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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의 ABILITY] 영화 속 삶과 현실 속 삶
이은진 VC 경영연구소 교수 및 칼럼니스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6.10.25  07:20:19
   

탯줄이 달린 채 지하철 물품보관소에 버려진 갓난 여자 아이가 있었다. 물품보관소 10번 칸에 버려져 이름이 일영이 된 아이는 노숙자들 속에서 자란다. 어느 날 낯선 이에게 납치되어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팔려간 일영은 거기서 냉혹한 뒷골목의 지배자 엄마를 만난다. 어린 일영이 밤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개를 보고 멈칫거리자, 엄마는 삽날로 개의 목을 찍고 나서 말한다. “왜 안 도와주니? 쓸모없으면 죽여줘야지.”

그날부터 일영은 쓸모 있음을 증명하며 오직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살아간다. 영화 <차이나타운>의 이야기다.

그들이 사는 영화 속 차이나타운에는 사랑이나 자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는 부모도 없고 출생신고도 안 되어 있다. 쓸모 있는 아이들만 자신의 식구로 만들어 차이나타운을 지배한다. 쓸모에 따라 철저하게 버려지고 지워지는 곳이지만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곳밖에는 달리 갈 곳이 없어 그곳의 사람들끼리라도 기대어 살고 싶어서 꾸역꾸역 차이나타운으로 모여든다. 이들은 엄마에게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짓도 망설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쓸모없는 것, 밥값 못 하는 것은 용도 폐기, 죽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쓸모 있음을 증명해내야 살아남는 이 차이나타운의 법칙은 잔혹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엄마가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듯, 현실에서도 조직이 원하는 성과를 내야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직장인들은 성과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일상을 반복하고, 취업 준비생들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취업 현실에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을 모든 이들이 매일 되뇌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증명이 되지 않았을 때 가혹하게 정리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빚을 갚지 못해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파산자는 10만명이며, 40대 중반에 회사에서 내팽겨져 자영업을 선택한 사람 중 70%가 폐업신고를 한다. 불안한 현실을 지탱해줄 사회적 유대감은 OECD 최하위에 속하고, 음주자 비율은 77.5%로 증가했다.

그리고 매일 40명의 사람들이 고달픔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심리사회적 부검 결과에 의하면, 자살자 대부분은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 남에게 부담되는 존재라는 인식으로 깊이 좌절하며 고통스러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점점 스포츠 게임을 닮아가는 듯하다. 우승자만 행복의 축배를 들 뿐, 패배자는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당하고 경기장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니 말이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차이나타운>보다 더 비정한 곳인지 모른다. 아마도 <차이나타운> 시즌 2 정도 되지 않을까? 아프고도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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