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30일 소동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과 유럽 금융전문가 앙투안 드레쉬(Antoine Dresch)가 설립한 Korelya Capital(코렐리아 캐피탈)의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에  출자 기업으로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네이버와 라인이 K-1 펀드에 각각 5000만 유로씩, 총 1억 유로를 출자한다는 계획이다.

플뢰르 펠르랭 대표는 프랑스의 ICT 육성책인 프랜치 테크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197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4년 프랑스로 입양되어 현지에서 자랐으며 고등상업학교와 파리정치학교를 거쳐 중소기업·혁신·디지털 경제부장관, 문화부 장관 등 프랑스 정부 고위직을 역임했다. 지난 8월 공직에서 사임하며 해외 기업의 프랑스 및 EU IT 기업에 대한 투자를 지원하는 회사 설립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K-1 펀드는 유럽의 스타트업을 육성해 아시아 및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이 지점에서 아시아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네이버 및 라인과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네이버와 라인은 이를 바탕으로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다.

펠르랭 대표는 "프랑스 정부에서 일하며 ICT 분야에는 기회의 균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인터넷의 자유화, 민주화가 최고의 가치며 이를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네이버 및 라인과 협력하며 시장과 대중에 대한 접근성, 이에 따른 성공 스토리를 유럽 스타트업에 이식해 성숙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다양한 스타트업을 육성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디지털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구글 타도?
네이버와 펠르랭 대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인연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이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했을 당시 네이버의 김상헌 대표를 만났고, 그 자리에 펠르랭 당시 장관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네이버는  프랑스의 해 행사를 포함해 프랑스의 문화, 라이프 스타일, 경제, 교육, 언어, 관광 등의 다양한 정보를 동영상 서비스 ‘네이버TV캐스트’를 통해 제공하고 ‘네이버뮤직’, ‘N스토어’ 등의 여러 플랫폼들을 통해서도 프랑스 뮤지션과 아티스트, 영화, TV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로 천명한 바 있다.

또 프랑스 스타트업 및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네이버가 운영하는 D2 스타트업 팩토리의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프랑스 내 스타트업 관련 행사 주최 및 멘토링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협력키로 했다. 유럽과 ICT, 그리고 문화적 관점에서의 만남으로 특히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K-1 펀드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 출처=네이버

흥미로운 지점은 펠르랭 대표의 의지다. K-1 펀드 구축을 위해 네이버 및 라인과 협력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설명하며 '거대 단일기업의 폐혜'를 지적해 눈길을 끈다. 펠르랭 대표는 "프랑스 정부에서 일하며 ICT가 향후 국가경제의 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하는 한편 인터넷 영역에서 기회의 균등을 강조했다. 동시에 "인터넷 공간은 오픈된 공간이지만 몇몇 주자들이 독점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기업명은 말하지 않겠지만 유럽의 경우에도 몇몇 다국적 기업들이 버티고 있어 제대로 된 가치창출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결론적으로 인터넷 공간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객체가 활동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 그리고 이를 바꾸기 위해 유럽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으며 그 파트너로 네이버와 라인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구글로 대표되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의 등장에 따라 유럽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 네이버와 라인과 협력해 아시아를 교두보로 삼아 나름의 대항마를 키운다는 쪽으로 해석된다.

펠르랭 대표의 이러한 상황인식은 질의응답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국내에서 지도 반출 및 세금 문제로 논란을 겪고있는 구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일부만 인터넷을 점유하면 곤란하다"며 "기업이 혜택을 누리면서 국가의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지만 이 문제와 별도로 현지의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K-1 펀드의 방향성과 더불어 프랑스 정부에서 일했던 팰르랭 대표의 기본적인 인식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구글로 대표되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과 EU와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양쪽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잊혀질 권리부터 세금 탈루, 개인정보 보호 이슈 등으로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여기에서 EU의 구글에 대한 오래된 불편함을 알아야 한다. 현재 구글은 정보를 다루는 기업의 입장에서 미국정부와 사실상의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정부는 당연한 말이지만 유럽의 각국과 표면적으로 정치적 관점에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유럽도 딱히 거부감이 없다. 물론 독일의 경우 미국의 무차별 정보수집에 반발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는 했으나, 최소한 유럽이 정보의 문제로 미국정부와 심각하게 각을 세우지는 않았다. 일부 파열음은 있지만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정리하자면, 구글은 미국의 정보 파트너며 미국과 유럽은 다른 국가들보다 정보공유 및 통제에 있어 심각한 마찰음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에드워드 스노든과 줄리언 어산지 사태다. 이들은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한다고 폭로하고 자신의 파트너로 영국을 선택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정보패권이 강해질수록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은 위기를 느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었다. 줄리언 어산지는 영국에 들어갔다 부랴부랴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했으며, 에드워드 스노든은 러시아로 망명했다. 스노든을 취재했던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당국으로부터 보복성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의 상대가 구글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정부와 정부의 문제라면 일견 용인될 수 있는 지점도 상대가 구글이라면 유럽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정보 불균형은 협상의 단계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자신을 너무 잘 알고있는 긴장적 동맹관계의 비공식 파트너는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ICT 및 경제적 측면에서 구글 등의 유럽시장 장악력은 지나치게 높다. 구글의 유럽시장 점유율은 90%를 넘기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러한 존재감은 유럽 ICT 및 테크 스타트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핵심적인 요소다. 유럽 현지에 정보전쟁의 차원을 넘어 미래 산업의 핵심인 ICT 존립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이유다.

