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음료 업계에서 가격 낮추기 경쟁이 치열하다.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싸고 양 많은 제품’을 앞세워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홀푸드마켓, 네슬레 등 지속가능경영 대표주자들의 행보는 다르다. 소비자는 물론, 임직원 가족부터 전 세계 아이들까지 건강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남달랐다. 생명에 직결되는 제품군을 취급하는 만큼 어떤 산업군보다 사회적 책임은 중시되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1일 당 섭취량 3.5배 생과일주스

승승장구 중이던 생과일주스 전문점 쥬씨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앞서 식품첨가물(MSG)과 냉동과일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모르쇠로 일관하던 쥬씨는 뒤늦게 홈페이지에 공고문을 내걸고 사실을 인정했다. 단맛을 위해 사용되는 쥬씨믹스라는 첨가물에 MSG가 함유돼 있었다는 것. 더불어 딸기, 블루베리, 망고 등 일부 과일은 생과일인 아닌 냉동과일로 대체되고 있었다. ‘국내 최고 생과일주스’ 브랜드에 생채기가 난 셈이다.

도마 위에 올랐던 생과일주스 전문점은 쥬씨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시내에서 판매되는 생과일주스 19개의 분석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생과일주스 한 잔(442g) 평균 55그램(g)의 당을 포함하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 당 섭취 권고기준(하루 섭취 열량의 10%, 표준 열량 2000칼로리 기준)은 50g. 생과일주스 한 잔이면 하루 권장량을 넘게 된다. 하루 당 섭취 권고기준의 3.5배에 달하는 179g의 당을 함유한 제품도 있었다고 서울시 관계자는 부연했다.

생과일주스의 당 함량이 높은 까닭은 과일 자체에 들어 있는 포도당과 과당 외에도 단맛을 높이려 설탕, 액상과당, 시럽 등을 첨가하기 때문이다. 첨가당을 과다 섭취하게 되면 당 중독과 비만, 성인병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대용량 커피를 놓고도 유사한 논란이 일고 있다. 빽다방, 매머드커피 등 중소 커피 전문점에서 시작된 대용량 커피 열풍은 대기업 커피 전문점과 편의점으로 번지고 있다. 엔제리너스커피는 지난달 1리터(ℓ)짜리 대용량 커피인 ‘메가 아메리카노’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출시 3주 만에 15만잔 이상 팔리며 인기몰이 중이다.

가격 낮추기 경쟁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판매가를 낮출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생두의 대량구매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매할수록 구매 가격은 저렴해진다. 자본력을 갖춘 기업형 프랜차이즈인 까닭에 가능한 방식이다. 대용량 커피 판매점이 새롭게 문을 열면 근처 커피 전문점은 가격하락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는 이유다. 소규모 로스터리 카페가 사라질수록 소비자는 다양한 커피를 맛볼 기회를 잃게 된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가격경쟁력 외에 다른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기업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홀푸드마켓이 대표적이다. 북미 최대 식료품 체인 홀푸드마켓은 유기농 제품을 전문으로 판매한다. 지난해 153억달러(17조1191억원)의 매출과 5억달러(559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포춘>은 매년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분석해 500대 기업 순위를 발표한다. 홀푸드마켓은 이 명단에서 2005년 480위, 2010년 284위, 2015년 214위로 오름세를 보이더니 올해는 181위로 뛰어올랐다.

“기업 존재 가치, 수익이 전부 아니다”

홀푸드마켓은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자연식품에 초점을 맞춘다. 지역농산물을 유통하고 지역사회 장애인과 노인을 매장 직원으로 고용한다. 직원과 지역사회 구성원의 만족도를 함께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기업도 이익이 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듯, 기업도 이익을 내기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게 홀푸드마켓의 기업 정신이다.

네슬레는 유아식부터 커피까지 폭넓은 식품군을 취급한다. 그러나 식음료 회사로 불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영양, 건강, 웰니스를 중시하는 기업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웰니스(Wellness)는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다. 신체·정신·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지칭한다. 정체성이 달라지면서 추구하는 목표도 수정됐다. 상품의 판매고 증진만큼 소비자들의 영양과 보건도 네슬레에게 중요한 과제다.

2016년 현재 미국, 멕시코, 중국, 러시아 등 10개국을 대상으로 아이들의 영양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는 연령별 두 가지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다. FITS(The Feeding Infants and Toddlers Study)는 신생아부터 4세까지 영유아들의 식습관과 영양섭취량을 알아본다. KNHS(Kids Nutrition and Health Study)는 4세부터 12세까지 어린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식사와 행동습관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후진국 커피 생산 농가에 농업 기술 교육을 제공한다. 농업 시설과 기술, 유통 채널, 금융 서비스 등에 현지 농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클러스터를 구성하고 있다. 지난 2015년 기준 커피농가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네슬레는 22만5600톤(t)의 생두를 구매했다. 낙후된 농가를 지원하는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생두 공급원을 확보한 셈이다.

식음료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지 모든 산업군에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우리나라도 값싸고 양 많은 것을 추구하는 회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전히 그런 부분이 큰 것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며 “(고객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어렵고 힘들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과 소비자에게) 더 옳은 가치 제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훈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양 많고 값싼 식품은 주로 지나가는 손님 뜨내기 손님을 상대할 때 적합하다”며 “길게 보고 단골 위주의 경영에서는 당연히 가격과 건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0·20년 길게 보는 기업들이 취하는 전략은 지속가능경영 패러다임과 상통한다”며 “단기적으로 서두르는 기업에게는 애당초 지속가능경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