이 지속되겠지만 이미 지급을 결정한 보험사도 있는 만큼 결국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