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소년 아톰>은 1952년부터 일본 <소년>에 연재된 만화의 주인공이다. 작가 데즈카 오사무는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21세기를 무대로 로봇소년 ‘아톰’의 활약상을 만화로 그렸다. 이 만화는 1963년부터 3년 동안 후지 텔레비전에서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방영하면서 평균 시청률이 30%를 웃돌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만화 주인공이 인기를 끈 이유는 로봇을 통해 인간이 해보고 싶은 다양한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대리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로봇은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화신이며 외계인의 침공을 막아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로봇은 인간을 대신하여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로켓 폭탄을 발사하여 적을 물리친다. 무기의 종류도 강력한 주먹, 레이저 총, 미사일 등 다양했다. 이처럼 사람을 닮은 로봇이 미래의 과학기술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그래서 일본 과학자들은 일찍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열성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혼다자동차가 개발한 ‘아시모’ 로봇이다. 아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약 2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인간형 로봇이다. 하지만 아톰처럼 인간이 하지 못하는 동작과 능력을 갖춘 로봇이 아닌, 사람 흉내를 내는 로봇에 머물고 말았다.

혼다자동차는 1986년부터 로봇 개발에 착수하여 10개의 실험모델을 거쳐 2000년에 드디어 첨단 2족 보행로봇 ‘아시모’를 탄생시켰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지능을 강화시키는 연구를 거듭하여 2011년엔 자율로봇으로 완성시켰다. 키가 130㎝이고 무게가 48㎏ 그리고 이동 속도가 시간당 9㎞이니 거의 사람과 같은 능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었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춤도 추고 공도 차며 점프는 물론 달리기가 가능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바이올린을 켜는 묘기도 보여줬다. 하지만 이렇게 다재다능했던 ‘아시모’가 사람을 대신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 들어갈 실력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로봇기술을 보유했다고 자부하던 일본 국민들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결국 미국 아이로봇의 팩봇(PackBot)과 워리어(Warrior)가 원전 사고현장에 투입되는 수모를 겪었다.

로봇을 제대로 사용하는 곳은 산업현장이다. 공간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다관절 로봇 팔에 장비나 공구를 들고 다양한 작업을 해내는 묘기를 부린다. 산업 로봇은 인간이 가진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로봇은 미리 입력된 작업 순서에 따라서 중량물(예 200㎏)을 옮기거나 고속(수백회/초)으로 정밀한(수 마이크로미터) 부품들을 결합하는 작업들을 처리한다. 물론 사람의 신체 능력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다. 최근에는 작업 순서를 프로그램으로 입력하는 대신 로봇팔을 직접 사람이 손으로 끌어다가 공간 위치나 작업방법을 지정해주는 로봇도 등장했다. 로봇이 작업을 반복할수록 차츰 팔 동작을 직각운동에서 최단거리 곡선운동으로 작업방식을 스스로 학습해서 개선하는 자율학습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던 로봇이 작업자와 협업하는 코봇(CoBot)으로 발전하면서 사람 모습처럼 머리 형태를 갖고 양팔을 사용하는 로봇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을 의인화해 좀 더 지능로봇 같아 보이도록 하려는 로봇 제작회사의 디자인 의도라고 본다.

로봇을 사람 모습처럼 만들어 지능을 갖춘 로봇임을 과시하는 용도로 서비스 로봇이 있다. 행사장 안내를 맡거나 건물 안내를 맡은 서비스 로봇들은 대부분 사람 모습을 하고 있다. 주로 모니터를 가슴에 달고 다니며 방문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맡는다. 사무실이나 행사장 그리고 상점에서 안내원 노릇을 하거나 상품 소개를 하기도 한다. 클라우드 정보를 검색하여 고객의 질문에 대답하는 정도의 대화 기능이 채택되고 있으며 심지어 인공지능을 활용한 고급지식까지도 제공하는 지능형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있다.

