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C 게임 시장은 ‘롤 천하’였다. 라이엇게임즈의 AOS(적진 점령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롤, LoL)는 게임트릭스가 집계하는 PC방 인기 게임 순위에서 200주 넘게 1위를 지켰다. 점유율이 50%에 달할 정도로 지배적이었다. 다만 ‘오버워치’가 출시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왕좌를 빼앗는 데는 40일가량이 필요할 따름이었다. 또 하나의 외산 게임이 롤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오버워치는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신작이다.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워크래프트 등 슈퍼 IP(지적재산권)를 개발한 게임사다. 오버워치는 블리자드가 무려 18년 만에 창안해낸 IP다. 장르가 독특하다. AOS의 요소를 가미한 FPS(1인칭 슈팅게임)다. 기존 FPS 유저층은 물론 롤 유저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포지셔닝이다. 다만 최근 서버 불안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14주 만에 롤에 다시 왕좌를 내줬다. 그 차이가 아직은 미미한 까닭에 치열한 경합이 예고된다.

▲ 출처=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무너진 토종 FPS 자존심

FPS의 반격이다. 경쟁력 있는 토종 FPS도 분명 존재한다. 넥슨지티의 ‘서든어택’, 드래곤플라이의 ‘스페셜포스’, 레드덕의 ‘아바(AVA) 온라인’ 등이 견고한 유저층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서든어택은 간판 토종 FPS로 불린다. 한때 100주 넘게 PC방 인기 게임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여전히 10위권에 올라 있다. 서든어택은 국내 게임 시장에서 FPS 장르가 먹힌다는 것을 보여줬다.

올해 출시된 서든어택2는 기대에 못 미쳤다. 출시 초반 인기 순위 10위권에 안착하며 출발이 가뿐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 발생했다. 전작의 게임성을 계승하면서도 전반적인 품질을 향상시켰지만 유저의 시선은 차가웠다. ‘선정성 논란’도 치명적이었지만 ‘FPS의 미래’를 제시할 정도의 혁신을 담지 못했다는 점도 패인으로 꼽힌다. 결국 출시 23일 만에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게임 역사에 남을 이례적인 결정이다. 토종 FPS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오버워치를 향해 효과적으로 견제구를 던지지 못하고 국내 FPS 시장 주도권을 내줬다. 국내 FPS 시장은 ‘오버워치 천하’다.

▲ 출처=넥슨

모바일 FPS, 공백을 선점하라

FPS는 ‘둠(Doom)’을 시작으로 구색을 갖춘 이후 최고 인기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PC와 콘솔 플랫폼을 중심으로 인기작이 배출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인기작이 등장하고 있다. ‘퀘이크’, ‘배틀필드’, ‘콜오브듀티’, ‘레인보우식스’ 등 명작 시리즈가 다수 존재한다. 국내 게임사 입장에서도 이 시장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이들은 모바일 퍼스트 기조에 따라 모바일 FPS 시장 공략을 모색 중이다. 탈(脫)RPG 바람이 부는 한편 모바일 FPS가 공백 장르로 주목받으면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넷마블게임즈는 FPS라기보다는 TPS(3인칭 슈팅게임)에 가까운 ‘백발백중’을 출시해 흥행을 거뒀다. 이 장르로는 이례적으로 출시 3일 만에 구글·애플 앱마켓 인기게임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넷마블은 지난 9월 모바일 FPS ‘파이널샷’을 154개국에 동시 출시해 글로벌 모바일 FPS 1인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외에도 웰게임즈의 ‘스페셜솔져’, 게임빌의 ‘애프터펄스’, 네시삼십삼분의 ‘팬텀스트라이크’ 등이 두각을 보인 모바일 FPS·TPS다. 이 장르엔 치명적인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다. 게임 조작 방식이 문제다. FPS에서 삶과 죽음은 대개 마우스 컨트롤로 갈린다.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마우스 없이 FPS를 즐겨야 한다. 세밀하고 신속한 컨트롤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모바일 FPS가 흥행하는 데 있어 조작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TPS(3인칭 슈팅게임)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1인칭 대신 3인칭을 택해 좁은 화면의 답답함을 피하고, 최대한 쉬운 조작 방식을 더해 모바일 FPS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 방법이다. 애프터펄스나 백발백중이 그런 사례다. 다만 ‘진짜 FPS’를 원하며 모바일 TPS를 외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는 결국 ‘익숙함’의 문제다. 게이머들의 모바일 FPS 플레이 경험이 누적되는 가운데 게임사의 경험적 노하우가 더해지면 장르 공백 해소는 시간 문제일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누가 먼저 빈칸을 채우느냐의 문제다.

▲ 출처=넷마블게임즈

FPS는 미래 촉망 장르?

FPS라는 장르엔 미래 가치가 담겨있기도 하다. 게임은 가상현실(VR) 킬러 콘텐츠가 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FPS 장르가 VR 게임으로 개발하기에 적합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VR 기술이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1인칭 몰입형 콘텐츠에 어울린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VR FPS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다.

국내에서는 드래곤플라이가 이에 앞장서고 있다. 앞서 언급한 ‘스페셜포스’를 개발한 회사다. 올해 5월 열린 ‘플레이엑스포’에서 처음으로 모바일 VR FPS ‘스페셜포스 VR’을 공개했다. 실제로 고개를 돌려 적을 조준하고 버튼을 눌러 사격하는 식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올해 중에 출시 예정이다. 한편 FPS와 증강현실(AR)의 결합도 시도되고 있다. 드래곤플라이는 AR FPS ‘스페셜포스 AR’도 개발 중이다. 위치 기반 모바일 AR 게임 ‘포켓몬 GO’가 신드롬을 불러온 시점에 개발 소식을 전했다.

“FPS라는 ‘스페셜포스’의 장르적 특징이 최고의 현실감을 제공해야 하는 AR·VR 플랫폼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것이 강점입니다. 유저들이 스페셜포스 IP를 활용한 AR·VR 게임을 플레이 한다면 스페셜포스에 등장하는 실제 특수부대가 된 듯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인찬 드래곤플라이 AR/VR 팀장의 말이다. 이는 FPS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 중인 게임사에게도 적용될 기회를 암시하는 설명이다. 어느 게임사가 모바일 FPS 장르 공백을 채우는 동시에 VR FPS를 선점해 미래 시장 주도권을 거머쥘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