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촌(江村)

 

- 전문 -

남종문인화 거장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1926~2014) 선생의 작품과 평생 수집한 소장품은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도립 전라남도옥과미술관’에 보존, 전시되고 있다. 올해 개관20주년을 맞아 아산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고자 기획하게 되었다. ①~⑤회까지 모든 글은 지난 2012년 (재)아산미술문화재단이 펴낸 <雅山 趙邦元-이 시대 마지막 남종화의 대가, 글 손정연, 문순태, 최하림> 평전에 실린 글을 발췌 정리했다. 각 회마다 글쓴이를 밝혔고 특히 ②회 경우는 언론을 통해 보도된 글을 옮겨 왔다. 도립 전라남도옥과미술관(관장, 조암), (재)아산미술문화재단(이사장, 김상기)의 흔쾌한 자료제공에 감사드린다.  

 

▲ 귀로(歸路)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은 아산에게도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 이었다. 몇 날을 고민하던 아산은 그림에대한 회귀적인 본능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군청 인근에 있던 남농 집을 찾았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였다.

남농은 이때 <금강산 보덕굴>, 1944년 마지막 선전에서 특선한 목포일우(木浦一隅) 등에서 보였던 문전풍의 스타일에서 문기(文氣)를 가미한 신(新)문인화풍으로 변환을 시도하고 있을 때 였다. 전통 남종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신신(新)남화 화풍이다. 남농의 이러한 현대적 감각의 화풍는 아산이 보기에 당대 독보적이었다.

아산은 남농을 찾은 후 다니던 무안군청도 그만 두었다. 그림에만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예술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스승 남농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처음 대했을 때, 아산이 받은 감동은 매우 컸다. 속도감 있게 화선지를 장악해 나가는 운필을 보면서 마음으로부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것이 재능이로구나!” 탄성이 절로 났다. 남농의 북교동 화실은 제자들에게 스승의 화풍을 따르라는 엄격함이 없는 곳이었다. 그 스스로 개방적인 화풍을 추구해 왔던 경험의 배경에서, 작가란 개성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자기 그림을 그리라고 자주 얘기했다.

남농 화실을 찾을 무렵 아산은 이미 스스로 붓의 운필이랄지, 선(線)이 주는 맛 등에 묘미를 느끼고 있을 때였다. 책을 늘 가까인 한 그는 일본으로 가는 화물선에 부탁, 필요한 책들을 주문해 보기도 했다. 화론(畫論)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 도강(渡江)

 

아산은 뒷날 자신이 쓴(1992년 전남일보) 「나의 삶, 나의 예술」이란 글에서 당시 치열하게 공부하던 남농 화실시절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나의 작품세계에 남농 선생의 영향은 크다. 그러나 독특한 나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했다. 나는 수묵화의 본질, 가치를 터득하려고 무척 애를 썼고,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가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 헤맸었다. 남종화, 북종화를 공부하면서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으며 그림과 불교와는 뗄 수 없는 관계를 지우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스승 남농은 운림산방(雲林山房) 3대째 주인이었다. 남농 이후로 2대가 더 화업을 이어가고 있으니, 운림산방 5대는 세계미술사에서도 없는 일이다.

“진도 양천(陽川) 허씨(許氏)들은 빗자락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란 말은 그래서 나온 비유다. 소치 허련으로부터 시작된 운림산방은 미산-남농/임인-임전(林田) 허문(許文)-허진(許塡)으로 이어지고 있다.

 

▲ 춘일(春日)

 

아산은 한창 20대로서 기세 높았던 이때, 운림산방 미(美)의 세계를 접하면서 어느 날 호남남종화의 종주라고 할 소치 그림을 보고선 “저런 정도면 10년만 공부하면 능가할 수 있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수묵의 세계에서 일가를 이루고 깊이를 더한 고희(古稀) 무렵, 남종화의 심의(心意)세계를 얘기하면서 아산은 소치에 대해 “붓을 대고 떼는 것이 강철 같다.”고 칭송했다. 참된 이룸의 세계는 근본과 원리를 꿰뚫어 보게 되고, 그 꿰뚫음의 안목 속에서 스스로 비워지고, 낮아지게 된다.

“젊은 시절, 쉰에 그린 소치의 그림을 보고 내 나이 서른이면 저 정도 그리겠지 했는데 지금에와 소치 그림을 보면 한 이백년은 더 지나야 비슷하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구도가 아니라 깊은 안목과 지식에서 나온 필력이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산은 ‘내 마음과 세상 물상(物象)의 만남’-의경(意境)을 얘기한 것이었다. 소치의 매화도에서 툭툭 불거진 매화 모양은 실제 그대로가 아닌, 매화를 바라보는 소치의 마음이고, 소치는 매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자기마음을 그렸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남종화의 사의(寫意)세계이다.

△글=손정연(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