유럽에서 개발되는 대표적인 휴머노이드는 알데바란 로보틱스(Aldebaran Robotics)가 개발 중인 로미오(Romeo)이다. 자유롭지 못한 노인을 돕는 로봇으로 개발되고 있다. 유럽의 로봇개발기관과 대학의 플랫폼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병원에서 퇴원한 독거노인을 돌보는 일을 담당한다. 하지만 개발 시나리오를 보면 주로 노인의 기억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노인의 거동변화를 인지하는 정도의 능력을 갖출 뿐 사람의 모습이 꼭 필요한 용도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사람처럼 2족 보행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로봇 기술이 발달하면서 산업현장에 격리되었던 로봇이 점차 사람들이 사는 공간으로 침투하기 시작한다. 로봇 전문가뿐만 아니고 일반인들도 로봇과 마주치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로봇과 인간 간의 접촉이 일으키는 부정적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를 들면 2015년에 미국에서 히치봇(HitchBot) 실험을 했다. 차를 몰고 가던 사람이 길가에 세워둔 히치봇을 발견하면 목적지에 가까운 중간 지점까지 자신의 차로 태워다 주는 실험이다. 이 히치봇은 캐나다, 네델란드, 독일에서는 길가에서 만나는 자동차마다 중간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어서 사고 없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여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여행 2주일 만에 필라델피아에서 히치봇이 사람들에 의해 파손되고 말았다.

일본에선 또 다른 실험을 했다. 쇼핑몰의 안내를 맡을 서비스 로봇을 선보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로봇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 13일 동안 서너 시간 동안 쇼핑몰을 자율적으로 돌아다니게 했다. 그런데 9일 동안 28명의 아이들이 착하기만 한 로봇을 학대하는 행동을 보였다. 두드리고, 발로 차고 심지어 밀어 넘어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로봇의 가는 길을 방해하거나 욕을 해댔다. 어른이 안 보이는 사이에 아이들은 공격 성향을 보였다. 이런 1차 실험을 근거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서 로봇이 아이들의 행동을 예측하도록 해줬다. 로봇에 이 인공지능 데이터를 넣어주자 로봇은 주변에 아이들이 모이면 슬금슬금 달아났다. 이 실험에서 얻어낸 사실은 로봇이 위험을 느끼면 바로 주인에게 구원을 요청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로봇을 괴롭힌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분석 보고가 있다. 학대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로봇을 개발하는 학자들도 자신이 개발한 로봇이 민첩하게 반응한다고 자랑하는 과정에서 로봇을 발로 밀어 넘어뜨리거나 막대기로 찔러 넘어뜨리는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로봇을 사람과 비슷하게 간주하는 어린이들의 눈에는 이런 행동이 사람을 학대하는 모습과 똑같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가정에 로봇이 들어왔을 때, 아이들은 행동이 아둔하고 반응이 느린 로봇을 때리거나 학대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은 마치 유색인이나 장애인을 혐오하거나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인성발달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로봇에 대한 사람들의 반작용을 연구한 자료들을 보면 ‘혐오감을 주는 영역(Uncanny Valley)’이 존재한다고 한다. 아예 겉모습이 기계일 경우엔 좀 서툴러도 당연하게 느끼지만, 외모는 사람과 같은데 하는 짓은 기대를 벗어나 어설픈 경우, 혼란을 일으키게 되어 로봇의 능력을 무시하고 학대하면서 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은 열린 공간에서 만난 어설픈 모습의 로봇을 무시하거나 학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완벽하게 사람의 모습을 한다면 오히려 로봇의 말이나 행동을 무작정 신뢰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로봇은 사람과 같이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따라서 사람들이 로봇이 제시하는 선악, 그리고 옳고 그름을 그대로 믿게 되면 큰일이 난다. 특히 가치판단능력이 성숙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가치 기준이 한쪽으로만 쏠리게 된다. 위정자 또는 로봇 통제자의 여론조작이 쉬워진다.

‘아시모’나 ‘로미오’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실 2족 로봇 즉, 휴머노이드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의 동작을 흉내 내는 일이라면 구태여 로봇이 할 이유가 없다. 단순히 호기심이라면 몰라도 그런 일을 할 사람은 넘쳐난다. 우리가 기대하는 로봇은 만화영화 주인공인 아톰이 보여줬던 것처럼 악당을 물리치는 초인적인 전투력을 가진 로봇이다. 하지만 그런 로봇은 에너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가 안다. 따라서 인간형 로봇의 개발이 의미가 없다. 만약 인간보다 월등한 지능을 가진 로봇을 원한다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재해 지역을 사람처럼 누비며 사람을 대신해서 재난을 극복하는 로봇이 필요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사람과 다른 모습으로 재난현장을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야만 한다.

지금도 로봇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활용이 높은 로봇일수록 현장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가진 기계장치 로봇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물류창고에서 활약하는 로봇은 키바(Kiva)와 같이 전문화된 로봇이다. 전쟁터엔 전쟁이 맞는 로봇이 필요하고 생산공장에서는 생산작업에 가장 어울리는 맞춤 형상의 로봇이 필요하다. 그 어느 곳도 사람 형상을 한 로봇은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확신하는 점은 로봇은 사람의 모습과 동떨어질수록 응용력이 강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