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을 통해 유럽중앙은행(ECB)의 테이퍼링 소식이 들렸다. 물론 이는 ‘가능성’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ECB의 테이퍼링은 시기상조며 오히려 내년 3월까지 예정된 자산매입 만기가 9월까지 연장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ECB가 테이퍼링을 단행할 수 없는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물가 수준을 고려한 통화정책의 방향을 예상하는 것은 틀렸을지 모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기부양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는 여전히 비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산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균형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며 “2008년 금융위기 전 나타났던 레버리지 확대나 만기 확장 등의 신호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자산의 버블 가능성을 우려할 시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주가수익비율(PER, 12M fwd)은 약 17배이다. 지난 200년대 초반 IT 버블 당시는 24배, 2007년 고점에서 16배였던 것을 감안하면 옐런 의장의 발언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고 증시가 현 수준에 머무른다면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균형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격이다.

SK증권에 따르면 1880~1990년, 미국 증시의 밸류에이션(CAPE, Cyclically Adjusted P/E

Ratio)은 5~25배 사이의 박스권에서 머물렀다. 한편 1990년대 말부터 밸류에이션은 20~40배로 상향 조정된다.

따라서 현재 밸류에이션을 비교할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 여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를 보면 옐런 의장은 밸류에이션 비교 기준을 1990년대 말 이후에 뒀다고 볼 수 있다.

이은택 SK증권 연구원은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자연이자율이 낮아진 것이 금융위기 이후부터가 아니라 1990년대 중반 이후라고 봤다”며 “이는 신흥국의 과잉저축(경상수지 흑자/외환보유고)이 쌓이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신흥국이 본격적으로 외환보유고를 쌓기 시작한 시점은 페소화위기(1994년), 아시아 외환위기(1997년) 이후”라고 설명했다.

화폐시장에도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데 공급은 저축으로부터, 수요는 투자로부터 발생한다. 여기서 돈을 빌리려는 사람과 빌려주려는 사람의 니즈가 만나는 균형점에서 이자율이 결정되는데 이를 자연이자율이라고 부른다. 즉, 저축이 많아질수록 이자율은 낮아지기 때문에 전반적인 밸류에이션 증가가 이뤄지면서 자산버블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옐런 의장이 자산 버블에 대해 부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 이자율과 함께 성장률도 낮아진 만큼 연준의 금리인상이 이를 상회하지 않을 정도라면 현재 세계경제가 우려하는 ‘긴축발작’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다.

 

세계 경제 트렌드는 ‘공급 축소’에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화 유통량을 줄여 그만큼 달러가치를 높이게 된다. 아울러 시장 금리도 상승하게 된다. 교과서적 측면에서 보면 금리의 상승은 자산시장을 끌어내린다. 높아 진 금리부담으로 자산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리가 인상될 때, 자산시장의 하락세를 막기 위해서는 자산의 공급 자체를 줄여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과 중앙은행들은 화폐의 공급을 통해 실물경제의 수요와 공급의 원활히 하고 이를 통해 경기회복을 꾀했다. 그러나 현 세계 경제는 공급과잉이 주도하고 있다. 모든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것은 결국 ‘과잉 공급’이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

동부증권에 따르면 2009~2011년은 대규모 수요 증가와 소규모 공급 증가, 2012~2015년은 수요 정체와 대규모 공급 증가 사이클을 보이고 있는데 올해 들어 약간의 수요 증가와 공급 정체를 보이고 있다.

▲2012~2015년 [출처:동부증권]
▲2016년 [출처:동부증권]

한편, 올해 글로벌 자산시장 성과를 보면 원유·금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들 자산군이 앞서 언급한 수요와 공급 사이클에 반응했고 향후 세계 경제에 공급축소 트렌드가 이어질 경우 이들 자산의 추가적 강세가 예상된다.

하지만 원유와 금의 경우는 각각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투자 시 주의가 요구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 9월 28일, 하루 3324만 배럴의 원유 생산량을 3250만~3300만 배럴로 감산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실질적 감산이라 할 수 없다. OPEC의 총쿼터는 2011년 12월 정례회의 이례 3000만 배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증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년 말 대비 유가가 상승한 것은 디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과도한 하락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OPEC의 감산 결정으로 유가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수요공급 측면에서 가파른 상승을 예상하기 어렵다.

금의 경우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올해 상반기 급등한 이후 최근에는 조정세를 보이고 있다. 금은 수요와 공급에 있어서 공급자 우위의 시장인 만큼 전반적인 공급축소 트렌드에 가장 큰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물론 실물경제가 공급축소로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회복이 본격 가시화될 경우, 위험자산을 선호하기에 금에 대한 수요는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금은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원유보다는 상대적 강세가 예상된다.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기업 실적에도 긍정적이다. 그만큼 주식 자산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연준도 금리수준을 급격히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이자율이 낮아진 상황에서 이를 거스를 만한 명분도 댈 수 없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수요 개선이 관건이라고 하지만 이는 너무 교과서적인 얘기며 이를 통해 현 경제 상황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또 구조조정도 공급축소의 일환이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 경제는 여전히 수요공급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 금리인상과 여타 중앙은행들의 경기부양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이전과의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얘기들은 ‘인플레이션’으로 향한다. 쉽게 말해, 금리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특정 주체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이는 구조조정, 공급축소 트렌드와 맞물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방어자산인 각종 원자재와 주식 등에 대한 관심을 떨치기보다 오히려 이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