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우(煙雨)

 

수묵화, 즉 먹그림은 단숨에 붓을 사용해 완성하는 그림이다. 따라서 수묵화는 노련한 단련이 필요하고 정신세계의 명캐함, 직관성이 요구됨에 따라 일회성, 곧 일획화(一劃畵)를 중시했다.

사의(寫意)정신이 화가가 대상의 성질과 뜻을 받아들인 후 자신의 마음에 비친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 때, 본질을 찾는 선(禪)과는 그래서 많은 부분 서로 일치 한다.

고도의 정신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사의정신이 근본적으로 깨달음을 선결조건으로 하는 까닭은 ‘마음의 경치’, 곧 주관적인 심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아산이 묵산수 후기로 갈수록 “산의 정상에 오르면 내려가야 한다.”고 자주 말한 까닭은 노자에 나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주 교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아니하므로 언뜻 보기에는 서투른 것 같다는, ‘무기교적 기교’의 세계다.

 

▲ 추강(秋江)

 

투박한 듯 한 서투름 속에 스며 있는 더 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다. 사의정신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아산은 붓을 잡은 이후 ‘졸중현교(拙中見巧)’, 교졸합일(巧拙合一)을 향한 굳은 의지를 한시도 마음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참으로 피나는 공부와 인내, 담으로 점철된 먹그림과의 씨름이었다.

아산은 수묵화, 먹그림 세계로 빠져 들면서 ‘남화-남종선’,‘남화-노장사상’ 관계 탐구와 함께 ‘먹색(墨色)-남종선’, ‘먹색-노장사상’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했다.

아산에게 있어서 단순히 재료로서의 먹이 아니다. 노장사상, 남종선 사상을 나타내는 정신세계를 채색이 아닌 먹색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 추산(秋山)

 

먹을 현덕(玄德)이라고 한 것은 먹이 이미 재료가 아님을 의미한다. 발묵(潑墨 먹 번짐), 선염(渲染 엷은 먹) 등을 통해 사상을 풀어내는, 정신세계를 응축해내는 표현의 수단이 되지만 어느덧 사의(寫意) 그 자체가 된다.

하늘의 색인 먹색, 곧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하늘을 나타내는 현(玄)은 그 속에 철리(哲理)를 담고 있다. 그것은 하늘이 온 세상만물을 창조하고도 그 큰 덕을 감춘다는 겸손이 이 현 속에 담겨 있다.

곧 큰 덕을 감췄다고 해서 현은 대덕이라고 예부터 불렀다. 이 현의 색깔이 무언고하니 먹 색깔과 같은 검은색에 적(赤)을 합한 것과 같다. 먹을 다른 말로 현덕(玄德)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에 그 연유가 있다.

 

▲ 추일(秋日)

 

먹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현덕이라고 불리는 먹의 세계와 노장사상이 추구하는 세계가 서로 교호(交互)하고 맞닿는, 당기고 풀고 구현하는, 오묘한 접점의 세계를 절절하게 체감한 아산은 그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먹의 세계는 곧 하늘이다. 천심인 거지. 노장사상을 알아야 먹그림이 보인다.” 아산의 수묵산수화는 이러한 바탕아래서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2000년대로 넘어 갈수록 숭천(崇天)사상으로까지 정신세계가 확장돼 그림 속에 나타난다.

미술평론가 장석원이 1995년 아산을 만났을 때 “산수는 숭천”이라고 할 만큼 수묵산수를 숭 천사상 안에서 ‘천-지-인’의 조화로 보았다.

노자의 도의 세계, 불교 선의 해탈은 모두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참모습 ‘길’을 찾는 것으로서, 아산은 깨달음 뒤에 오는 그 ‘길’은 곧, 하늘에 순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글=손정연(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