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업무 때문에 청계천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사실 자주 마주치는 청계천이기는 하지만 직접 그 아래까지 내려가서 각 구간별로 설명을 들으면서 찬찬히 훑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어를 시작한 시간이 점심시간 조금 지나서이다 보니 무척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산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삼삼오오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개천가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시선을 끈 시민은 혼자서 우두커니 천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눈에 들어온 것은 필자가 언제 저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그것도 도심에서, 즐겼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몇 달 전 덕수궁 근처에서 미팅을 끝내고 혼자서 덕수궁 깊은 뒤쪽 어딘가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나왔던 기억이 났다. 그날도 청계천 투어 때와 같이 바람이 무척 좋아서 이왕 시내까지 나온 길에 덕수궁까지 들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의 필자와 오늘 청계천에 앉아 있는 사람과의 차이는 무척 컸다. 필자는 책을 보고 있었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차이는 무척 크다. 뇌가 의식적인 노동을 하고, 하지 않고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SNS에 올라왔던 사진 하나가 이목을 끈 적이 있었다. 유명 배우가 나타나니 모든 사람들은 사진 찍느라 바쁜데, 사진 속 할머니는 그냥 웃으면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여행지를 가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본다. 좋은 경치가 나타나면 그 경치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모두들 그 앞에서 사진 찍는 데 익숙해졌다. 마치 기록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더구나 요즘은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고 타인이 자신을 봐주기를 기대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이런 행위에 나의 ‘나’는 없다. 남들이 봐주기를 바라는 내가 있을 뿐. 어떻게 보면 기술의 발달이 삶의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이기는 하나 이것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만은 아닌 것 같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게 되었다. 앞으로 가지 못했을 때 자신을 괴롭히고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 역시 많다. 특히 인공지능이다 빅데이터다 사물인터넷이다 해서 세상은 점점 새롭게 변해가는데, 유독 자신만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래서 불안해지기도 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이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처럼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인간의 감정은 물론 기계들 중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아직도 <햄릿> 같은 수백 년 전에 만든 스토리에 울고 웃으며, 그 시대에 유행했던 예술을 아직도 즐기고 있다. 기계는 어떠한가? 백 년 전에 나온 재봉틀이나 솜을 짜는 기계인 베틀 역시 아직도 쓰이고 있다. 아프리카 지방에서 우물은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계 장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심지어 인류는 원자력, 풍력, 태양광등과 함께 오래된 연료인 석탄까지 아직 사용하고 있다. 자전거가 언제 발명되었는지 아는가? 이 자전거가 무인자율자동차 시대에 아직도 매우 유용한 이동 수단이라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물론 소멸해버린 물건들도 많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사라져버린 PDA라든지 삐삐 또는 전화자동응답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 기계들은 사라진 것이라기보다는 그 영역을 스마트폰이 하고 있으니 대체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본질은 남아있지만 그 형태가 변한 것뿐이다.

우리는 요즘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너무 많은 정보들을 대하면서 시대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늘 한 번 보지 못하고 일하는 날도 많다. 이럴 때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쉬어가는 것이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어느 국가는 도심 강변에 푸른색 의자를 가져다 두고 시민들이 그 의자에 앉아서 강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푸른의자’ 캠페인이라고 하는 이 공공 캠페인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오자 그 캠페인을 전국 도시에서 실행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푸른의자가 있는 곳에서 사색을 하고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평안한 심적 상태를 즐기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색과 명상은 업무의 효율성을 올리고 창의력을 증진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는 것이다. 인간은 쉬면서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지와 같은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은 공공에서만 해야 할까? 필자는 공공보다는 생각을 파는 출판사나 언론사 또는 게임이나 스포츠와 같은 시간을 사는 기업에서 진행해도 좋은 코즈(Cause)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처절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모 카드회사의 광고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는 코즈 마케팅을 통해 정신적 방전으로 인해 발생되고 있는 현대인들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브랜드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