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연초가 되면 어김없이 경제전문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타이틀이 있다. 바로 ‘맨션관리회사 랭킹’이다. 1986년 창간한 <맨션관리신문>에서는 매년 5월 맨션관리회사 관리호수를 기준으로 1위부터 50위까지의 순위를 발표한다. 이 발표 자료를 가지고 각 매체에서는 나름대로의 분석으로 순위를 재편성한다.

분석 자료도 다양하다. 매출액, 경상이익은 기본이고 관리 계약의 해약률, 현장담당직원 1인당 평균 담당 단지, 국가 자격(관리업무 주임자) 소지자 비율, 연수시설의 확보 여부, 심지어는 정직원 비율이나 관리비 미수금에 대한 대응기간까지 꼼꼼하게 따진다. 물론 정보에는 관리 실적이 좋은 관리회사가 반드시 좋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의 환기도 담겨 있다. 이런 종류의 정보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지불하는 관리비에 상응하는 관리가 가능한 업체를 찾기 위한 관심.

이전 기고에서 일본에서 맨션 관리는 전적으로 구분소유자로 구성된 관리조합의 몫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규약에 따라 관리에 필요한 사안들을 결정하면 관리조합은 유지보수 업자를 선정하고 이에 필요한 관리 사무를 실시한다. 이런 전제하에서 의결 사항들을 직접 할지 위탁 할지를 결정한다.

관리의 수준은 자치관리의 경우 조합의 역량, 위탁관리의 경우 조합의 역량과 더불어 관리회사의 역량과 맞물린다. 위탁관리의 비율이 높으니 관리회사의 평가, 랭킹에 필연적으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다양한 시각에서 관리회사를 평가한 자료를 소비자가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일본의 맨션관리회사는 디벨로퍼계(系)와 독립계로 구분한다. 디벨로퍼계 맨션관리회사는 맨션을 개발해 분양하는 대규모 디벨로퍼의 계열회사라는 의미이고, 독립계는 디벨로퍼와 전혀 관련이 없는 회사이다. 독립계나 디벨로퍼계의 여부가 평가를 좌우하지는 않지만 디벨로퍼계 관리회사의 경우 개발, 시공, 관리의 연계성이 있고 인적 자원의 확보나 연구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브랜드 가치를 신뢰하는 것이다.

한때 관리회사에서 관리업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은 관리조합이 속출해서 맨션관리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 사례로 관리회사 대표가 구분소유자 전원에게 보낸 문서를 보면, 이 회사는 1987년부터 해당 맨션의 관리의 위탁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2003년에 관리위탁계약 해약을 요청했다. 계약 해지의 주된 이유는 관리조합을 설립해 수선충당금을 확보하고 건물의 수선유지를 적절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이다. 관리조합 운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위탁관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을’의 입장인 관리회사에서 이런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15년 이상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던 단지의 관리를 중단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어떤 고민들이 있었을까. 관리비를 올리려는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전문가의 견지에서 문제가 있는 맨션의 관리를 중단하려는 맨션 관리의 ‘닥터 스톱(Doctor Stop)’인 셈으로 시사한 바가 크다.

관리업무의 위탁과 관련해서 그동안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는 없었다. 부동산 산업이 발달하고 계열회사가 관리까지 맡아 하는 경우가 많아 맨션 관리 산업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2000년 맨션관리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정비를 실시하면서 관리조합에서 위탁관리를 실시할 때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관리업 등록제도와 전문자격자에 의한 중요사항 설명의무가 추가되었다.

 

그 후 2005년 국토교통성에서는 <맨션관리표준지침>을 통해 관리조합의 운영, 관리규약의 작성 및 개정, 회계, 건물 및 설비의 유지관리 등 4가지 카테고리에 대해서 관리조합이 해야 할 ‘표준적인 대응’과 ‘바람직한 대응’을 제시한다.

