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한 번쯤 들었을 법한 링컨의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떠올려본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남북전쟁에서 희생한 병사들을 추도하기 위한 자리에서 2분이라는 짧은 연설이었지만 민주주의의 정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일본의 맨션처럼 불특정 다수의 소유자가 공용부분을 구분소유하고 있는 집합주택의 형식도 공용부분을 함께 관리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적용된다. 여기서 ‘관리’라는 의미는 건물의 유지를 위해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라기보다는 유지관리의 방법,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부담, 합의형성을 위한 조직관리 등 맨션이 거주환경으로써의 기능을 가지도록 하고 그 속에서 거주자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운영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리의 3요소를 유지관리, 운영관리, 생활관리로 꼽는다. 그중에서 유지관리는 가장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이고, 생활관리는 거주자들이 성숙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단지 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관리영역이다. 운영관리는 유지관리나 생활관리의 수준을 결정하며 거주자에 의해 자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의 맨션관리는 구분소유자 전원으로 관리조합을 구성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한 관리운영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맨션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관리조합의 구성’과 ‘관리규약’이다.

관리조합의 구성이 중요한 이유는 불특정 다수의 구분소유자가 거주하는 맨션의 관리방향을 마련하는 데에 합리적인 합의형성이 필요하고 이를 이끌어가기 위한 주체, 즉 관리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리책임은 관리조합에게 있고 구분소유자 전원은 원하지 않아도 관리조합의 구성원이 되므로 구분소유자 전원에게 관리의 책임과 역할이 부여되는 셈이다. 관리규약 또한 단지운영과 생활을 위해 구분소유자들이 정해놓은 규칙으로 매우 강한 효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맨션이 공급되기 시작한 초반에는 관리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항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았기 때문에 관리조합을 구성하지 않아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관리부재 문제가 생겼다. 분양업자가 정한 관리규약이 맨션을 구매하는 소비자, 즉 미래의 구분소유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적으로도 골치 아픈 일이었는데 일본의 정부가 정책적으로 취한 액션은 법이나 규제를 만들고 처벌이나 불이익을 주어 강제적으로 관리조합을 구성하거나 관리규약을 만들도록 하는 대신, 중앙정부 주도로 5년마다 실태조사를 하여 현안문제와 상황을 인식하고 관리조합이나 구분소유자의 계몽과 지도를 위한 ‘표준적인 가이드’를 마련하는 조치였다.

예를 들면 정부 담당부처에서는 1982년 표준관리규약을 만들어 관리조합에서 활용하도록 했는데 표준관리규약은 1997년, 2004년, 2011년, 2015년 총 4차례 이루어졌다. 표준관리규약의 개정에 따라 단지의 관리규약도 개정이 병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중앙정부에서 실시하는 맨션종합조사에서 2013년 관리규약의 개정 경험이 있는 관리조합은 71.8%로 100%에 가까운 수치는 아니지만 2003년의 조사 57.8%보다는 증가했다.

단기간에 정책적인 성과를 나타내기 위하여 강제하기보다는 실태조사를 통해 모니터링하면서 맨션 관리조합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반영하기를 기다려준 셈이다. 기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책적인 성과도 이루어냈고 민주적인 결정에 의한 관리로 다져졌기에 맨션 관리가 안정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즉 정부에서도 운영관리의 자주적인 추진에 대한 기본원칙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관리조합에서도 이러한 정부의 의지에 힘입어 점차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여 자주적으로 관리의 형태를 만들었다.

관리조합의 자주적인 운영이 기본이 되는 최근 일본의 맨션관리 동향에서 ‘맨션 데모크라시’라는 말이 눈에 띈다.

데모크라시라는 단어는 1910~20년경 일본의 다이쇼(大正) 시대에 일어난 정치, 사회, 문화 등의 각 방면에서 민주주의의 발전, 자유주의적인 풍조를 총칭한다. 후대의 정치학자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후로 민주주의의 실천이 필요한 분야에 인용되어왔는데 이 단어를 맨션 관리조합의 자주적인 운영을 강조하기 위해 맨션관리에 접목시켰다.

맨션관리 분야에서 저명한 한 원로학자는 올해 초 ‘맨션데모크라시의 권유’라는 특강에서 “맨션 데모크라시는 구분소유자의 자치에 의한 자주적인 맨션관리시스템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해나가는 모습”이라고 정의하고 “자유, 평등, 교류와 연대, 공생의 4가지 요소가 중요하다”고 했다.

4가지 요소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자유(自由)는 스스로(自)에 의한다(由)라고 풀이한다. 이 말은 사회적 인연이나 학연, 지연에 구애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평등은 모든 사람이 대등하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어야 하고, 교류와 연대는 관리운영을 추진함에 있어서 널리 교류하고 연대하여 관리조합의 의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생은 다양한 주민의 입장, 조건에 배려하며 공동생활을 즐기며 알차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에서 매년 개최되는 맨션학회의 학술대회를 마치고 관련 분야에 있는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자리에서 정부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던진 우스갯소리가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맨션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입주시험을 쳐서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람만 선발해야 한다.”

민주적인 관리가 중요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의미일 테다. 그렇기 때문에 맨션은 공동의 운영관리가 필요한 만큼 맨션에 사는 동안만큼은 개인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한다. 때로는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공감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 관리와 관련한 화두 중에 하나는 ‘관리의 투명성’이다. 정부는 투명하지 못한 관리를 정상화하기 위해 여러 규제를 만들어낸 탓에, 자주적인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하기보다는 규제를 위반하지 않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결국 단지 내에서의 관리 투명성은 보장되기 힘들다. 정부의 규제들이 다양한 여건에 처한 관리현장에서 일어나는 관리행위에 대한 투명성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보장하겠는가. 결국 남은 과제는 주민의 몫이다.

정부의 이러한 시각은 입주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 듯하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리업무가 어느 정도로 다양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지 관심조차 없이 단순하게 본인이 내는 관리비의 행방에 의문을 품는다. 무조건적인 관리의 투명성만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우리 현실사회의 아파트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는가. 누구를 위하여 관리를 해야 할 것인가. 누가 주체가 되어 관리를 해야 하는가.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누구’란 정부나 행정기관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적인 관리를 함께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아파트 거주자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