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8%로 낮췄다. 경기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상황에 따라 이보다 더 낮아질 수도 있고, 그럴 경우 금리도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경제가 오랫동안 저성장 기조로 가고 있어서 성장률을 높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경제정책의 핵심기관에서 공식화한 만큼 기업이나 창업자들도 이를 감안한 아이디어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 온 듯하다.

이렇게 불황이 어이지면 대부분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불황이기 때문에 잘되는 사업도 꽤 있다. 마치 태풍은 개별적으로 보면 피해만 주는 것 같지만 녹조와 무더위를 없애주고, 바닷물을 뒤집어서 물고기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듯이 불황도 시장적으로 보면 좋은 경우도 있다.

우선 시장적으로는 청소 기능(Swiping Out)을 꼽을 수 있다. 체질 약한 기업을 밀어내고 방만한 기업은 슬림화해서 건강한 시장생태계로 거듭날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8년 전, 70만개를 넘던 소상공업종이 불과 8년 후인 지금, 56만개로 줄어든 점이나 매년 10만개 이상 창업하던 것이 지금은 8만개 수준으로 줄어서 포화시장을 조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거품 낀 상품들은 가격을 내리게 되니까 가계에도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소비 행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충동소비다. 목적 없이 쇼핑하다 눈에 차면 즉각 구입하는 무절제한 소비인데 주로 성장기에 나타나는 보편적 소비 행태다. 둘째는 이성소비인데 미리 구입할 목록을 가지고 가격을 견주어가며 구매하는 경우로, 불황기에 나타나는 중산층의 소비 행태인데 요즘 말로 가성비를 따져 구매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지성(知性) 소비로 꼭 필요한 제품은 다소 값이 비싸더라도 구매하는 마니아와 고수입자들의 소비 유형이다.

불황기에 주목해야 할 소비 행태는 바로 이성소비다. 즉 중산층 이하의 소비 행태를 눈여겨보면 불황 탈출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어차피 저소득층은 경기와 상관없이 싼 제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고소득층은 횟수는 줄일지라도 눈높이를 낮추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해석하면 중산층 이하는 저가로 수렴하지만, 고소득층은 구입 횟수를 줄일 뿐 자존심을 낮추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불황기에 저가지향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업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 사업자의 경우, 상품의 가격을 상당 부분 낮추는 수익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다. 고깃집에서 6000원대 점심 메뉴를 한정판매하거나 치킨집에서 테이크아웃형 저가모델로 전환하는 식이다.

서비스업에서도 독립 세탁소에서 협동조합 결성을 통해 세탁편의점으로 전환하거나 회당 4~5만원 하는 가사도우미 서비스업 같은 홈케어 서비스도 화장실 청소, 냉장고 정리와 같이 업종을 쪼개서 수수료를 3만원 수준으로 낮추는 등의 방법도 권장할 만하다.

만일 새로 창업한다면 고가의 커피 전문점보다는 1000원대 저가형 모델로 참여하거나 입구에 들어갈 때 통조림을 골라서 소매가로 사고, 맥주 값만 가게 값으로 지불하는 소위 ‘통조림바’ 같은 비즈니스 모델도 안주 값이 비싸서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서서 먹는 식당’도 같은 맥락인데, 자리를 적게 차지하고 고객 순환을 빨리 해서 저렴한 가격이지만 비슷한 수익을 내는 방법이다. 일찍이 일본에서 시작된 비즈니스 모델인데 실제로 서서 먹게 하는 대신 일반가보다 25% 정도 싸게 팔지만, 월말에 정산해 보면 정상 가격보다 약 10% 정도 더 버는 구조다. 면류(Noodle) 업종에서 적용하면 유용할 것이다.

이러한 저가 전략은 급성장을 하고 있는 항공사의 가격 정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저가항공을 타면 근사한 식사 대신 패스트푸드가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비행기를 타는 것은 목적지를 가기 위한 것이지 식사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본질은 유지하고 다른 서비스를 줄이는 방법이다.

불황기에 유망한 또 다른 사업을 보자. ‘불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 ‘폐업’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폐업과 관련된 사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소규모 철거용역을 들 수 있겠다. 가게나 사무실을 사용하다가 나가려면 입주자가 철거를 해야 하는데 불황이면 폐업하는 곳이 많다 보니 이런 일이 늘어나게 된다.