이와 더불어 관리조합에서 수행해야 할 상기 내용들을 위탁하고자 할 때의 대응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관리회사가 등록업자인지, 위탁계약 시 중요한 설명을 서면교부 받았는지, 관리업무에 따른 비용의 근거가 명확한지, 비밀 보장, 계약 갱신, 해지에 대한 규정이 있는지 보관 및 열람 가능한 상태인지, 관리업무의 보고, 정기적인 회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지 관리조합으로서 체크할 내용이다.

관리업무를 위탁하고자 할 때 ‘맨션표준관리위탁계약서’를 활용하고, 위탁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관리회사에게 ‘중요사항 설명’ 의무가 주어진다.

‘맨션표준관리위탁계약서’에서 제시하는 업무는 기간사무(회계, 유지관리의 기획 및 실시의 조정 등)와 그 외 관리사무(상주 관리원, 청소, 설비관리 등)로 나누고 있다. 이 업무 중 전부 혹은 일부에 대해 위탁할 수 있고 위탁업무의 범위와 내용에 따라서 ‘위탁업무비’가 책정된다. 특히 맨션표준관리위탁계약서 제6조에는 관리사무에 소요되는 비용 부담 및 지불 방법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비용은 업무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업의 이윤을 포함한 ‘정액위탁업무비’로 지불하도록 못박고 있다. 관리업무를 종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책임과 대가가 주어진다. 그러다 보니 상당한 비용이 관리회사에 지불되기에 소비자의 선택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고, 관리회사는 신뢰 형성과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쌓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중요사항 설명’ 의무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중개물건에 대해서 계약당사자가 중요하게 확인해야 할 사항을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관리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국가자격 관리업무 주임자 소지자에 의해 반드시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 자격자의 책임이 막중하기에 계약서는 관리회사 대표자와 관리업무주임자의 연명으로 날인된다.

이러한 절차들은 소비자(갑)나 관리회사(을) 어느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조건 제시가 아니라 위탁업무의 범위와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데에 상호 합의하는 의미를 가진다. 약 20페이지 정도 되는 표준관리위탁계약서에 비해 우리나라의 표준적인 위수탁관리계약서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계약서의 골자는 ‘공동주택관리법’에 정해져 있는 관리 주체의 업무 내용이 즉 위탁관리의 업무 범위이고 계약당사자 상호 간에 결정할 사항은 단지 ‘위탁관리수수료’와 ‘계약기간’에 불과하다. 관리업체의 선정도 서비스 내용도 관리에 소요되는 비용도 아닌 위탁관리수수료에 의해 좌우된다. 이마저도 표준관리규약준칙의 별첨서식에 자리한다. 서비스를 제공할 주체가 업무의 범위와 비용을 제안해 계약내용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지 관리규약의 내용 중 일부에 불과하다니. 계약당사자에게 납득 가능한 위수탁관리계약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는 정책입안자가 위탁관리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공동주택관리 현장에서 전문관리회사에서 제공하는 업무의 수준까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물리적 조건을 가진 공동주택의 관리현장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고 있는 거주자의 관리욕구를 충족할 필요가 있기에 관리업무는 ‘맞춤형 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획일화된 관리행정의 강제성 때문에 관리회사에서 양질의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 보인다. 관리업의 성장은 고사하고 위탁관리 무용론까지 대두되어 흐름에 역행하는 듯하다.

국민의 대다수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우리 사회에서 위탁관리가 반드시 필요한가? 우리나라 주택관리 시장에서 주택관리업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지금의 제도 하에서 주택관리업이 산업으로 성장해 높아가는 소비자의 관리 서비스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 주택관리업자의 변화에 대한 준비와 더불어 입주자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드물지만 회사로 민원을 제기하러 오는 입주자들을 목격한다. 대부분 주민 조직 운영상의 문제에 대한 불만 제기이다. 입주자들은 관리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길 원할까.

본질에 충실한 위탁관리문화 형성을 위해 관리 제도의 퍼즐을 다시 맞추어야 할 듯하다. 주택관리업이 제 기능을 하도록 ‘정상화’ 작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