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주요 의복이 한복이던 시절, 당연히 팬티라는 속옷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 팬티의 역할은 ‘다리속곳’이 담당했다. 옛날 여성들이 격식에 따라 갖춰야 하는 속옷의 가짓수는 매우 많았는데, 헐렁한 반바지 모양의 고쟁이 안에 입는 진짜 속옷이 바로 다리속곳이었다. 가장 안쪽에 입는다고 하여 ‘속속곳’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다리속곳은 속치마가 직접 신체에 닿아서 더러워지는 것을 막고 자주 세탁할 수 있도록 작게 만들어 입었는데 허리띠가 달려 있어 오늘날의 팬티와는 모양이 많이 달랐다. 또한 민감한 곳에 직접 닿기 때문에 계절에 관계없이 흰색 무명이나 베, 모시 등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1920년대부터는 허리띠가 없이 무명으로 만든, 생김새는 조금 비슷해진 짧은 팬티로 대체되기 시작됐다.

그 이후로 90년대까지 꽤 오랜 기간 팬티는 위생을 담당하는 생활필수품 개념의 속옷이었다. 다른 옷은 몰라도 팬티는 꼭 면 100% 원단으로 된 것을 입어야 한다는 고집도 거기에서 나왔다. 여성 팬티를 만드는 원단으로는 주로 면 40수나 60수의 원단이 사용됐다. 숫자가 높을수록 실의 굵기가 얇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40~60수는 티셔츠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면은 땀이나 분비물을 빨리 흡수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신축성이 적다. 그래서 그 당시 팬티는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팬티는 엉덩이 전체를 덮어줘야 하는데 신축성이 적은 면 원단으로만 만들다 보니 생긴 단점이었다. 신축성이 적다 보니 입고 활동하면 팬티가 위로 딸려 올라가는 일도 많았다. 이런 현상을 막고자 팬티를 고정할 수 있도록 허벅지 둘레 부분에는 쫀쫀한 밴드가 사용됐는데 이 때문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별다를 게 없던 여성 팬티에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생긴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이렇게 팬티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다른 아닌 ‘로라이즈 팬츠’의 유행이었다. 허리선이 아래로 한껏 낮아진 로라이즈 팬츠를 입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팬티를 입어야만 했다. 기존처럼 길이가 긴 미디 또는 맥시 팬티를 입거나 앞뒤 높이가 똑같은 팬티를 입으면 로라이즈 팬츠를 입으면 팬티가 허리선 위로 다 드러났다. 그래서 이때부터 팬티의 앞부분을 뒤에 비해 좀 더 짧게 만들기 시작했다.

소재도 바뀌어 면 원단에 신축성이 좋은 스판 소재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축성이 좋은 원단을 사용하면서 팬티를 크게 만들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옆선의 길이도 점차 짧아졌다. 단조로웠던 팬티의 모양이 다양해지면서 남성속옷 같은 모양도 등장했다. 2001년부터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조이지 않는 사각 트렁크 팬티가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는 팬티라인이 화두로 떠올랐다. 다리 부분에 밴드가 삽입되는 기존 팬티는 바지를 입고 허리를 숙이면 엉덩이 부분에 울퉁불퉁한 라인이 그대로 비쳤는데 이것이 일종의 매너 없는 옷차림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 이 팬티라인을 보이지 않도록 고안한 것이 바로 노라인(No-Line) 팬티와 헴(Hem)라인 팬티다. 노라인 팬티는 라인을 없애기 위해 다리둘레 부분에 부드러운 레이스를 사용했다. 또한 헴라인 팬티는 봉제선이 아예 없는 헴원단을 사용해 팬티라인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었다. 노라인 팬티와 헴라인 팬티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2000년대 중반 여성들이 팬티 라인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대중화의 바람을 탔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팬티 가짓수에도 변화가 생겼다. 브래지어와 함께 세트로 구성되는 팬티의 수가 점점 다양해졌다. 초기에는 브래지어 한 매당 한 장의 팬티가 구성됐지만, 갈아입는 주기가 서로 다른 관계로 이후 차차 2매가 세트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디자인에 따라 T팬티나 뒤판이 비치는 레이스로 된 팬티, 기능이 추가된 거들팬티가 세트로 함께 출시되기도 한다.

디자인에도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 각선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의 취향을 반영해 입었을 때 다리의 길이를 길어보이게 하도록 팬티 다리둘레 부분은 좀 더 깊게 파이도록 했다. 신축성이 좋고 닿는 느낌이 부드러운 레이스 원단이 팬티에 적용되면서, 뒤판 전체가 섹시한 레이스 원단으로 된 스타일의 팬티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