익히 알려졌지만 간판 가게도 잘되는데, 업종이 바뀌면 간판을 새로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매년 8만개가 창업하니까 결과적으로 8만개의 간판이 새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폐업 대행업도 역시 폐업하는 가게들을 정리해 주는 사업이니까 불황일수록 더 유리한 업종이 되겠다. 여기에 중고 집기나 비품사업으로 보폭을 넓히면 다양한 수익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폐업자들을 위한 O2O 기반의 플랫폼 사업도 공유모델로 개발하면 급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건물주의 경우 공실인 유휴공간을, 점포의 경우 영업이 부진한 시간대에 비어 있는 스페이스를 공유하여 또 다른 수익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모형이다. 국내에서는 사무실 일시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스페이스셰어(Spaceshare.kr)가 있고 일본에서는 샵카운터(Shopcounter.jp)가 가게 공유를 전문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등 공간 마켓플레이스 사업이 세계적으로 바람몰이 중이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이같이 사회적 자본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공유 비즈니스는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다소 엉뚱하지만 불이 나서 버려야 할 상품만을 싸게 가져와서 판매하는 화재상품 매장도 잘된다. 화재 보험에 가입된 가게에서 화재나 물난리가 나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고, 사고 현장의 물건을 위탁 업체에 넘겨 경매에 부치게 되는데 이 물건들을 낙찰받아 파는 매장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불황이 장기화되면 경기가 좋을 때와는 다소 다른 소비 행태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의 사례를 잠시 학습해 보자. ‘전국소비실태조사’를 통해 본 일본의 소비자들은 본격적인 장기불황으로 진입한 94년에 가계소비 총 지출액(100)에서 백화점 이용률이 9.7%였으나. 10년 뒤인 2004년에는 8.1%로 줄었고 같은 기간 일반소매점도 41.6%에서 31.8%로 크게 줄었다.

반면 디스카운트스토어는 3.6%에서 9.8%로, 슈퍼마켓은 29.4%에서 32.8%로 늘어났다. 동 기간에도 큰 변화가 없는 업종은 생활협동조합(5.6%->5.5%)이었다. 1인당 사용금액도 1994년에는 5400엔이었던 디스카운트 스토어 혹은 양판 전문점에서의 지출금액이 2004년에는 약 1만3000엔으로 지출액에 있어서 2배 이상 늘어났다. 여러 각도에서 봐도 일단 비싼 곳보다는 보다 싼 곳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협동조합은 탄탄한 조합원들이 받쳐주고 있어서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됐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무조건 싸게만 팔면 잘될까?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기능과 품질은 유지하되 가격만 낮춰야지, 품질까지 떨어뜨리면 아무리 싸도 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트렌드 용어인 ‘메스티지(Mass-prestige)’로 표현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유니클로, H&M, 자라 같은 SPA 제품들인데 이들 브랜드들은 대부분 저성장기에 크게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PB(Private Brand) 상품도 같은 맥락인데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에서도 PB 상품의 인기가 대단했다. 당시 똑같은 규격, 똑같은 양의 제품 4가지를 구매했을 때 PB 상품을 담은 장바구니가 36% 저렴했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외식업으로 보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저렴한 뷔페와도 맥이 닿아 있지만 일본과 다른 점은 이런 저가 뷔페를 대기업 3사가 장악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리해 보자. 일반적으로 불황일 때는 창업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니 당연한 심리일 수 있겠다. 하지만 밤새 줄기차게 넣고 빼지 않으면 월척을 낚을 수가 없듯이 성장기를 기다렸다가 창업하면 이미 좋은 기회는 날아가 버릴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불황이 장기화될수록 창업해서 큰돈 벌려는 욕심보다는, 사회 참여의 수단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오래 가는 지름길이다. 단지 불황 때문이 아니라 선진사회로 올라갈수록, 경제구조가 안정되어 있어서 무리하면 오히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우리나라 실질소득은 10여년 전부터 계속 낮아지고 있다.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의 경우와 견주어 봐도 앞으로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소비자들도 어쩔 수 없이 싼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좀 더 멀리보고 차분하게 대응해서 가치 창업에 무게중심을 두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