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국제광고제에서 애드텍(Ad:tech) 행사가 열렸다. 크리에이티비티와 관련된 광고제에 테크(Tech)가 주제인 애드텍이라니. 시대상을 말해주는 매우 오묘한 조합이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 필자는 트랜스 오버(Trans Over)라는 주제로 애드텍 세션에서 발제한 슬라이드의 첫 장을 ‘기술의 시대에 생각을 이야기하다’로 하면서 표지 그림은 공룡으로 했다. 맞다. 멸종된 그 공룡이다. 왜냐하면 세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서였다. 테크 행사에서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솔직히 필자도 공룡처럼 멸종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해를 청중에게 구하고 싶어서 그랬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테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기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술은 사람들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줄 때 빛이 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생각이 없으면 문제도 없고, 문제가 없으면 그것을 해결해줄 기술도 없다. 생각을 통해서 나오는 문제에서 출발하지 않은 기술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지난 이십 몇 년 동안의 광고 인생 중 디지털 광고마케팅 본부를 두 번이나 셋업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안다. 디지털이나 테크의 중요성에 대해서. 하지만 광고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일은 생각을 만드는 일이다. 브랜드 연상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관리자가 원하는 연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브랜드 콘셉트라는 큰 우산을 중심으로, 브랜드와 소비자가 만나는 수많은 접점에서 올라오는 메시지들이 효율적으로 관리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특정 브랜드에 대한 브랜드 메시지는 광고, 구매 경험, 친구와의 대화, 영화 속의 한 장면, 직원의 태도, 포장지 등에 의해서도 형성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많은 접점에서 올라오는 메시지들을, 소비자들이 혼란스러워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통합적인 이미지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들이 수많은 연상들을 가지고 있지만 한두 개의 핵심 이미지로 소비자들의 심상에 떠오르는 것이다. 풀무원하면 여러분은 어떤 연상이 떠오르는가?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등장할 수 있다. 브랜드 콘셉트라는 메시지의 깊이(Depth)다. 다매체 시대에 개별접점에서 올라오는 약간 다른 다양한 메시지들을 하나의 큰 의미로 포괄할 수 있어야 소비자들에게 빅 픽쳐 즉 통합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을 텐데, 기존의 기능적, 감성적 혜택에서 출발한 브랜드 콘셉트로서는 접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메시지들을 포괄해서 하나의 통합적인 이미지로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괄적이면서 확장성이 큰 언어, 통합적인 이미지 구축이 용이한 언어가 지금의 브랜드 콘셉트 자리를 대신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격 조건을 가진 언어를 필자는 ‘브랜드 정체성 아이디어’라고 부른다.

브랜드 정체성 아이디어란 브랜드가 추구하는 삶으로서의 철학, 의미를 메시지화한 것이다. 예를 들면 파타고니아가 이야기하는 환경, 나이키가 이야기하는 스포츠 그 자체, 도브의 아름다움, 하이네켄의 음악이 그것이다. 브랜드의 속성이나 소비자 혜택으로 하는 차별화가 아니라, 브랜드 자신만의 이야기를 소비자가 아닌 생활자의 삶에 녹여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런 전략이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브랜드의 생각과 철학이 정립되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

2013년 덴츠(Dentsu)는 메시지의 기능적, 감성적 혜택과 더불어 사회적 혜택이 브랜드 제공 가치의 또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티클을 발표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전략적 전환이 필요한 이유가 지금은 발명의 시대가 아니라 기존의 지식을 연결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혁신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브랜드 역시 기존의 소비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생활자의 삶이라는 차원으로의 발상 전환을 해야만 하는 것이며, 그 차원에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메시지가 브랜드 통합 이미지 구축에 유리한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이 사회의 작은 문제를 파악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공유할 때 사람들이 그 기업에게 반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브랜드가 생존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브랜드도 생존을 위해서 소비가 아닌 가치를 담을 수 있는 브랜드 정체성 메시지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욕망의 시대를 보완하는 장치로서의 가치가 메시지로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