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그대로-양귀비, 73×60㎝ oil on canvas, 2005

 

여전히 나는 그림을 향한 에너지가 넘쳤다. 사람이 한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움이 닥칠 때가 있는데 이때가 그러한 시기였었다. 그래서 그림 작업에 대한 애착이 더 강렬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종종 그 힘든 터널을 지나온 것은 ‘그림이 나를 살려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정물, 42×32㎝ mixed media, 2003

 

힘든 산행을 다녀오면서 가로수 길을 걸었다. 어둠내리는 거리, 저 멀리 헤드라이트 불빛이 가로수 잎들에 부서진다. 날은 어두워지고 긴 침묵처럼 일렬로 서 있는 가로수 길은 인상적인 풍경을 선사하면서 왠지 모를 평안함을 선사했다.

 

▲ 가로수, 92×73㎝ oil on canvas, 2004

 

양귀비는 치명적으로 예쁜 꽃이다. 그 매력에는 도망 갈수가 없었다. 그러나 양귀비의 혼(魂)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 솔직히 미친 듯이 빠져들어 그리고 싶었던 꽃이 양귀비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반된 모순의 감정을 생각하며 스스로 얼마나 욕심이 많고 집착했던가를 떠올리며 빙긋이 웃음 지을 때도 있다.

 

▲ 모란, 92×60㎝ oil on canvas, 2005

 

모란꽃 작품은 훗날 ‘일월도’연작의 원초적 영감을 선사했던 작품이다. 굉장히 풍부한 모란꽃을 그리면서 접하게 된 것이 민화(民畵)였기 때문이다. 색감도 환상적인 농자색(濃紫色)인데 부귀와 영화라는 꽃말이 더욱 좋아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