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드사들이 비자카드 해외 결제 수수료 인상 후에도 네트워크사의 불합리한 요구를 방지할 뾰족한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네트워크사와 계약을 맺어 특정 업체를 견제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자체 해외 결제망 구축은 실현 가능성이 부족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내 카드사들이 네트워크사에 대한 공동 대응 협의체를 만들어야 된다고 조언했다.

비자카드, 해외결제 수수료 이달부터 인상

비자카드는 최근 국내 카드사들의 해외결제 수수료를 인상했다. 서비스 비용인 해외분담금과 데이터프로세싱 수수료, 해외 매입 수수료(매입사 해당) 등 5개 항목이 지난 1일부터 올랐다. 모두 카드사가 부담하는 수수료다. 카드사들은 비자카드에 월 정산하기 때문에 인상된 수수료는 다음달부터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국내 카드사들은 해외결제 수수료율 인상을 두고 비자카드와 갈등을 빚어왔다. 올해 5월 비자카드가 해외결제 수수료율을 1.0%에서 1.1%로 인상한다는 공문을 보내면서 파열음은 시작했다. 당시 국내 카드사들은 합리적 근거 없이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수수료 인상을 통보했다며 반발했다. 지난달에는 신한, KB국민, 삼성, 현대 등 8개 카드사 부서장과 여신금융협회 관계자가 미국 비자카드 본사를 항의 방문했었다.

지난해 국내 금융소비자의 해외카드이용금액을 살펴보면 비자카드가 55.5%로 독보적이었다. 그 뒤를 마스터카드 33.4%, 아멕스(AMEX) 5% 등이 이었다.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는 비자카드의 무리한 요구를 국내 카드사들은 완강히 거부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국내 카드업계에서는 유니온페이 같은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이외의 네트워크사 점유율을 높여 나가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특정 네트워크사의 독주를 견제하겠다는 전략이다. 유니온페이는 중국 내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한 네트워크사다. 지난해 글로벌 카드 이용금액 분야에서 43%를 차지했다.

KB국민카드는 최근 유니온페이와 손잡고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터치형 퀵패스카드를 출시했다. 퀵패스 카드는 유니온페이가 개발한 비접촉식(Contactless) 결제 서비스를 적용한 상품이다. 근거리무선통신(NFC) 단말기에 터치해 결제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BC카드도 유니온페이의 모바일 결제시스템을 연동한 ‘HCE 퀵패스카드’를 선보였다. 유니온페이는 고객이 부담하는 수수료가 전혀 없어 알뜰한 소비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문제는 네트워크사 다양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이 다른 네트워크사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결제 시스템을 타사의 네트워크 망에 의지하고 있는 까닭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네트워크사가 수수료 인상을 요구할 경우 카드사와 체결한 계약 내용을 중심으로 양사의 협의가 이뤄진다. 협의 과정에서 네트워크망을 대여해주는 네트워크사 측이 칼자루를 쥘 공산이 크다.

‘사면초가’ 국내 카드사, 수동적 태도

자체 해외 결제망을 구축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용과 시간 등의 문제 때문에 개별 카드사가 나서기 힘들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국, 유럽, 중국 등과 달리 내국인 수요가 적은 까닭에 수익성도 불투명하다. 범용성 차원에서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등 기존 네트워크사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작년 기준 비자카드는 200개국 이상 약 3960만 가맹점에서 사용 가능하다. 마스터카드 역시 210개국 이상 약 3960만 가맹정에서 통용되고 있다.

▲ 출처=여신금융연구소

사면초가에 놓인 국내 카드사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카드사 한 관계자는 “만약에라는 논리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비자카드에 이어 다른 네트워크사들도 수수료 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며 “다수의 경쟁사가 있는 까닭에 보이지 않는 손 같은 시장 원리가 균형을 맞춰줄 것”이라고 낙관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카드사들이 공동 대응 시스템을 갖춰야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해외 결제 수수료는) 개별 카드사가 나서기 쉽지 않은 문제”라면서도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전체 카드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카드사 별로 네트워크사와 계약을 맺고 있어 협의에 나설 때 힘이 분산된다”며 “이번 비자카드 사태처럼 사건이 터졌을 때가 아니라 (네트워크사와) 계약 체결 단계부터 여러 회사가 협력하면 한층 유리한 위치에서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