프랑스가 독일과 협력해 `나는 찾는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콰에로(Quaero)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구글, 야후 등 미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검색엔진 시장에 프랑스와 독일이 대항해야 한다"고 말해 유럽의 자체 검색엔진 개발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시대와 대상만 바꾸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상대로 서구사회가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영국의 처칠 수상 발언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실패했다. 미디어 서비스 및 장비 회사인 톰슨과 프랑스의 국가 과학연구센터(NSRC)가 팀을 이루고 미디어 그룹인 베텔스만을 내세운 독일의 팀이 의욕적으로 힘을 합쳤으나 사실상 지금은 용도폐기된 상태다

이런 관점에서 팰르랭 대표의 기본적인 인식은 설득력을 얻는다. 현재 EU는 지난해 12월 디지털 시장 단일화를 위한 정책을 통과시키며 유럽의 ICT 경쟁력을 통합, 발전시키는 로드맵을 꾸린 바 있다. 큰 들에서 보면 이러한 행보는 ICT 패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확인되며 좁게 보면 K-1 펀드의 행동지침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유럽은 물론 글로벌 포털 점유율을 대부분 가져간 구글이 유일하게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이 한국이며, 이는 네이버가 있기에 가능했다.

▲ 출처=네이버

네이버는 무엇을 얻을까
팰르랭 대표는 구글과 같은 ICT 플랫폼 기업들의 파상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스타트업을 체계적으로 육성시키는 한편, 아시아 및 글로벌 시장의 발판을 마련해 네이버와 라인의 쪽집게 과외를 받으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네이버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해진 의장은 "유럽 시장의 교두보 마련"으로 설명했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성은 말하지 않았으나 일단은 '발판'을 마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현 상황에서 네이버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론임은 분명하다.

▲ 이해진 의장. 출처=이코노믹리뷰

네이버의 라인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파급력을 입증하지 못했고, 이를 만회하고자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글로벌 음원 서비스를 실시할 수 있는 믹스오디오까지 인수했으나 결국 실패했기 때문이다. IPO 정국에서도 애널리스트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라인의 문제가 바로 글로벌 확장성이다. 네이버와 라인은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약점이 바로 글로벌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네이버와 라인은 K-1 펀드를 통해 유럽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한편, 현지를 잘 아는 팰르랭 대표를 얻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까지는 오지 못했으나 이미 스타트를 끊은 만큼 정교한 방법론이 필요한 순간이다. 여기에서 라인에 이어 스노우까지 살아난다면 네이버의 연력 플랫폼 전략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29일 라인이 스노우에 500억 원을 투자해 의결권 25%를 확보한 사례가 더욱 극적인 이유다. 서로 협력하며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네이버는 대단위 플랫폼으로 끊임없이 라인과 스노우같은 선봉장들을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킨다. 그 과정에서 연계 플레이를 구체화시킬 현지 파트너가 필요한 상태다.

네이버가 프랑스를 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지금이 미국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유럽도 세계의 패권을 가졌던 집단이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 문화 권력의 중심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존재감을 가진 대국이다. 유럽시장 진출의 첫 단계로 스타트업을 키워드로 삼아 그들의 콘텐츠를 활용하고, 네이버는 플랫폼적 역할을 수행하며 그들이 원하는 아시아 시장의 발판도 되어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흐르는 콘텐츠는 네이버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태생이 글로벌을 지향한다던 네이버의 전략도 더욱 탄탄해진다. ICT 패권을 가진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경쟁하는 네이버는, 공동의 적을 가진 우군과도 협력하는 것이 유리하다.

▲ 출처=네이버

각자의 노림수가 통할까
코렐리아 캐피탈은 기금의 70%를 스타트업에 투자할 것이며, 현재 직원을 채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은 네이버와 라인만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며 추후 공동의 비전을 가진 다른 사업자와도 협력할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스타트업 육성을 통한 족집게 과외, 재원 및 플랫폼 확보에 따른 아시아 시장 진출이라는 목표를 가진 펠르랭 대표의 노림수와 유럽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네이버의 노림수가 완전히 맞아 떨어질까. 계획으로만 보면 상당히 고무적이다. 냉정하고 기민하게 진영을 편성해 나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협력의 장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만 스타트업을 연결고리로 삼은 지점은 글로벌 ICT 플랫폼 전투에서 너무 지엽적이다. 콘텐츠 및 플랫폼 생태계 구축이 빠르게 필요한 이유다. 게다가 네이버도 국내 스타트업에게는 구글 못지않은 공포의 대상이며, 무엇보다 더 많은 우군의 확보가 필수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은 '구글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의 답이다. 역사가 증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