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장애’라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던 KB금융이 달라졌다. 특히 현대증권 잔여 지분 인수를 위해 주식교환을 결의한 것은 빠른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편, 고가인수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배경에는 초대형 IB(투자은행) 육성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KB금융이 ‘리딩뱅크’의 위상을 되찾을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KB금융그룹은 8월 2일 이사회를 열고 현대증권과의 주식교환 및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방안을 결의했다. 시장에서는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합병이 선행되고 최종적으로 현대증권 잔여 지분을 KB금융이 인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KB금융과 현대증권 잔여 지분 70.38%에 대해 1대 0.191의 비율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현대증권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합병 반대 시 주식을 매수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가 없다고 가정할 경우 KB금융이 발행할 신주는 3176만주로 8.2%에 해당된다. 하지만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은 2일 종가기준 매입가능 주식수로 3.7%에 해당되며 이는 합병에 따른 희석효과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이병건 동부증권 연구원은 “KB금융의 주당순자산비율(PBR)이 1배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주를 발행한다는 것은 부담”이라면서도 “현대증권 PBR도 낮아 KB금융이 1조원 내외의 염가매수차익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염가매수차익이란 인수회사가 피인수회사를 공정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인수할 때 발생하는 회계장부상 가상의 이익을 말한다.

지난 3일 기준 현대증권의 PBR은 0.46배 수준이었다. 현대증권의 올해 1분기 기준 자기자본은 3200억원을 넘어섰지만 주가는 이를 절반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KB금융이 이번 주식교환을 통해 현대증권 인수가격 1조2000억원을 제외한 2조원의 현대증권 자산을 절반 가격인 1조원에 인수하게 돼 염가매수차익은 1조원 내외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단순 주식교환은 위험자산의 증가로 KB금융의 보통주자본비율을 낮출 수 있으나 염가매수차익이 발생할 경우 오히려 개선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KB금융, 달라진 의사결정… 몇 수를 내다봤나

KB금융은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인수전에서 경쟁사였던 미래에셋증권(2조4000억원 제시), 한국투자증권(2조2000억원)보다 낮은 2조500억원을 써내 가장 덩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 국내 금융업의 성장동력 부재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상황에서 KB금융은 대우증권 인수에 과감히 배팅을 하지 못했고 결국 미래에셋증권에 대우증권을 넘겨줬다.

물론 과감하게 대우증권을 인수를 하지 못했던 것은 고가인수 등의 논란과 ‘승자의 저주’라는 망령이 쫓아올 것에 대한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저금리기조가 이어지면서 대출확대는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은행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KB금융의 입장에서는 분명 승부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또 은행업은 정부의 규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점에서 ‘관치 금융’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고 시장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대우증권 인수는 수익을 넘어선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인수 여부를 떠나 인수전에 참여하는 자체만으로도 KB금융은 질타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가인수, 승자의 저주 VS 의지 결여’의 구도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이면 성공, 실패하면 실패에 따른 질타가 이어질 것은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KB금융이 주식교환 방식을 통해 현대증권을 인수하는 것은 단순 염가매수차익과 보통주자본비율 개선뿐만 아니라 또 다른 긍정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KB금융은 현재 자사주 2.46%를 보유하고 있다. 5000억원의 자사주 매입이 완료되면 총 자사주는 6.2%대로 상승한다. 자사주는 KB손보나 KB캐피탈 등의 완전자회사를 위한 주식교환 등에 활용할 수 있어 KB금융 주주가치 제고에 유용한 옵션이 된다.

또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 선합병을 통해 지분율을 높인 후 주식교환 방식을 택할 경우, 현대증권 주주들이 비상장사(KB투자증권)와의 합병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원리에 따라 투명한 방법으로 주식교환을 하고 100% 자회사화하겠다는 것을 공표하면서 합병을 순탄하게 이어가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KB금융의 현대증권의 최종인수까지는 금융위원회의 승인, 현대증권 주주총회 통과, KB금융 주주의 반대의사 표시 비중 20% 하회, 현대증권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지급할 매수대금이 7700억원 미만 등이 해결돼야 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KB금융이 주식교환 방식은 이 모든 문제들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KB금융 입장에서 자기자본 4조원대의 초대형 IB 라이선스 획득을 위해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증권이 KB금융에 편입된 이후에는 KB투자증권과의 합병이 빠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사업 영역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합병 시너지를 창출해 궁극적으로 KB금융의 가치를 높이게 될 전망이다.

결국 KB금융의 현대증권과의 주식교환 결정은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협화음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빠른 합병 진행과 함께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리딩뱅크 탈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주력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은 2001년 주택은행과 합병 후 ‘국민’은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리딩뱅크로 도약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한은행에 그 자리를 내줬으며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

윤 회장은 2014년 11월 취임해 지난해까지 KB금융그룹 지배구조 안정과 조직을 추스르는 역할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손해보험사 인수, 나라사랑 카드 사업자 선정 등 성과를 거뒀으며 비대면 채널을 총괄할 별도조직으로 KB금융지주에 미래금융부를, 은행 내엔 미래채널그룹을 각각 신설했다. 이뿐만 아니라 KB국민은행은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카카오뱅크가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취득함에 따라 향후 인터넷전문은행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에 있어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초대형 IB’로의 발전 가능성 부재였다. 그러나 현대증권 인수로 KB금융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KB금융이 현대증권 인수가격을 발표했을 당시, 역시나 ‘고가인수’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KB금융과 현대증권의 주식교환방식은 이러한 논란을 일부 해소함은 물론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분명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다. 몇 수를 내다본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KB금융은 ‘리딩뱅크’라는 이름에 이미 성큼 다가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